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임후성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 그리고 작가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2021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하신 후, 202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까지 눈부신 행보를 보여주고 계세요. 특히 2024년 대산창작기금까지 받으시게 되어서 축하드려요.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좋은 성과를 거두신 게 정말 대단한데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하게 된 이야기부터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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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후성 시인 |
▼ 안녕하세요. 임후성입니다. 크리스마스 실seal 같은 이은화 시인님의 <작가 초대석>에 초대해 주셔서 기쁩니다. 시인으로서 제 얘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습작은 십대 후반부터 늘 해 오던 것이고 과거에 <경향신문 신춘문예>, <조선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 각각 올랐던 적도 있습니다.
결국 등단은 아내 김성민 작가의 프로듀싱에 의해서였습니다. 김성민과는 2012년에 극단 <피오르>를 창단하여 연극 공연을 해 왔는데요 200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으로 세상에 나온 김성민은 그 때 이미 극작가로서 공부와 필력이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고 한편으로는 저의 시적 재능을 현실화할 방법을 (저 대신)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절에 내몰린 극단의 앞날은 어두웠고 공동체 작업이 전부인 연극 작업에서 개인의 내면으로 회귀하는 길을 굽어보던 김성민은 제게 그 해의 신춘문예에 응모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연말이 지나 『詩로 여는 세상』에 응모해 신인상에 당선 된 뒤 2021년 서울 주요 일간지만을 대상으로 한 신춘문예를 준비했습니다. 단순하고 철저하게 혼자만의 작업이 이루어졌고 아내만의 비평이 뒤따랐습니다. 202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볼트」가 당선되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접한 오후 6시40분경, 저는 내년에 응모할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볼트」를 읽어보니, “코끼리끼리는 볼 수 없는 코끼리를 보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존재의 불완전함이나 흔들리는 현실을 독특한 언어로 그려내셨는데, 이런 철학적인 사유들이 어떤 경험에서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 말씀하신 대로 「볼트」에서는 기존의 세계관에 대한 의문이 주어집니다. 대상이 무엇이든, 소멸에 의해 구축되는 생성과 지속의 구조를 코끼리, 교량 등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상의 전개에서 ‘생략’이라는 관념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불완전성에로 이끌렸음에도 ‘교량’이 생략된 볼트를 지녔다는 점에서 완전한 해체보다는 구조주의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불가지를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불가지에 대한 논리적 좌표를 구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인식의 문제에서 이것은 철저히 언어적인 것입니다. 언어는 자신의 불완전성를 인식하고 오히려 그것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시스템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한 응답은 시의 의무와도 통하는 것입니다. 언어는 지속적으로 소멸하면서 필요한 규칙을 생성합니다. 목표와 방향은 없습니다. 이것이 한 번 더 멋진 코끼리인 것입니다.
어느 날 어린이 대공원에 갔습니다. 코끼리와 원숭이와 대관람차를 보았습니다. 몇 달 후 저는 다시 대공원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언어를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소멸과 생성의 양방향으로 구축된 시간 속에서 부드러운 패배를 겪었습니다.
● 극단 <피오르>에서 2012년부터 지금까지 연출가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연극 <비극의 일인자>, <우주의 물방울> 연출도 하시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한 영화 <한 채>에서는 주연까지 맡으셨고요. 이렇게 다양한 예술 활동이 시를 쓸 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들려주세요.
▼ 연극을 공부하면서 ‘신체’를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신체는 의식과 감정이 융합되어 진동하는 결과입니다. 즉 물질과 정신의 이원 대립이 사라지고 하나의 현실로 나타난 기호입니다. 신체는 선명하고 자연스러운 복잡성이면서 분절된 자연 언어 저 편에서 모든 것을 빠르고 단순하게 이해합니다.
신체에서 발아하는 상상력과 의식이 같은 길로 걸어오면서 저의 언어는 도약과 성숙을 이룬 것 같았습니다. 언어가 잘 닿지 않던 곳이 언어로 만져지는 것 같았습니다. 언어와 텍스트는 본래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을 그때 이해했습니다. 언어가 지시하는 것은 현실의 것이 아닙니다. 언어의 결합 자체도 이미 언어 간 단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연결하는 방식이 언어의 규칙일 것입니다.
시와 반대로 연극은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서의 비현실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 때 신체는 시간과 공간이 나누어지지 않은 완결된 텍스트로서 ‘충동’이라는 비논리적 실재로 언어가 볼 수 없었던 현실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이것은 언어의 현실과 신체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좀 더 존재론적인 느낌을 줍니다. 언어가 자신의 신체를 얻는 것은 일종의 형이상학이 아닐까요? 생각해 봐 주십시오. 그게 어떤 것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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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후성 뭉크전(2024 뭉크Edvard Munch展, 한가람미술관에서) |
● 선생님이 시인이 되신 후로 지금까지 주로 어떤 주제들로 시를 써오셨는지요. 그리고 평소에 시를 쓰실 때는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는지, 선생님만의 시 세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 등단 이후 저는 체험을 도약하게 해 줄 언어를 찾고 있습니다. 관념이라고 하는 삶의 수평을 일렁거리게 하는 언어. 체험은 시간과 공간의 연합일뿐더러 어쩌면 시간과 공간의 욕망이므로 저는 신체적 사실에서 순수하게 주관적인 도약을 이루어보려 했습니다. 가령, 시간 체험을 기록해 본 다음과 같은 시가 그렇습니다.
시간
둔덕의 흙이 희다
어쩌면 검게 보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그 위에 나무들이 구불구불 꽂혀 있다
닿을 듯한 서로의 곡선에 대해 경탄하고 불안해하며
둔덕 아래 녹갈색 흙길 위에
빗물에 부풀어 두툼하게 마른 나무 벤치가 놓여 있고
그걸 아는 이들은 어깨가 줄어들면서
무릎을 모은다
멀리 강은 납작하고 앞이 들려서
위를 향해 흐르는 것 같다
하늘의 새들이 옆으로 미끄러지고
뱃고동의 말랑한 앞뒤가 눌려 있다
방향이 없이
트럭 한 대가 계속 간다
벤치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조금 부서지고
제자리로 트럭은 당겨진다
제가 언어만큼 제 삶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얘기가 이런 것은, 저는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가 문학적으로 매우 개방적인 지점으로 저를 이끕니다. 저는 시가 개인을 정당화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시만이.
저는 매일 쓰고 읽습니다. 영감이 찾아와 주길 기다리지 않고 언어를 체험합니다. 저는 느리게 읽습니다. 읽는 동안 읽은 것을 까먹을 만큼 느립니다. 예전에는 인용과 복기를 즐겨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줄거리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언어를 따라가거나 기다립니다.
언젠가 메모해 두었던 내용을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어쨌든 사실을 적을 것. 정신, 의식, 감정, 충동의 사실을 발견할 것. 비유 역시 하나의 사실로서 현상학적인 의미를 지닐 것’. 시인에게 사실이란 결국은 체험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절대적인 도움이 되는데 체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서 그렇습니다. 계속 뭔가 말하게 해 줍니다. 제게는 이것이 시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질문을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는 결국 인간은 어떤 관념들을 소유하고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고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는 감정이나 직관의 욕망이기도 하기에 제 감각과 느낌에 솔직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시의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그러나 윤리는 조심스럽습니다.
● 등단작 말고도, 선생님의 시적 색깔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건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작품에 담긴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 「예술」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등단 후 저 자신을 고립된 상태에 놓아둘 만큼, 시와 시인에 대해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 전에는 감정의 장식 같던 하이데거의 생각들이 점점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되어 갔습니다. 수학자 칸토르의 전기적 요소가 가미된 『무한의 신비』를 얼마간 읽었는데, 그의 삶과 생각 모두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유한과 무한을 생각하자면 시간의 문제가 끼어들고 운명과 예감의 신비적 체험들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축소되어 차츰 실존적인 분위기가 되고 삶이 ‘고갈에의 체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랑’이 시작된다고 느꼈습니다.
예술
당신은 다시 시작한다
유명 음악가인 그의 앨범 커버를 보자
그는 눈 덮인 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가 다리를 다 건널 수는 없기에 앨범은 영원할 수도 있다
당신이 그를 시작하는 한 그는 언제나 눈 덮인 다리를 건너고 있다
자신을 포함해 영원히 녹지 않을 눈을
그는 알 수 없다
그 장면과 눈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그가 대립할 이유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발 앞에 연주곡 번호가 씌어 있다
그 순간 현재가 얼마나 자유롭게 놓여나는가!
그는 2번에 와서야 마음이 놓였다
비로소 1번의 근거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 형태로 보아 그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앨범의 바깥에 있다
다리 건너편에 있을 그것
그의 앞
전방(前方)은 제일 먼저 그를 왜소하게 했던 것인데도 그는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작다
어쩌면 그로부터 당신이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떠오른 다음 잃어버린 생각들이 몇 개 있다
지금은 내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눈을 보존한 채 당신이 있는 세계에도 눈이 내린다
영원은 없고 겨우 조금 전 같은 시간이 있고, 왜 그런 말을 했지? 같은 말이 잘 쓰이는 곳으로 눈이 내린다
눈은 먼 강으로부터 와 다른 강의 다리를 건너고 다리 아래를 흘러간 외투를 지나쳐 왔다
눈은 그를 찾아낸다
그는 바깥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라는 문장에서 나는 감추어 둔 고갈을 느낀다
고갈은 사랑에 갇힌 것이라고, 그는 적었다
당신이 최근에서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다리를 건너 나를 만나기로 한 두 번째 다리를 향해 걷는 중이다
그러니까 그는 앞을 향했다
당신이 들은 총성은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 「색에 관한 실험」에서 겨울을 마치 사람처럼 그려내시면서 색이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모습을 다루셨는데요. “죽음은 깊어지면서 고유의 무게와 색을 띠기 시작한다”라는 표현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과학 실험 같은 형식을 빌려서 죽음과 삶의 순환을 시로 만드신 이유나 그 안에 담고 싶으셨던 생각들을 말씀해 주세요.
색에 관한 실험
겨울은 관할지에서 색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그것이 이곳의 이념인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겨울은 색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밤은 비약을 배양하는 실험실
아주 느리게 생성되는 색을 찾기 위해
겨울은 죽음의 투명성을 낮과 세상에 공개하고
밤의 침전 속도를 증대했다
푸른 바다를 축축하고 검붉은 삼투막에 가두어 놓고
노란 새의 날개를 차가운 흰색 끈으로 묶어놓았다
갈색 사막 위에 무거운 은색 암막을 드리워 생의 넓이를 폐쇄했다
돌에게서 추출한 어둠의 시료를 통해
겨울은 탈색과 무의미의 가벼움으로부터
생명이 어떻게 그 현란한 색들을 얻을 수 있는지 두고 보았다
아침에 얼어 죽은 들쥐가 발견된다
밤에 움직이려 했던 시도는 다시 변색의 결과물로 응고된다
실험이 계속되면서 밤의 어둠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겨울은 그것이 밤의 짙어지는 색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죽음은 깊어지면서 고유의 무게와 색을 띠기 시작한다
어둠의 핵심이 분열하면서 밝아진다
그것은 빛의 색과는 다른 비약의 증거이다
오늘날 확장과 응축을 반복하며 다시 색의 분열이 시작된다
갓 태어난 색은 빛의 파동을 타고 대류하며 융합한다
색색이 발화하고 색의 질량이 요동한다
겨울은 이 아름다움이 죽음의 꿈이라는 것을 기록한다
▼ 이 시가 쓰인 시기, 2020년에 극단 <피오르>에서 공연한 <돌이 된 여자>(김성민 작, 임후성 연출)는 우리는 원래 죽음으로부터 파생되어 특별하게 삶을 경험하고 있다는 시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원래 죽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른다면 삶은 죽음이 겪는 짧고 아름다운 꿈인 것입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리는 우주로 되돌아가는 존재’(『코스모스』)라고 했는데 지구의 생명체는 태양의 산물이니 20세기 우주 과학의 힘으로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는 것은 정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즉각적으로 쉼보르스카의 「귀한」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색에 관한 실험」의 주체는 밝혀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시가 거의 멈추지 않고 쓰였다는 것도 충분히 납득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선생님 시들을 보면 일상의 말들을 새롭게 바꿔놓으시고, 구체적인 이미지와 추상적인 생각들을 절묘하게 엮어내세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시는 것 같아요. 끝으로, 당선 소감에서 “고향을 떠난 모든 미사일에게 시를 읽어 주고 싶다”고 하신 말씀에서 시인다운 상상력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시인으로서 어떤 계획이나 문학적인 꿈을 갖고 계신지 말씀 부탁드리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 보여드린 시들이 우연히도 2023년도의 작품들로 구성되었습니다. 2021년~2025년에 발표한 시들을 일별해 보니, 그 사이에 시들이 꽤 달라져 있습니다. 아직 시작(詩作)에서 특별한 기획이나 구상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그랬습니다. 마치 모든 결정은 시 자신들이 하겠다는 듯이. 그렇다면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주 자연과학 앞에서 감동하고 설화와 서사시 앞에서 경건해집니다. 거기에 제가 하나의 존재로서 자격을 얻어 들어갈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존재를 설명하는 일이라면 지식입니다. 저는 시도, 연극도, 신체도 지식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시에 진심이기에 저도 하나의 지식이 되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는, 임후성 시인이 쓴 시가 아니라 이렇게 쓰인 것이 임후성이라는 뜻을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고 싶습니다. 그곳은 가설과도 같고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너무 짧게 느껴지는 곳이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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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시인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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