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김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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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서 시인 |
[편집자 주] 김영서 시인은 1964년 예산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예산에 살고 있다. 순천향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계간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2006년 아르코창작기금을 받았다. 시집으로 『언제였을까 사람을 앞에 세웠던 일이』 『그늘을 베고 눕다』 『우리는 새로 만난 사이가 되었다』 『낯선 곳에 도착했다』 『땀이 눈물보다 짜서』가 있다. 현재 예산문학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 2025년 봄 예산 문학관을 개관하셨습니다. 문학관을 위해 30년 넘게 예산 지역 문학 자료를 수집하셨는데 이는 한 개인의 헌신을 넘어선 지역 문화운동의 의미를 지닙니다. 문학관 설립에 대한 계획을 갖게 된 계기와 혼자서라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 요즘 지방 소멸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지방 소멸보다는 도심 집중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소멸하는 것은 마을입니다. 주소가 마을에서 도로로 바뀌면서 마을 이름만으로는 마을을 찾아갈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현재 60살 세대가 끝나면 마을에 남아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수백 년을 살아온 마을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문학작품 역시 그렇습니다. 수집하고 기록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습니다. 특히 유명인이 아닌 지역의 문학예술 작품은 더 그렇습니다. 예산군은 전 지역이 슬로시티입니다. 그럼에도 보존되는 것은 미약합니다. 예산군도 오래전부터 생활사박물관, 문학관, 미술관 설립에 대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민과 행정 당사자 등의 이해관계로 무산되었습니다. 1980년대 문학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문학 자료를 모으게 되었습니다. 현재 예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학인으로 보면 제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잃을 것이 없어서 문학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다는 절박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형식(건물)보다 내용(자료)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 현재 예산문학관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지역성과 예술 창작이 연결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문학관이 생긴 뒤의 반응과 앞으로의 계획 또는 방향이 있다면 어떤 내용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 얼마 전 문학관에서 시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지역 시인 15명과 외지에서 찾아온 시인 15명이 모였습니다. 작품에 대한 평을 하고, 시 낭독을 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커피를 내려주고, 하이볼을 만들어 주고, 다과를 내놓고 서로가 웃고 즐기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문학관은 주민들이 모여서 즐거운 곳이면 족합니다. 그리고 문학관이 있는 건물에는 예산군에서 제일 좋은 전시장이 있습니다. 년 중 전시 일정이 잡혀 있는데 전시장 옆에 문학관이 상시 개방되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시 한편씩 가져와 합평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4명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20명이 넘습니다. 소문이 나서 합평하는 날 이웃 시군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지역 주민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것을 꿈꾸기도 합니다.
아직은 등록 기준에 미흡하여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문학관입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문학관에 관심을 주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행정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해주시기도 합니다. 이런 말씀에 힘입어 자료 정리를 준비하고 있지만 귀중한 자료를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면 어쩌나 조심스런 마음이 있습니다. 전시를 시작하자 구하기 힘든 작품집을 기증한 분들이 여럿입니다. 앞으로도 찾아내야 할 작품집들과 분류하고 기록하여 체계를 갖추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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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문학관 내부 모습 |
● 문학관 개관에 이어 올봄에 출간하신 『땀이 눈물보다 짜서』라는 시집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이 제목에 담긴 시적 감각과 선생님의 세계관을 듣고 싶습니다.
▼ 삶을 살아내는 것과 시 내용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일상에 시의 주제가 잡히면 있는 그대로 시에 반영됩니다. 이런 시들을 묶은 시집 『땀이 눈물보다 짜서』를 통해 제 지나온 인생의 여정이 많이 정리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문학관에 모여 시 합평을 하며 이제까지 쓴 시를 재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듯 다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동안 시편들을 정리해 책으로 묶은 뒤 다시 읽어보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역시 이번 시집도 모두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땀이 눈물보다 짜서
덜어낼수록 농도가 짙어졌다
눈물로 쓸어낼 수 없는 큰 슬픔이다
먹어도 배고픈 날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둑이 무너지면
눈물로 대응했으나 감당하지 못했다
너른 벌판에 옹달샘이다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달이 쉬어갔다
장마에 쓸려도 금방 맑음을 유지했다
물이 솟는 구멍이 있다
가까이 가면 심장이 크게 뛰었다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상기되었다
맑음이 어린아이 같아야 했다
초승달을 건져 올려 둑으로 삼았다
아침마다 땀이 흘러들지 못하게 둑을 다듬었다
갈수록 힘든 날이 많아진다
땀을 자주 흘린다
그때마다 눈물이 돌았다
땀이 범람하면 눈이 감긴다
맑음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벌초하다 공사장에서 잡부로 일하던 기억이 떠올라 쓴 시입니다. 일할 때 누가 보면 혼자서 일을 다 하는 것처럼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손등으로 열심히 땀을 닦았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은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눈은 땀을 감당하기 위해서 눈물을 택했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많아지는 나이입니다. 선한 눈빛을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 이어 시집 두 번째 시집 『그늘을 베고 눕다』라는 표현은 쉼과 피로, 어쩌면 회복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시를 쓰는 일이 선생님께는 쉼과 회복 혹은 또 다른 그 무엇으로 느껴지는지 묻고 싶습니다.
▼ 두 번째 시집 제목은 태풍에 뿌리 뽑혀 넘어진 가로수 이야기입니다. 수명을 다했지만 바람에 발가락을 말리기 위하여 햇볕이 쨍쨍한 날 자신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베고 누운 나무를 보았습니다. 관 밖으로 나온 부처의 발처럼. 나에게 시를 쓰는 일은 지난 힘들었던 삶과 시간에 대한 보상과 같습니다. 좋은 시 한 편을 건지면 수행에서 삼매에 든 것처럼 몸과 마음이 이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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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관 개관식 행사 사진 |
● 문학관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요. 또한 문학관을 운영하며 지역민들과의 ‘새로운 만남’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경험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문학관이 있는 건물은 예산군 소유입니다. 월세를 내고 있습니다. 매월 1만 원씩 후원회비를 내시는 분들이 20명이 넘습니다. 앞으로 후원회원 50명이 목표입니다. 월세 50%를 내주겠다는 분도 있었는데 거절하고 1만 원만 받았습니다. 많은 분이 문학관의 발전과 유지에 함께 참여해 주시는 부분에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예산 문학관에는 여러 개의 간판 이름이 있습니다. 차문화협동조합, 예산시인협회, 추사시낭송회, ESE연합회, 작은미술관 등입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주민조직들인데 사무실이 없어서 어깨 한쪽을 서로가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차문화협동조합은 발효차모임을 부정기적으로 모임을 합니다. 예산시인협회는 월1회 합평모임, 추사시낭송회는 주1회, ESE연합회는 에너지 테라피 모임으로 주1회, 작은미술관은 수집작품을 상시 전시 중입니다. 몇 달 전 아끼던 와인을 팔아 책꽂이를 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일인데 블록형 책꽂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구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이 책꽂이는 전시장이 좁아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블록형이라 이사할 때 편리합니다. 문학관을 영구적으로 쓸 수 없으므로 옮길 것에 대비해 가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오늘은 예산 문학관의 관장이신 김영서 시인의 ‘삶으로 쓴 문학사’와도 같은 발자취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문학관 자리가 한국전쟁에 관한 ‘창고의 아픈 기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 문학관이 있는 이음 창작소는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양곡 보관창고입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리모델링하여 예술 작품 전시 공간이 되었습니다. 예당평야에서 나오는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만든 창고입니다. 한국전쟁 때는 보도연맹을 학살하기 전 감금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총탄 흔적이 있는데 역사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총탄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수탈과 학살의 아픈 역사를 지닌 건물입니다.
● 네. 시대적 아픔이 담긴 장소를 문학의 공간으로 활용하게 된 부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어 ‘문학은 그 사람의 영혼의 집’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여러 시집을 이어내는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선생님만의 시적 중심 혹은 계속해서 변해온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시를 쓰며 시 낭송 모임에도 나가고 있습니다. 시 낭송을 하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시는 영혼의 집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첫 번째 시집보다는 두 번째 시집이 좋다는 것부터, 다섯 번째 시집이 더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여섯 번째 시집이 더 좋았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일상이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았다는 말로 대신합니다. 오늘 하루 24시간을 완전히 연소하기 위하여 열심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예산 지역에서 글을 쓰고 있는 젊은 세대 또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시 쓰는 모임에 가입하는 연령대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년퇴직해야 문학을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문학은 그리고 시는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또한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준비할 도구가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께서 망설이지 않길 희망합니다. 문학이란 우리의 영혼이 거주하는 집을 짓고 다듬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푸른 새소리 키우는 정원을 가꾸는 일,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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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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