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이 가져다 준 폐해

안성자 작가 / 기사승인 : 2009-06-11 16: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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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 비밀 등은 같은 의미의 맥락이라고 봅니다. 모든 일의 처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 힘으로만 처리하겠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어찌 보면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처럼 훌륭한 말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사용한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최면의 효과를 발휘하게 되어 인간을 만들어가는 과정 특히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는 큰독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그러한 것들을 부추기지 않아도 성경의 결과의 틀에 맞추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진행해 왔으며 그것은 큰 병폐가 되어왔습니다. 그 동안에도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겉모습만 닮는 길을 좇아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더욱 그러한 것들을 조장시켜버린 셈이 된 것이죠.

아무리 긍정의 힘, 비밀이라 해도 결국 결과적인 접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힘으로 무조건 된다 할 수 있다, 가능하다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힘 성령의 힘이기에 그들은 절대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의 힘으로 된다, 가능하다가 무엇을 그렇게 만드는지 가능한지 정작 되어야 할 것이 되는 것인지가 문제랍니다. 그들의 방법은 과정이 생략된 결국 외형만 좇아가는 방법이기에 긍정의 힘으로 외형만 그럴싸하게 만들게 됩니다. 원래의 인간의 목적인 하나님의 내면을 닮는 것과는 다른 길로 가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의 내면까지 닮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내면을 닮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인데 긍정의 힘 때문에 과정은 생략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수없이 많은 안 되는 상황은 물론이요 실패의 연속의 과정과 시행착오 실수 망신 등 많은 부정적인 과정을 거치게 되어야만합니다. 그러한 과정은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모습으로 닮아지려면 필수입니다.

그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인간의 정체를 터득하게 되고 실수와 망신을 통하여 자신을 부인하게 되고 고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부정적인 상태에서 출발하여 부정적인 과정을 거쳐서 차차 긍정적인 결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 정상이요 하나님의 순리입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과정을 거치는 중에 자신의 내면에 쌓인 나쁜 것들이 해결이 되고 새로운 힘이 생겨나게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내면을 닮는 과정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나 결국 아름다운 완성의 지점에 도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우주를 보면 보는 것과 결과는 보는 사람에 따라 반대의 효과를 발휘 하게 됩니다. 보기에 좋지 않은 것들이 더 좋은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을 보이지 않는 가치로 탈바꿈 시켜 내면에 쌓는 것이 인간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이 세상은 허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나 긍정의 힘은 그러한 것들의 기회를 모두 말살해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것들을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하고 모두 긍정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은 결과의 모양을 긍정적인 형태를 만들어 놓고 부정적인 과정은 생략한 채 긍정의 틀 안에 끼워 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정작 하나님의 내면은 닮아지지 아니하고 겉면만 닮아지게 됩니다. 그러한 우여곡절의 상태는 지극히 부정적인 현상들이 사실인데 그 사실을 외면한 채 긍정적인 힘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결국 속은 곪아진 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외형만 그럴 듯하게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방법들이 지금까지 인간이 하나님을 닮는 과정에서 잘못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저해 요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적인 긍정의 힘만 믿고 의지하고 따라갔기 때문에 모두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고 보아야합니다. 모두가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보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은 보이는 현상이 부정적인 것들일 수록 결국 더 아름다운 긍정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인 긍정의 힘이 아니라 부정적인 상태를 긍정적인 자세와 눈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현상을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몰아 부친다면 모든 험난한 과정은 숨겨버리고 마치 긍정의 힘, 비밀의 최면을 이용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내려놓음”의 말의 의미와 책의 내용은 하나님 앞에 모두 내려놓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힘만 의지하는 것이겠지요. 어찌 보면 참으로 맞는 말이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역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진정 내가 하나님의 모습을 닮는 데에는 많은 차질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긍정의 힘과 내려놓음을 비교한다면 긍정의 힘은 자신의 의지가 들어있는 상태라면 내려놓음은 자신의 의지를 빼고 하나님 앞에 고스란히 내려놓는 것일 뿐 하나님 혼자서 처리를 해 주시는 것은 똑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정직한 것이기에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수고의 대가를 치뤄야만이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것들은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노력이 수반된 것이 아니기에 과정이 생략된 것은 물론이요 결국 자신의 것이 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이 변화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결국 그것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형만 닮아 질뿐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지면관계상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차차 말씀을 드렸으면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로 말씀드려 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행해온 것들이 거의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왔습니다. 모두 속은 곪아있는데 결과만 봉합해 놓은 모습들입니다. 날마다 교회에 가는 일이나 새벽기도를 아무리 해도 속이 곪아있는 상태를 고치지 않고 위에만 덧입히는 것이기에 영원히 갈증의 해소가 안 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세월에 따라 더 나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육체만 그럴듯한 모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육체는 영원한 곳이 못되는 장소입니다. 시간이 되면 소멸되거나 부패되어버립니다. 그것의 방지를 위해 날마다 반복적인 행동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더 큰 것들로 덧 씌워 지면서 육체는 점점 둔감해 지겠죠. 바로 된다 좋다 사랑한다 등 최면에 의하여 중독이 되어버렸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들은 그 길이 참의 길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해라 용서해라 등도 모두 결과적인 접근의 말들입니다. 그렇게 무조건 사랑으로 덮어라 용서해라 하나님께 용서하게 도와 달라고 요청 드리기도 하고 그렇게 억지로 끌어다가 하였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겠지요.

그러한 식으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용서가 된 줄 알았다가 때가 되면 다시 미움이 솟구쳐 올라오는데 진정한 용서가 안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용서를 하기 위해서 나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내가 용서 할 당사자를 만나서 상처를 받은 만큼 댕기고 부대끼는 가운데 상처 치유가 되고 성숙하게 되므로 드디어 용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처럼 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 반드시 본인의 행위가 따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야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으로선 모두가 긍정의 힘으로 꾹꾹 눌러 용서했다는 최면에 걸려 있는 상태이므로 지금이라도 최면을 풀고 원상회복을 서두르는 것만이 인류가 사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일 것입니다.

님께 서 만족이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작가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지 우려되는군요. 본인은 그 분들을 존경하고 있으며 다만 저와 다른 견해를 말씀드리는 것이므로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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