[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95] 망고 씨의 하루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9-14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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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씨의 하루


고두현


지쳐 퇴근하던 길에
망고를 샀다.

다 먹고 나자
입안이 부풀었다.

저 달고 둥근 과즙 속에
납작칼을 품고 있었다니

아프리카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노예선을 탔구나.
너도.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망고는 예쁜 과일입니다. 잘 익은 망고는 입안에서 노란 단맛으로 천천히 녹아내려요. 그런데 이상할 만큼 크고 납작한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달고 둥근 과즙 속에” 어떻게 이런 “납작칼을 품고” 있었을까요. 망고가 건너온 시간을 상상하면, 먼 나라의 이국적 환상만 있었던 건 아니었을 거예요. 지친 퇴근길을 건너는 우리의 항해처럼, 망고도 그만큼 힘든 여정을 견뎌왔을 테니까요. 망고는 햇빛처럼 환하지만, 그 속의 씨앗만은 여전히 어둡고 단단합니다. 오래 건너온 아득한 시간이 스며 있는 것처럼요. “너도, 그 배를 탔구나.” 시인의 이 물음은 망고를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는 대답 대신 그 항로를 혀끝에 씨앗처럼 남겨둘 뿐이에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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