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이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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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화 시인 |
▼ 영월 출생으로 크고 작은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서 좀 더 깊이 문학 공부를 하고 싶어 지방의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 후 본격적으로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희곡에 관심이 있어 공부했는데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2008년 계간 《시로여는세상》으로 시인으로 등단했어요. 시집으로는 『굴절을 읽다』 『낮달이 허락도 없이』 『날씨 하나를 샀다』 『누가 시켜서 피는 꽃』 네 권의 시집을 발행했으며 시인들과 미얀마, 터키 여행 후 발행한 공저 시집 『밍글라바 미얀마』 『나자르 본주』가 있답니다. 여성 시인으로만 구성된 <여여 시동인>이라는 동인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 오늘은 원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이서화 시인을 모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굴절을 읽다』부터 최신작 『누가 시켜서 피는 꽃』까지 좋은 작품의 시집들로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들려주세요.
▼ <일요 주간> 작가 초대석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일요 주간 애독자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려니 조금 쑥스러운데요. 첫 시집은 제가 《시로여는세상》 편집장으로 있을 때 제가 만든 시집입니다. 뭣 모르고 만들다 보니 다소 서툴기는 했지만, 더 애정이 가는 시집이기도 합니다. 첫 시집 『굴절을 읽다』의 시 전체 내용을 보면 굴절을 통해 본 현실을 관찰 후 몸으로 살았던 서사를 시로 표현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두 번째 시집 『낮달이 허락도 없이』는 첫 시집보다는 문장에 힘을 빼고 의미를 살리는 데 초점을 두고 썼습니다. 그 당시 강원도 일대에 외부로 일을 하러 다닐 때였기에 오고 가는 길에 마주한 사물이나 느낌을 다룬 시 편들도 구성했습니다.
세 번째 시집 『날씨 하나를 샀다』는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인 작품집이긴 해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으로 발행한 시집인데요. 기존 시에서 의미나 이미지를 벗어나 변화하려고 내면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하면 맞을 것 같아요. 주관적 정서보다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접하려는 시도라고 할까요.
네 번째 시집 『누가 시켜서 피는 꽃』은 참 아픈 손가락 같은 시집입니다. 시집 준비를 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교정을 주고받는 사이에 제가 ‘지주막하 뇌출혈’로 응급실로 실려 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겨우 깨어났거든요. 강원문화재단 창작 기금을 받아 준비하는 시집이기에 그해에 시집 발행을 마쳐야 해서 퇴원 후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교정을 봤습니다. 건강 이상으로 더 살피지 못하고 마무리한 느낌도 있어 시집에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답니다. 여러모로 변화를 주려했고 시도하면서 시에서 힘을 많이 뺐다고 할 수 있어요.
● 평론가들은 선생님의 작품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의 동등한 자리'를 주목했습니다. 이런 시각은 어떤 세계관에서 비롯되었으며 시가 위계를 해체하고 평등한 공존을 실현하는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어려운 질문인데요. 기존에 우리가 인지하고 있던 존재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했는데 평론에서는 이 부분을 깊이 다뤄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평등한 공존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재의 존재를 통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그 이상을 발견했을 때의 새로움이 아닐까요. 시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소통 구조를 마련하는 것,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가 되는 것은 언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무기가 아닐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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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읽기와 토론, 독자들과 함께 |
● 선생님께서는 원주에서 <이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서 책방을 운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책방에서 어떤 형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지도 궁금합니다.
▼ 어느 날 문득, 나이가 더 들어가기 전에 제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었어요. 생각해 보니 어릴 때 꿈이었던 서점이 하고 싶더라고요. 지금처럼 작은 책방이 아닌 큰 서점을 해 보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과 너무 멀었죠. 많이 보이던 서점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제게 맞는 작업실 겸 작은 책방을 열게 되었어요.
책방은 지역 분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답니다. 작가를 초청해서 출판기념회, 낭독회, 이야기 마당 등 다양하게 활용도 하고 있고요. 지방에서는 작가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기에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독자들이 원하는 작가를 섭외해서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작가와 책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작가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독자들이 좋아합니다. 또한 각종 문예지가 많이 비치되어 시인이 되고 싶은 분들이 가끔 찾아와 문예지를 읽고 가기도 합니다.
● 시인이면서 책방을 운영하는 일은 문학을 '읽는 공간'과 '쓰는 행위'가 동시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작가들에게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일로 비치는데요. <이서 책방>이 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의 공간인가요. 이어 이서 책방에 잘 어울리는 시가 있다면 어떤 작품인지 부탁드립니다.
▼ 저도 책방을 열기 전에는 낭만적인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죠. 손님이 오면 도서를 안내하고 손님이 없을 때는 책을 읽거나 내가 원하는 글도 쓰면서 내 공간을 갖는다는 의미 하나로 좋았어요.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현실은 운영에 대한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좀 아쉬운 부분이죠. 그래도 책방을 운영하기를 참 잘했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답니다. 책방이 골목에 있다 보니 골목에 관한 시 한 편을 썼는데요. 좋은 시는 아니지만 책방이 있는 골목 풍경을 알 수 있는 시라서 소개합니다.
골목이 하는 일
골목은 조용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들이 불쑥 튀어 나옵니다 골목의 간섭은 키가 아주 커서 담을 넘겨다보곤 했습니다만, 요즘은 전부 앞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뒤는 모르는 일이지요 모르니까 궁금하지요
골목의 뒤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사람은 다 압니다만 때론 자신들의 뒤와 슬쩍 견줘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앞은 갈수록 새로운 것이 사라집니다 아니 익숙해집니다 그럴 땐 아주 조금 드러난 뒤쪽도 새로운 것인 양 호들갑을 떨어댑니다 뒤쪽은 참 재미도 있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부피가 큰 소문들은 큰길로 지나가고 좁은 소문들만 골목을 지나갑니다 서로 잘 안다는 것은 각자의 뒤를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창문 밖 사람들은 유리의 속도로 지나칩니다. 그리곤 창문 안을 곁눈질로 힐끗 봅니다
오래된 마음이 서성이고 간판의 하루가 지나갑니다 골목이 하는 일은 무심한 것은 무심하게 간섭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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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에서 <오이디푸스>낭독 공연 후 연극 배우들과 함께 |
● 책방에서 직접 독자들을 만나시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습니다.
▼ 책방을 준비할 때부터 근처에 사시는 어르신이 지나다니시며 이 자리에는 어떤 가게가 생기려나, 하고 늘 궁금해하셨어요. 책방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요즘 서점이 사라지는 시대인데 그것도 골목에 책방을 들온다고 했더니 우리 동네가 더 빛나 보일 것이라며 좋아하셨어요. 그 어르신은 지금도 제가 손님이 없어 책방 문을 닫을까 봐 가끔 책을 주문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웃음)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이곳은 조금 뒤편으로 나가면 유흥업소만 있는 곳인데 이런 장소에서 책방을 한다니 모든 분이 아이러니하게 바라보셨죠. 그래도 삭막한 지역이지만 책방이 있는 골목을 지나다니는 분들이 ‘이런 곳에도 책방이 있네?’ 하면서 책방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라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그동안 출간하신 네 권의 시집을 통해 일관되게 추구해 오신 선생님의 시적 가치와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시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네 권의 시집을 발행하며 시가 쉬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가 자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늘 고민입니다. 시를 읽는 독자들이 제 시를 읽으며 무릎을 ‘탁’ 치는 새로운 발상의 시를 쓰고 싶은데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니 늘 고민입니다. 새로운 시집이 발간될 때마다 변화를 주려고 애를 썼다고 봅니다. 시를 읽는 독자가 위로를 받는 시를 쓰고 싶거든요.
● 저희 <작가 초대석>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인으로서, 그리고 책방 운영자로서 어떤 꿈이나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들으며 이만 인터뷰 마칩니다.
▼ 골목의 작은 책방이지만 지역 분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보니 강원특별자치도<강원지역서점> 인증서를 받았어요. 우리 지역의 문학서점으로 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시집 판매가 많이 되지는 않지만, 가끔 시집을 찾는 분들께 시집을 추천하는 일은 보람 있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독자들과 시집을 완독하고 시 낭송도 하는, 그런 시가 있는 골목 책방으로 오래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책방 문을 닫을까, 걱정하시는 동네 어르신의 염려를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웃음)
* 이서화 시인은 2008년 등단하여 현재까지 네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다. 시인의 작품 세계는 지속적인 변모를 통해 성숙해 왔다. 첫 시집 『굴절을 읽다』에서 굴절을 통해 본 현실 관찰과 체험적 서사에 주목했다면 두 번째 시집 『낮달이 허락도 없이』에서는 문장의 힘을 빼고 의미 중심의 표현으로 전환했다. 세 번째 시집 『날씨 하나를 샀다』라는 주관적 정서에서 객관적 사물 관찰로의 시선 변화를 보여주며 네 번째 시집 『누가 시켜서 피는 꽃』은 지주막하 뇌출혈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완성해 낸 의지의 산물이다.
평론가들이 주목한 바와 같이 시인의 시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동등한 자리’를 구현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평등한 공존이야말로 시인의 시적 철학의 핵심이다. 이러한 문학적 가치관은 현실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현재 원주에서 운영하는 ‘이서 책방’은 어릴 적 꿈이었던 서점을 현실에 맞게 실현한 공간으로,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지역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서점 인증을 받은 책방은 작가 초청 행사와 낭독회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한다. 특히 여성 시인 동인 <여여 시동인>으로 활동하는 시인의 행보 역시 문학을 통한 연대와 소통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 이서화 시인에게 시와 책방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소통하는 평등한 장소,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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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시인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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