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리 받지 않은 사랑도 참이 아니다.

안성자 작가 / 기사승인 : 2009-05-24 16: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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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생명생성의 기회와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기회를 저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결혼과 남녀에 대한 하나님의 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그 깊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인간은 어쩌면 너무나 바보 같은 존재라 생각될 것이다.

인간들은 그 이면에 담겨진 깊은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한 사람이 없으면 죽는 줄 알고 결혼이나 인간에게 목숨을 걸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결국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인데 미처 준비가 안 된 인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결국 남녀란 종국엔 하나의 인간으로 치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보니 결혼도, 남녀도, 가족도, 자식도 나를 만들기 위한 들러리요 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되고 단지 진정한 생명생성에 필요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들이 무시된 채 처음부터 결과만을 위해 살라고 한다면 아무런 낙이 없었을 것이다.

육의 차원에서는 육적인 쾌감도 맛보아야 할 것이며 자신의 환경에서 최고를 누리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어린애 수준이면 어린애가 겪는 과정을 몸소 다 체험하면서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참 의미를 알게 된다. 그것도 어쩌면 인간을 잘 아시는 하나님의 절묘하신 묘책이라고 본다. 그런데 과정 없이 다른 사람의 체험만으로 성급하게 어른이 되려다가 모두가 진퇴양난에 빠진다.

고도의 은사자 한 분이 말했듯 천국에 가면 남녀 구분 없는 하나의 성이 된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언제부터 알고 지냈다고 부부의 연을 맺으면 찰싹 달라붙어 내 몸 네 몸이 섞여 내 것인지 네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밀히 따져보면 남편도 자식도 생명 때문에 주신 관계성이라고 보아야 옳은데, 그것을 잘 모르고 있다.

부부금실이 좋은 것도 자세히 보면 온전한 과정을 통과해 온전한 인간이 되어 온전한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 아니다. 상대방을 살피는 눈치가 발달해 상대의 기분과 상태에 잘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 온전이나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오늘은 원앙부부요, 내일은 원수가 된다. 단지 상대의 어떤 면을 대강 알기 때문에 부딪히지 않으며 잘 피하고 살아가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그것이 참 사랑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 보이는 부부나 가족 사이에서도 순간순간 상대를 미워하기도 하고 원망과 불평이 있는 것을 누구나 경험한다.

그러한 것이 인생이라고 체념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 특별한 묘책을 찾지 못한다. 다만 그런 관계를 잘 꾸려가기 위해 원천적인 해결책이 아닌 기술을 잘 터득해 별다른 다툼 없이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랬기에 세월이 흐를수록 가족으로 야기된 문제들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아무리 문명이 초고속을 달려도 문제해결은커녕 오히려 그러한 현상이 증가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가족 중 누구라도 속히 생명으로 진입해 탈바꿈해야 살길이 열린다. 물론 그 길은 지금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생명이 되면 된다. 참 사랑은 생명, 하나님의 사랑이다. 인간은 제 아무리 사랑한다고 떠들어도 인간적인, 육의 사랑은 길지가 않다. 육은 사망이라 했다. 출발은 너무 좋은데 시간이 흐르면 점점 시들해지는 것이 육의 사랑이다.

그것이 육의 속성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자꾸 보면 아무리 좋았던 것도 싫증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 참이 아니고 육이기 때문이다. 참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참이 아닌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아야만 한다.아무리 사랑한다고 맹세해도 온전히 실현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파헤쳐 드러내지 못했다. 육 자체가 오류인 것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으로만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육은 참이 아니고 사탄의 서식처다. 그러므로 사탄에 휘둘려 자기도 모르게 시시각각으로 다른 행동을 하게 되고 자신 안에 있는 사탄의 수작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내 안에 있는 사탄도 모르고 상대 안에 있는 사탄의 정체도 모르므로 사탄에 끌려 다닌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사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인간을 알지 못한다. 인간과 사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한 사탄에게 영원히 끌려 다니게 된다. 원인을 모르는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배반하고 난리를 치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인간의 정체를 모르고 모든 것이 인간을 통해 이루어 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에 나의 이상형을 찾아 모든 것을 희생하고 믿고 의지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따라간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실망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래도 언젠가는 제자리로 올 것을 기다리며 온갖 수모와 아픔을 참는다. 결국 끝으로 가까이 갈 즈음 막다른 골목을 만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는다.

사람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처음 만났을 때 “이 세상에서 너만을 제일 사랑한다”는 말만 붙잡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 커다란 상처를 받아 온갖 사탄의 조롱거리가 되어 처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목표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러한 무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다. 부부 사이가 좋아 보여도 순간순간 미워하고 원앙부부라고 널리 알려졌던 사람들이 갑자기 원수가 되어 헤어지겠다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 모두 귀신의 활약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생명이 아닌 곳에는 언제나 귀신이 득실댄다. 하나님의 기준에 어긋나는 부분에는 언제나 귀신이 상주한다. 금실 좋은 부부도 그 관계가 참이 아니므로 언제 어디서든 귀신의 공격을 받는다. 육의 사랑, 인간적인 사랑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 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수록 다양한 귀신의 활약이 성행하고 있다. 생명으로 탈바꿈해야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생명을 만들기 위해 처음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훨씬 쉽게 생명이 될 수 있다. 가족 사이에서도 생명의 사랑만이 진정하다. 스스로 물어보라. 당신의 남편을,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느냐고 말이다. 인간의 육의 차원에는 참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 싫증이 나면 또 다른 사랑을 찾고 또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또 싫증이 나고 또 번복하다 음란귀신에 사로잡혀 습관적인 음란에 빠지는 사람들, 한번 음란에 잡히면 빠져나오기가 너무 어렵다. 처음에는 작은 죄로 출발했지만 가다 보면 점점 더 커진다. 음란에 빠진 시간만큼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부부 이외의 사랑은 간음이라 했다. 그것은 죄이기 때문이다.

들키지 않으면 무사할 줄 알겠지만 이미 다른 사람과 간음을 하면 보이지 않는 음란귀신이 따라다니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독된다. 중독에서 끝나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죄의 크기가 커진다. 눈덩어리처럼 커져서 또 다른 죄를 부른다.

음란을 시작한 사람들이 마약을 겸하고 도박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을 부른다. 그리하여 결국 패망하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처음엔 쾌락으로 시작했던 작은 음란이 걷잡을 수없이 커져간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죄의식에 잡힐 수 있지만 시간이 되면 만성이 되고 나중엔 아무렇지 않게 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이다.

음란도 따지고 보면 육체의 장난이다. 육체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은 참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되풀이해 익숙해지면 참 사랑이라는 착각에 빠져버린다. 육은 길들이는 대로 효과가 나타나므로 나중엔 걷잡을 수 없는 중독에 빠져버린다. 처음 남녀가 만나 자신의 모든 것을 포함하여 목숨까지도 주고 싶다고 굳은 약속을 하지만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식어버린다. 그것이 육의 한계다.

강아지들이 가끔 인형으로 장난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순간 인간 본능의 욕구 표현이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인간도 동물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한 것들이 죄의 온상이 된다. 인간의 정체, 육의 정체, 사탄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나면 그와 같은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속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여자의 경우엔 남자보다도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이기에 사랑에 배신당하면 많은 상처가 남는다. 다시 말해 남자는 행위 자체에 만족하고 감정과 분리할 수 있지만 여자는 행위와 감정 분리가 어렵기 때문에 마음까지 주어버린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게 되면 여자들이 더 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 상처들이 모여 훗날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안다면 기겁을 할 것이다.

그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여자들의 사회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남자와 자주 대립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사회 통념상 항상 모든 사회적 지위에서 남자들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금까지는 모든 부분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외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진행되어 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남녀평등을 외쳐도 오랜 세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남자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책임은 남자들에게도 있겠지만 여자들 본인들의 약한 면이 더 큰 원인이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생명은 남이 나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외형적인 강함이 결국 여자들에게 손상을 입혔으며 그러한 상태가 너무나 오랫동안 진행되어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며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 더욱 문제였다.그 때문에 아무리 남녀평등을 외쳐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한번 기류가 장악을 하면 웬만해선 그것을 번복하기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자리는 더 견고해져 자리바꿈은 그만큼 불가능해진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모든 분야에서 남자들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당연시되어왔으며 무수한 여자들이 남자들로부터 부당하게 당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뿐만이 아니라 각 개인의 가정에서도 그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시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굳어버린 지가 오래되어 혹시나 여자가 남자보다 앞서는 경우엔 이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겉보기에 강하고 이성적인 남자를 약하고 감성적인 여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이유로 숱한 여성들이 자신의 약함 때문에 남편의 압력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결국 속병이 생겨 불치의 병을 앓다가 생을 마감한 사례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끝까지 보이는 그대로 치부하고 해석한다면 오산이다.

믿지 않는 자들에겐 비록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되지 않아 참과는 다소 거리가 있겠으나 생명적인 해석으로 뒤집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우주 만물의 생태의 원리는 참이 아니면 오류가 나타나게 되고 그 오류들이 모여 쌓이면 붕괴되는 것은 당연하다.

남자들이 여자를 오랫동안 장악해왔던 것은 외형의 크기 때문이었을 뿐, 진정한 의미의 특출함 때문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를 엄밀히 분석해 하나의 인간으로 간주할 수 있어야 한다. 정확한 분별은 생명의 가치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어찌 보면 남녀의 구분은 결혼으로 맺어진 혈육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 남자와 여자는 똑같은 생명이다. 태어날 때는 똑같은 인간이다. 겉보기에 커 보인다고 능사가 아니다. 그동안 우위를 차지했던 기준은 모두 외형에 기인한 것이었고 모두 그것이 옳다고 여겼으며 그 기준에 대한 반론을 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위고 여자는 아래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모두가 잘못 알고 있다. 누구를 눌러서도, 눌림을 당해서도 안 된다. 누르는 것도 잘못이요, 눌림을 당하는 것도 잘못이다. 누구든지 눌림받고 있는 자는 눌림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발버둥을 쳐야 하고, 누르고 있는 자는 누르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만약 눌림을 당하거나 과거부터 당해왔던 사람들이라면 정확한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래야만 자신을 눌림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의 해석은 지금까지는 보이는 것의 크기로 제압하고 석권해왔지만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반면 당함을 견디면서 어디선가 새 생명의 싹을 틔우고, 그 위력이 커지면 언젠가는 자리바꿈이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외형으로 모든 것을 측정하였기에 오류가 생겼다. 그 오류는 언젠가 참이 나타나면 점점 자취를 감출 것이다.

측정하는 자의 눈을 높여야 한다. 이제는 모두 눈에 보이는 것으로 측정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로 측정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적인 해석이요, 생명이다.겉으로 보기에 강하고 현재의 위치가 우월하다고 그것을 빌미로 누르면 그것 또한 착취다.

서로 인격을 존중해주고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해 이긴 자가 진정한 승자다. 눌림을 당하는 것도 못남이요, 어리석음이다. 눌림을 당하는 자나 누르고 있는 자나 이제는 만성이 되어 정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 당연시하는 생각이 고정되어버렸다. 눌림을 당하는 각자가 벗어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생명이 무르익으면 육의 어떠함이 보이게 되고, 차원이 보이게 된다. 하루라도 빨리 생명이 되어 참 사랑으로 가족과 주변을 사랑하고 보살펴야 한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체험해서 그것들의 실체를 알고 육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보이지 않는 가치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비록 육에 있어도 차원은 보이지 않는 차원을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경험이다. 육의 사랑도, 실패도 체험을 통해 그것의 실상을 알고 났을 때에야 비로소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다면 항상 호기심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실상을 알 수 없다. 생명은 될수록 많이 해보고, 빠져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해보지 않고도 하는 것 이상으로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참이 아니다. 미리 결과적인 것만 끌어다 쓴 것일 뿐, 참 생명이 아니다. 타고난 성품이나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지식은 높은 것 같아도 하나님 속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시금 하나님 성품으로 바뀌어야 한다. 참 생명만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한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은 결과적인 것들을 얘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결과적인 지식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한 결과적인 것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낱낱이 설명해주고 상황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 알게 해야 한다. 어떠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아픔이 필요하다. 지난날 그렇게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노력했지만 도무지 삶의 진전이 없었던 이유를 다음 지면을 통해 소개할 것이다.

지난날 아무것도 모른 채 삶에 뛰어 들었다가 파란만장한 순간들을 체험하고 팔자가 세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언젠가는 해 낼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고 오늘까지 왔다. 결혼을 통해 가장 많은 인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정체, 목표를 몰랐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했다.

결혼을 통해 그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가장 진귀한 보석을 얻는다. 그렇게도 풀리지 않던 궁금증이 모두 해결되며 누구보다도 당당함과 자신감이 생긴다. 아무것도 겁날 게 없어진다. 또 삶 전체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오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무엇이 문제인지 단숨에 알게 된다. 눈이 밝아지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건들이 다가와서 나를 죽이려 물어뜯고 할퀴고 망하게 하려 할 때마다 ‘죽지만 말고 버티어 살아만 있자’라는 각오로 임하면 모든 것들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된다. 많은 고통을 통해 육성이 많이 제거된 결과 보이지 않는 생명의 양이 고통의 양만큼 증대되어 실력이 쌓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간격도 어느 사이 좁아지게 된다. 결혼을 통해 인간으로부터 쓴맛을 보고 인간의 정체를 파악하면 결국 내가 변화된다. 알고 보니 내가 주체요 내가 변화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환경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환경이 나를 위해 변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적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었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동안 삶 속에 펼쳐졌던 모든 것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이긴 것들이 생명이 된다. 이제는 모든 인류가 차원을 높여야 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보이는 근시안적인 사고에 머무를 수 없다. 모든 인류가 얻기를 갈망하는 열쇠를 결혼에서 찾을 수 있다. 진실하게 끝까지 가면 소원을 이루게 되며 그렇게 해서 인간의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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