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의 사람들(3)- 방관자 효과

이호준 / 기사승인 : 2012-02-28 10: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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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찰관은 하소연을 듣는다.


경계하는 퀭한 눈빛, 추레한 옷차림, 등에 맨 살림가방, 느릿한 걸음걸이, 1....5..8...... 모여드는 노숙부랑인들이 공포영화 속 좀비[zombi]들 같다.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뛰어든 두 덩치들, 뒤꽁무니엔 위풍당당[威風堂堂]한 경찰관이다. 준의 불호령에 똥 빠지게 줄행랑을 치다 지구대로 뛰어갔던 것이다.


삼삼오오[三三五五] 가로수벤치에 앉자 시시덕거리며 구경하기 바쁜 사람들, 여행용가방을 끼고 있는 것이 부산역을 빠져나온 여행객들이다. 추레한 옷차림의 무리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낯익은 사내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아스팔트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사내를 향해 손가락질 동원한 육두문자(肉頭文字) 퍼붓기 바쁘다. 그리고 개량한복 앞섶을 풀어헤친 채 가로수벤치에 앉자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내, 산발(散髮)한 긴 머리를 헤치며 이마를 훔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심을 조합[照合]해 볼만한 상황들이다.


그래서 무전기를 꺼내든 나이어린경찰관, 119구급대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두어 걸음 뒤처진 나이 많은 경찰관은 육중한 몸을 ‘휘적휘적’ 역전을 무대로 등을 부비며 사는 사람들과 눈인사 나누기 바쁘다.


“어! 동생들 왔나.”


심상찮은 인기척에 뒤돌아본 동근, 몇날며칠을 씻지 않아 검댕이가 들어붙은 얼굴에 멍들어 붓고 터진 입 꼬리를 올린 미소가 과장스럽다. 그러나 두 경찰관 중 어느 누구도 관심 없다. 오히려 뒤늦게 도착한 나이 많은 경찰관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육중한 몸을 굽혀 지훈의 뺨을 두드린다.


“어! 어제 그 친구 아냐. 이 사람 이거? 정신 차려보소.”


어느 누가 봐도 조심스런 배려가 묻어나는 행동, 동근은 무시당한 만큼이나 마음이 복잡하다. 두 사람이 좋은 관계가 아니길 바라면 한 걸음 물러서려는데, 나이 많은 경찰관이 꼼짝 말라는 듯 올려다보며 묻는다.


“성동근씨, 어떻게 된 겁니까?”


햇볕에 노출된 얼굴을 찡그리지만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직업적인 물음, 동근은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털어 놓을 순 없는 일, 약지손가락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고개 짓으론 지훈을 가르치며 울퉁불퉁한 목소리를 쏟아낸다.


“이~바라. 이바!”


멍들어 붓고 터진 상처에 검댕이가 들어붙은 얼굴을 가르치는 정지된 모습이 흐릿한 흑백사진 속 역사적인 인물 같다. 그러나 나이 많은 경찰관의 불편한 기색에 설명을 이어가던 동근이 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주길 바라는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을 끊는다.


“이틀 전 새벽 잠자다 이 자슥한테 처 맞아가 이래 됐다 아니가! 아까 와서도, 맞제?”


쪼그려 앉아 재밌어라 ‘생글생글’ 평소에는 꼬붕 노릇이나 하던 노숙부랑인이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갤 돌리는 시치미에 외면당한 눈을 부라리는 동근, 어쩔 수 없다는 듯 끊었던 말을 잇는다.
“자는 사람 깨벼 돈 뺏고, 지 애비 같은 사람에게 손찌검 허고, 대한민국이 법치국가 아니가! 근데 뭐~ 이렇노?”
나이 많은 경찰관에겐 기대했던 사건의 내용이 아니 개인의 하소연에 불과한 내용이다. 몸을 일으키며 목소리 톤을 높여 묻는다.
“아니 누구랑 싸우다 이래 됐냐고요?”
정확한 의도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동조자가 나서주길 바라는 동근의 볼멘 목소리에 지난밤 일들을 푸념처럼 늘어놓는다.
“내가 어째 아노?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비 걸다, 저래 됐다 아니가.”
“그래 예! 내 참! 이 친구 이거, 어제 저녁에 만취상태로 지구대와가. 주셨다면서 옆구리에 칼을 뽑더라고 예.”
“진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동근의 반문에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 나이많은경찰관, 고개를 ‘흔들흔들’ 말을 잇는다.
“아! 말도 마이소. 근무태도가 어떠니저떠니하며 행패 부려대 쌓는데.”
“이 자슥 이거,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먼.”
“그래가 어쩔 수없이 공무집행방해로 경찰서로 넘겼다 아니요. 근데 어떻게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참! 어이가 없네 예.”


2. 사실은 믿어주는 자의 몫 일 뿐이다.


사실을 설명하면서도 진 죄를 자백하는 냥 눈치를 살펴야했던 동근에게 경찰관의 푸념은 두 번 다시없는 기회다. 주위를 휘둘러보며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손가락질지휘에 울퉁불퉁한 목소리를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야~ 이 어린놈한테 쳐 맞고 돈 뺏긴 사람, 일[이리]나와 봐라.”
20년 역전인생의 에피소드[episode]를 엿볼 수 있는 행동으로 모여 있는 추레한 차림의 사내들은 무슨 뜻인 줄 알겠다는 듯 ‘번들번들’ 눈빛주고 받기 바쁘다. 이들 대부분이 지훈 패거리들의 공갈, 협박, 폭력 등을 한번쯤은 경험했으며, 이틀 전 새벽엔 부산역에 나타나 잠자던 동근을 짓밟고, 돈이나 돈 될 만한 물건들을 강탈해 유유히 사라진 사실에 피해자요,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앵벌이나 장애인, 노숙자들은 신고나 증언을 하기엔 떳떳치 못한 종자들, 영악한 지훈은 그런 약점들을 십분 활용하여 범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증거나 증언을 확보 못한 경찰들은 언제나 뒷북치는 신세였고, 나이 많은 경찰관이 몸서리치는 푸념을 늘어놓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때 사이렌소리를 짧게 끊어 넘실대는 인파를 헤치며 도착한 119구급차, 서둘러 내린 구급대원이 경찰관들에게 준비된 인사를 하며 큰 대자로 널 부러져 있는 지훈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들고 온 구급상자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오픈하는데, 나이 많은 경찰관 또한 반기는 인사와 함께 취합한 정보를 늘어놓는다.


“고생 많으십니다.”
“아! 오셨는교. 지나가는 사람에게 맞았다는데 예? 지희들도 아직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했십더? 일단은 술이 많이 취한 것 같고 예?....”


나이어린대원은 구급차에서 꺼낸 구급장비들을 나이 많은 구급대원이 이용하기 편한 곳에 놓기 위해 분주하고, 동근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한 노숙부랑인들의 요구는 점점 거세진다.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는 제각자의 지껄임 같지만, 필요하면 증인을 서고 진단서를 끊을 테니 지훈과 두 덩치들을 잡아가 달라는 것이다. 그 모습에 경찰관을 달고 나타나 기고만장[氣高萬丈]했던 두 덩치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눈 둘 마땅한 곳을 찾기 바쁘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하늘을 우러러 큰대자로 뻗어 있던 지훈, 두 팔을 교차시켜 아스팔트바닥을 내려치며 눈을 뜬다. 이에 놀란 나이 많은 구급대원이 동공[瞳孔]을 키운 엉덩방아를 찧는다.


“와 이리 시끄럽누?”
“와아~ 놀래라.”


머리 쪽에 쪼그려 앉아 지훈의 동공을 살피려다 놀란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볼을 타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환자가 더 흥분하기 전에 상태를 보다 더 면밀하게 파악해야하기 때문이다.


상식대로라면 폭력을 행사한 준은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연행되고, 폭행당한 지훈은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되어야했다. 그런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심판이란 합리주의[合理主義]에 나서는 사람은 없고, 사회구성원으로서 구경이란 합법적인 방관을 할 뿐이다. 그래서 지훈과 두 덩치들이 가해자[加害者]가 될 판인데, 증명이라도 하듯 노숙부랑인들이 설득력을 발휘하기위한 손짓발짓 섞은 맞장구질을 친다.


“보이소. 저 새끼! 지금까지 죽은 척, 쇼~ 했다니까.”
“그래! 그래! 쇼다. 쇼, 치료는 무슨 치료, 내 저 새끼한테 며칠 전 돈 빼기고, 사람 때리는 것도 봤다. 잡아가소. 내 증인 할 텐께네.”
“잡아가라. 잡아가,”
“내도 옷이랑, 신발 빼긴 적 있다. 잡아가라.”
“그래, 잡아가라. 잡아가,”
누워 맥없이 지켜봐야하는 지훈은 울컥함을 주체할 수 없다. 응급처지중인 구급대원의 손길을 차내며 팔 굽혀 상체를 비스듬하게 일으키는 악다구닐 친다.
“지금 뭐라카노? 다들 더위에 노망든 기가?”
이에 구급대원이 반사적인 손길로 가슴을 눌러보지만, 막말을 내뱉는 대[對]거리에 어쩔 수 없다는 한숨을 내쉰다.
“진정하시고,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와? 알아서 뭐할라꼬? 엿이라도 바꿔 먹을 끼가?”
“흐~ㅅ~음~”


그래도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다. 상의포켓에 의료용 플래시를 뽑아 양쪽 눈을 번갈라 살피는데, 나이어린구급대원이 맞은편에 무릎 구부려 앉는다. 이동용 침대며 응급처치기구들을 사용 적절한 위치에 꺼내놓았으니 이젠 응급처치를 돕고, 또다시 발생할 돌발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내 피해자요. 저기 저 머리 긴 행님한테 뒤지게 처 맞았단 말입니더.”


약지손가락으로 준을 지목한 지훈은 진작 깨어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일어나지 않았던 건 피해자가 될 타이밍[timing] 때문이었다. 그것은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던가, 경찰관의 동정을 받으며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구세주여야 할 경찰관은 생각 같지 않고, 119 또한 감감무소식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일어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뒤늦게나마 도착한 119구급대가 상황을 풀어나갈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마음 같지가 않게 꼬여간다.


이런 상황을 증명이라도 하듯 노숙부랑인들은 말에 말을 더하는 비아냥거림으로 상황을 조작하고, 지훈과 두 덩치들은 서로를 애써 외면하는 자기 살길 찾기 바쁜 곁눈질이다.


“히~아야~! 이놈보소. 생사람 잡으려고 난리치는 것이 미친는갑다!”
“그러게 시비 걸다 처 맞는 거 말린 사람한테 와 지랄이고?”
“에이! 더럽은 자슥, 입만 벌리면 협박에,”
“맟다.”
“거짓말에, ”
“맟다.”
“차라리 지랄 옆차기를 해라.”
“맟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노니까네.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격인기라.”
“맟다.”


나이 많은 경찰관에겐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어가는 골치 아픈 상황이다. 자칫 폭력사태라도 발생하게 되면 이 많은 사람들을 연행해야 하는데, 피서 철에 일요일아침, 지구대는 이미 잡다한 사고사건으로 포화상태다. 어떤 식으로든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내 놓아야하는 것이다. 그리기위해선 심증이 아닌 증거나 증인을 확보해야 하는 법, 엉거주춤 곁눈질하기 바쁜 두 덩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이에 두 덩치 중 사실을 밝힐 기회, 역전의 발판이라 판단한 덩치가 나서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노숙부랑인들이 침 튀기는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저기 저 머리긴 행님이.......”
“뭐꼬? 저 양반이 뭐가 어쨌다는 기가?”
“니그들 자해공갈단이가?”
“어린놈의 자슥들이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는가 베?”
“참으소. 좀 더 지켜 보입시더.”
“그래! 일단 두고 봅시다.”
손가락질하는 이, 눈을 부라리는 이, 어깨에 멘 가방을 풀어 던지며 한방 칠 듯 나서는 이, 앞을 가로막는 이, 뒤에서 잡는 이....추레하지만 거리를 주름잡는 억양과 몸짓들이 잔잔하다 몸부림치듯 몰아치는 성난 파도 같다.


3. 밝혀지는 진실


이젠 윗옷 딱 단추를 채우고, 산발(散髮)한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묶은 준, 고른 숨을 쉬며 땀을 닦기 위해 수건의 깨끗한 부분을 찾는 여유까지 부린다. 그래봐야 농도 차이 일뿐 더럽기는 마찬가지지만, 딱히 나설 일이 없어 불안, 초초했던 시간동안 맨토[Mentor]역할을 했던 수건이다. 나이어린경찰관이 그런 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반짝이더니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지훈을 가리키며 눈앞에 서있는 덩치에게 묻는다.


“대체 누가 이 사람을 폭행했다는 겁니까?”
사실을 밝혀보겠다고 한발 나섰다 말 한마디 못한 채 엉거주춤 서있던 덩치다. 준을 지목[指目]하며 할 말 많다는 듯 입을 여는데, 옆에 서있던 노숙부랑인이 갑작스런 발길질을 날린다.
“그러니까. 저 머리긴 행님이..............”
“씨 부리지 마라. 새꺄.”
펑퍼짐한 엉덩이를 향해 타원형 궤적을 그린 발길질로 잘못하다간 모든 게 탈로 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섞은 것이다. 나이 많은 경찰관이 당황한 목소릴 높이며 두 사람사이를 가로막아 선다.
“아! 참, 말로 하이소.”
나이어린경찰관 또한 발길질한 노숙부랑인과 덩치사이로 뛰어든다. 하지만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파릇파릇한 경력을 말해주듯 어쩔 줄 모르는 굼뜬 행동이다.
그러나 뒤에서 눈치 살피기 바쁜 덩치에게도 옆에 서있던 노숙부랑인이 이를 악문 발길질을 날리는 것이 이미 점염된 상황이다.
“너도 죽어봐라. 새캬,”
배를 향해 거침없이 휘어들어가는 바나나킥, 당황한 얼굴을 구긴 덩치가 태권도하단 막기 흉낼 내며 뒷걸음질을 친다. 그런데 정체모를 충격, 뒤에 서있던 노숙부랑인이 뒷걸음질로 다가오는 덩치 등을 향해 쭉 뻗은 주먹을 꽂은 것이다. 등을 가격당한덩치가 단발의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친 만큼 앞으로 튀어나간다.
“이 짜슥이! 피해,”
“욱크~”


공권력이 깡그리 무시당하는 사태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경찰관들은 답답하다. 그렇다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과 가까이 있는 문제부터 해결해야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 나이 많은 경찰관이 폭행에 관련된 3명중 제일 가까이 서있는 노숙부랑인을 밀친다.


“말로 하라니깐 예.”


뒤에 서있던 덩치의 배를 걷어찼던 노숙부랑인으로, 가까이 있는 관련자부터 처리하려는 계획이다. 그러나 볼멘 목소리를 뱉으며 밀려나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그래서 나이 많은 경찰관이 본보기로 삼을 양 주의를 휘둘러보며 서슬 퍼런 공권력을 공지[公知]한다.


“이 자슥들 말로해선 안된다아니오.”
“어쨌든 이젠 그만 하이소. 누구든 한번만 더 그라믄 체포 할 낍니다.”


이에 인파 속으로 파고드는 노숙부랑인, 뒷걸음질로 다가온 덩치의 등을 후려쳤던 행위가 폭행범의 최우선조건임을 알기에 일단 피하고 보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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