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필리핀 석탄발전소, 10년 넘게 주민 건강·생계 위협…좌초자산 우려

임태경 / 기사승인 : 2025-07-25 13: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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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세부 석탄화력발전소, 좌초자산 위기 속 주민 건강·생계 위협… 자금조달도 난항
▲ 한국전력공사가 운영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필리핀 세부주 나가시티 지역 주민들이 건강에 큰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한 주민이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사업을 중단하라!'라는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 중인 모습. (사진=기후솔루션 제공)


[일요주간=임태경 기자] 필리핀 세부주 나가시티에서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운영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10년 넘게 심각한 건강 악화와 생계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해당 발전소는 자금 조달마저 어려움을 겪으며 좌초자산화가 우려되는 상황으로, 해외 석탄사업을 지속해 온 한전의 책임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5일 기후솔루션이 입수해 공개한 ‘필리핀기후정의운동’(PMCJ)의 5월 피해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가동 중인 한전의 세부 석탄화력발전소 인근에서는 호흡기 질환과 심혈관 질환 등의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 2005년 SPC파워코퍼레이션(SPC Power Corporation)과 공동으로 KSPC를 설립했다. 2011년 200MW급 발전소가 준공돼 필리핀 중부 비사야스 지역에 전력을 공급 중이며, 한전의 해외 석탄사업 중 최초의 상업 발전소로 꼽힌다.

 

▲ 한국전력공사가 운영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필리핀 세부주 나가시티 지역 주민들이 건강에 큰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한 주민이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사업을 중단하라!'라는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 중인 모습. (사진=기후솔루션 제공)


◇ 주민들 “발전소에서 유출된 오염물질로 생태계 파괴...어획량 감소 생계 위협

 

보고서는 석탄재와 오염물질이 수질과 대기질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을 주민들은 발전소 인근의 샘물이 검게 변하고 악취를 풍기며 피부 자극 증상까지 일으킨다고 호소하고 있으며, 특히 발전소 건설 초기부터 일부 가구에 이주 권고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사업자가 피해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정황도 드러났다.

현지 어민들은 생계 타격을 직접 호소하고 있다. “이전에는 얕은 바다에서도 15kg 이상의 어획이 가능했으나, 현재는 거의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이 같은 어획량 감소가 발전소에서 유출된 석탄재와 오염물질의 해양 투기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라퀴엘 에시리투 CHANGE Naga 대표는 “수질이 변하고, 피부병이 발생하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증언했고, 주민 도미나도르 바사야 주니어는 “우물물이 석탄재 탓에 검게 변했지만, 의견을 들어주는 주체가 없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청한 주민은 “피해는 계속되는데 전기요금은 여전히 비싸고, 석탄발전소로부터 어떤 보상도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의 세부 발전소 사업에 자금을 댄 아시아개발은행(ADB)도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2년 ADB 내부 감사 결과, 해당 사업은 환경 보호, 정보공개, 주민 참여 등 핵심 정책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시정 조치가 권고됐으나, 5년간의 공식 모니터링 이후에도 절반만 이행된 채 종료됐다. 피해 주민에 대한 보상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PMCJ의 엘레노어 바르톨로메 정책총괄은 “한전은 수십 년간 한국과 필리핀 등지에서 환경 파괴적 투자를 통해 이익을 챙겨 왔고, 그 결과 주민들은 병들고 생계수단을 잃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 한국전력공사가 운영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필리핀 세부주 나가시티 지역 주민들이 건강에 큰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이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시위 중인 모습. (사진=기후솔루션 제공)

 

◇ 아일린 리퍼트 연구원 “기후위기와 탈석탄 흐름에 역행하는 한전과 금융기관들”


한편 한전은 지난 2022년부터 해당 발전소의 지분 매각을 시도해 왔으나, 1~3차 입찰 모두 무산됐다. 전 세계적으로 탈석탄 금융 흐름이 가속화되며 석탄발전소에 대한 투자 매력이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는 싱가포르 증권거래소를 통해 기후리스크 누락에 대한 공익신고까지 접수되며, 한전의 해외 자금 조달에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글로벌 시민사회의 비판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20여 개 국제 시민단체들은 JP모건, 씨티, HSBC 등 주요 채권 발행기관에 한전의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 중단을 요청했고, 글로벌 플랫폼 에코(Eko)를 통해 약 4만 명의 시민이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기후솔루션의 아일린 리퍼트 연구원은 “글로벌 자본은 석탄에서 빠르게 철수하고 있으며, 한전도 미래 자금 조달을 위해 이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며 “석탄 투자를 지속할 경우 투자자 신뢰는 물론, 지역 사회와 생태계 피해까지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한전은 필리핀 외에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 중이다. 기후위기와 탈석탄 흐름에 역행하는 한전과 금융기관들의 무책임한 행보에 대한 국제 사회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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