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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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혜진 시인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2016년 경남신문,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집으로 「포도에서 만납시다」(2021, 도서출판 상상인)를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아 발간하였습니다. 시산맥작품상과 모던포엠작품상을 수상하였고, 현) 도서출판 상상인, 아동출판 상상아, 계간지 「상상인」을 귀한 편집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선생님, ‘작가 초대석’에 함께 해 주셔서 반갑습니다. 먼저 선생님의 문학적 출발점은 언제, 어떤 계기였나요? 처음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된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여정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진혜진입니다. <일요 주간> 작가초대석에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린다는 것은 알려지는 것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귀한 초대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의 부담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은화 주필님의 겸손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의 초대가 저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의 여정 한 페이지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선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의 문학적 관심은 중학교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저의 유년은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막내인 저는 언니 오빠가 진학을 위해 도시로 떠나간 뒤 시골의 낮은 길어서 해가 지지 않는 것 같았고, 밤도 길고 긴 것만 같았습니다. 언니 오빠가 읽던 세계문학전집, 죄와벌, 데미안 손에 닿는 대로 읽고 문장을 필사하였습니다. 시부문으로 교내상을 자주 받곤 하였습니다. 이어졌다 멈췄다 돌고 돌아 늦은 감이 있었지만 40대부터 문학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이 달랐던 저는 중앙대 전문가 문예창작과정을 공부하였고 경희사이버대 문창과를 편입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오로지 신춘문예를 꿈꾸며 목표를 세웠던 저는 치열하게 시를 쓰면서 좌절하였고, 시를 쓰면서 시가 전부가 되었습니다. 2016년 광주일보,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서의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2019년 도서출판 상상인을 시작하면서 아동출판 상상아, 계간지 상상인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 시집 『포도에서 만납시다』라는 제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제목에 담긴 의미와 포도라는 소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신 시적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존재하는 것은 연기緣起에 의해 생겨나 사라집니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수원을 하였던 저의 유년, 포도덩굴에서 포도가 나서 익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래 시는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데 저의 첫 시집 제목이 되었습니다.
통화음이 길어질 때
포도에서 만납시다
머리와 어깨를 맞댄
돌담을 돌면 포도밭이 있다
우리의 간격은 포도송이로 옮겨가고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처럼
지지대를 타고 몸을 쌓는다
씨를 품는다
우리는 서로 기댄 채 손끝이 뜨거워지고
포도는 오래 매달릴수록 그늘의 맛이 깊어진다
입꼬리 올린 갈림길마다 가위눌린 꿈에서
쓴맛이 돈다
포도는 입맞춤으로 열리고 선택으로 흩어진다
바둑판 위에서 반집을 지키는
흑백의 돌처럼
우리는 내려올 수 없는 온도
피가 둥글어진다
언젠가 통화음이 길어졌을 때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걸 예감했고
덩굴인 엄마가 욱신거려
그해 포도씨는 자꾸만 씹혔다
깨물어 버릴까
한 팔이 눌리고 한 다리가 불면인 잠버릇이 생긴 곳
자유로를 지나 수목장 가는 길
포도 알맹이를 삼킨다
하나의 맛이 두 개의 흔적을 낸다
단단히 쌓은 탑을 나는 한 알 한 알 허물고 있다
우주도 그러하기에 사람의 생로병사도 포도송이처럼 일가를 이루고 머물다 서서히 무너지고 본래로 돌아갑니다. 저의 유년은 시의 모티브가 됩니다. 생각 속에서 돌담을 돌면 포도밭이 있고 그 맛과 흔적의 간격이 포도송이로 옮겨가 있습니다. 무성했던 덩굴인 엄마의 마지막을 예감할 때, 단단히 쌓은 탑의 포도송이를 한 알 한 알 허무는 일, 본래로 가는 일이었습니다. ‘포도에서 만납시다’는 형이상학적인 약속입니다. 어쩌면 세상에 없는 약속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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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혜진 시인 |
● 계간지 『상상인』은 표지가 참 예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색감의 책들을 만들고 계시는데 도서 출판 『상상인』을 설립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동기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상상인』이라는 출판사명에 담긴 의미나 지향점도 말씀해 주세요.
▶ 고맙습니다. 그리 말씀 주시니 큰 응원이 됩니다. 계간지 『상상인』을 편집하시는 분들의 정성과 열정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도서출판 상상인을 설립하게 된 동기는. 책은 사람의 좌절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큰 빛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책들을 만드는 일은 상상이 현실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문학인의 사명감에서 시작하였습니다만 취지가 퇴색되지 않게 자주 점검하며 돌아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상상인』이라는 출판사명에 담긴 의미는 생각의 수준을 높이는 사람이 상상인입니다. 최고의 표현을 추구하는 사람이 모여 문학작품의 수준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상상인의 지향점입니다.
● 『상상인』에서는 현재 20회 지리산 문학상, 최치원 시인 문학상 등 다양한 문학 공모를 동시에 진행하고 계시는데, 이렇게 여러 문학상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요? 이어서 문학상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 2021년에 시작된 상상인 신춘문예는 문학을 지망하는 신인을 발굴하여 신문사 신춘문예와 다르게 지속적으로 작품활동을 잇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폭발적인 응모자를 보면 얼마나 문학을 사랑하고 상상인 신춘문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문학상으로는 먼저 2021년에 제정된 선경문학상입니다. 선경산업이 주최하는 선경문학상은 상상인과 선경산업이 함께하는 기업과 문학의 아름다운 소통입니다. 이제 문학인에게 있어 꼭 받고 싶은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였기에 올해 제6회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훌륭한 응모작들을 보면서 문장을 지키는 작가의 역량을 키우고자 2023년 선경작가상 공모를 더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선경산업에 감사드립니다.
제20회 지리산문학상과 최치원신인문학상을 올해 2025년부터 상상인에서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지리산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이 문학상은 함양 지자체에서 지원하며,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문학상을 함께하게 되어 귀한 인연에 감사드리며 문학상에 걸맞은 문학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상상인에서 주관하는 이 문학상들로 훌륭한 작가들의 경쟁의 무대가 되고 더 알찬 문학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 지리산 문학상이 20회를 맞이했다는 것은 이미 문학계에서 상당한 전통을 쌓았다는 의미입니다. 지역성과 보편성을 아우르는 이 문학상의 지난 20년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비전을 무엇일까요?
▶ 지리상문학상은 2025년 제20회부터 『상상인』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은 오랜 역사를 거쳐 면면히 이어 온 우리 민족 삶의 터전이고 우리의 영혼이 깃든 영산입니다. 지리산처럼 높고 영명한 문학정신을 고취하고자 지리산문학상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20년의 전통을 이어온 지리산문학상은 훌륭한 수상자들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일표, 고영민, 박지웅, 김 륭, 오 늘 수상자 등 올해 20회 임서원 시인까지 많은 훌륭한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앞으로도 지리산문학상을 빛내줄 훌륭한 작가들의 많은 응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고운 최치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최치원신인문학상이 백년 천년을 이어갈 문학계의 등용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현재 한국 문학계 특히 시 문학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계시며, 출판인의 시각에서 독자들의 문학 향유 방식 변화를 어떻게 체감하고 계신가요?
▶ 시 문학의 흐름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결국 문학은 만물과 소통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인류의 문학은 작가와 독자와의 함축된 언어로의 소통입니다. 삼라만상이 그렇듯 사람의 인식도 생겨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같은 시공간에 있어도 바라봄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서는 수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우주 만물을 이루는 나로부터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현상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AI 시의 출현은 혁명 같기도 하지만 어느 한 분야만 빠져도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AI에게는 감각과 감정이 없고 오로지 데이터에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체험이 절실하지 못할 때는 그 체험이 남에게 전달되지 않고, 우리가 글을 읽고 감동하는 것은 체험의 밀도에서 비롯되는 그 글의 진실성 때문입니다. 침묵보다 나은 말일 때 무심에서 나오는 감탄일 때 독자들과 문학 향유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독자들의 문학 향유 방식은 시집과 문예지, 각종 지면도 있지만 블로그와 페이스북, e-book으로 저변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 선생님은 개인 창작을 넘어 문학 제도 구축에도 참여해 오셨습니다. 창작자와 기획자를 겸하는 문학인의 모델을 보여주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끝으로 시인이자 출판인으로서 앞으로의 작품 및 출판 계획과, 문학과 출판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 시인으로서는 창의적인 시적 역량을 키우는데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지요. 시는 세상에 없는 것을 창에 매달고,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도 그 옆에 세워두는 것이라고 합니다. 뜬구름에서 나오는 미사여구는 빗물과 같아서 침묵보다 나은 말일 때 시를 쓰고자 합니다.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판인으로서는 경쟁과 변화의 출판 시장에 따라 차츰 디지털 전환 대응이 필수일 것입니다. e-book, 오디오북 등 좋은 아이템으로 <상상인>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나눔 등 다양한 콘텐츠에 선정되어 출판사와 작가에게 자긍심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상상인>은 상상인 신춘문예와 올해 제20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을 통해 우수한 신인 작가 발굴을 하고 있습니다. 백년 천년을 이어갈 문학계의 등용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상상인과 함께 선경문학상, 선경작가상, 지리산문학상이 국내외 문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경쟁의 장으로서 많은 관심과 응모를 기대하며 내실 있고 탄탄한 문학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학 작가들의 성취감이 고취되어 한 분 한 분 문학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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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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