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인 박경신 위원은 자신의 블로그 ‘검열자일기’에 작년 7월20일 남성 성기사진과 28일에는 여성의 나체와 음부가 그대로 묘사된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근원’을 올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소속 위원을 심의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며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박경신 위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적인 심의기준을 따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음란기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가의 검열기준을 국민이 감시하고 비판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고 법학자지만, 예술가들이 미적인 목적으로 작품들을 만든 것처럼 나는 법적 음란의 기준에 대한 토론을 위해 게시물을 올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박경신 위원을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검사 출신인 금태섭 변호사, 최정규 변호사, 조광희 변호사, 박주민 변호사, 이상희 변호사 등 47명의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됐고, 한인섭 서울대 법대교수 등이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으며, 진중권 시사평론가 등이 공개지지를 해주기도 했다.
첫 공판에 참석했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가 29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 따르면 금태섭, 최정규 변호사는 “전체 맥락상 음란물이 아니고, 개인 블로그에 학술 목적으로 올린 행위가 ‘음란한 화상을 공공연하게 전시한 행위’라고 볼 수 없으며, 자진 삭제까지 한 점에 비춰 음란물죄의 고의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2차 공판은 5월 11일 오후 3시 30분에 열리며, 한인섭 서울대 법대교수와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감정증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진행될 예정이다. 홍성수 교수는 “두 분은 형법과 헌법분야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특히 공판에 앞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참여연대, 강명득 변호사, 박기호 인권활동가,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교수 등이 모여 만든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는 이날 “통심심의의 문제를 고발한 ‘검열자일기’의 무죄 판결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며 검찰을 규탄했다.
연대는 “우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심의가 표현의 자유 침해임을 굳게 믿으며, 방통심의위의 문제를 고발한 박경신 위원의 행위를 지지한다”며 “또한 박 위원을 ‘음란죄’라는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기소한 검찰을 규탄해 마지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2008년 출범한 이후 인터넷 표현물을 심의하고 조치해온 방통심의위는 끊임없는 검열 논란을 일으켜왔으나, 일반 시민들은 방통심의위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며 “인터넷 심의는 한번 회의에서 1천 건 이상을 처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떻게 심의했고 게시글은 왜 삭제됐는지 아무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경신 위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록을 남기기 위한 의도로 개인 블로그에 ‘검열자 일기’를 연재했다. ‘검열자일기’는 자살, 이적성, 폭탄제조법, 욕설, 대변, 야한 소설, 대통령 암살, 혐오 등 여러 쟁점에 대해 방통심의위의 삭제조치가 정당한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블로그 방문자들과 토론하는 공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연대는 “한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남성 성기 사진을 방통심의위가 ‘음란’이라는 이유로 삭제했고, 박 위원은 이 사진들이 형사처벌 대상인 ‘음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비판하는 게시물을 게시했는데, 그 게시물로 인해 박 위원 자신이 형사재판에 서는 당사자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검열자일기’의 형사처벌 여부를 법정에서 다투게 된 오늘의 현실은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의 현 주소를 드러낸다”고 개탄하며 “검열자일기는 이미 공개적으로 진행된 심의과정을 블로그에서 다시 한 번 펼쳐 보이면서 그 심의가 정당하고 타당한 것인지를 공론의 장에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게시물이 과연 ‘음란’한 것인지를 심의위가 아닌 일반인들이 다시 한 번 숙고하고 판단할 것을 촉구한 것”이라며 “하지만 검찰은 이런 맥락을 거두절미하고 오로지 해당 게시물만을 문제 삼고 있다”고 질타했다.
연대는 “특히 박 위원이 그간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사건, 방심위 심의 문제, 언론소비자운동 등과 관련해 정부와 검찰을 비판하는 활동을 활발히 해 왔다는 점에서 검찰의 기소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며 “행여 앞으로 다가오는 선거 시기 방송과 통신 심의 과정에서 야당 위원으로서 그의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려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연대는 “시민들이 말과 말을 나누는 자유에 국가권력이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표현의 자유의 본령이기에, 검열자일기의 연재와 그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두고 다투는 이 모든 과정이 표현의 자유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검열자일기를 처벌하는 것은 박경신 개인에 대한 처벌일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그에 대해 토론할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법원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 명단
다함께, 문화연대, 미디어기독연대, 민주노동자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인권영화제,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운동사랑방, 인천인권영화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언론노동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작가회의, 한국진보연대, 강명득(변호사), 박기호(인권활동가), 전진한, 홍성수(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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