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 이 원 기자] 경북 구미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4개월 만에 인근 상주에서 다량의 유해화학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해 유독물질 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 감식 결과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사고 수습에 나서야할 상주시 재난대책 지휘본부 의 대처 및 공장 초동 조치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난에서다. 특히 담당 공장 측에서 자체 해결을 하겠다고 나선 부분이 ‘사고은폐 의혹’까지 나오고 있어 결국 늑장 조치등의 부실한 관리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메인 밸브 파손’이 원인
14일 경북 상주시 웅진폴리실리콘 공장의 염산 누출사고는 메인 밸브의 파손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상주 웅진폴리실리콘 공장에서 현장 감식을 벌인 국립과학연구원은 “육안 검사 결과 탱크에 연결된 메인 밸브가 파괴돼 염산이 누출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과원 중부분원 김은호 이화학 과장은 “수거한 밸브를 실험실로 가져가서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과원 감식 결과 염산을 담은 탱크 내부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탱크 내부 압력에 의해 폭발, 염산이 누출됐다면 밸브가 파손돼야 하는데 사고가 난 탱크의 밸브에는 폭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동파로 인한 밸브 파손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김 과장은 “밸브의 재질이 FRT(Fiberglass reinforced plastic)로, 지금까지 이 재질이 동파 때문에 파손된 적은 없다”고 했다.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인 FRT는 물탱크나 정화조에 많이 사용되며 세면대, 보트 등을 만드는 재료로도 널리 쓰인다.
경북 상주경찰서는 14일 상주시 청리면 웅진폴리실리콘 상주공장 염산 누출사고와 관련, 공장 측의 신고 은폐 의혹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연기가 난다” 주민 신고 접수
상주시 재난 지휘 체계 ‘적신호’
경찰에 따르면 이번 ‘염산 누출 사고’는 12일 오전 10시께 사고 공장으로부터 600여m 떨어진 우사에서 일하던 마을 주민 김 모(55)씨의 신고 접수 그 시작이었다. 김 씨는 ‘우사로 오던 도중 공장 쪽에서 연기가 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10시 40분 경 청리면사무소에 사실을 처음 신고했다.
이후 그는 오전 10시42분, 10시45분, 11시1분 3차례 상주시와 119, 112에 연이어 신고했지만 이때까지도 상주시와 경찰, 소방서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112 상황실을 통해 사고를 접수한 시각은 11시 10분.
앞서 염산 누출 사실을 처음 발견한 공장 경비원 하 모(44)씨는 경찰 조사에서 “공장 정문 옆 경비실에서 근무 중이던 오전 7시20분께 사고 발생 현장 쪽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오전 7시39분께 공장직원인 유 모(39)씨에게 전화로 알렸다”고 했다.
결국 경찰과 주민, 공장 직원의 말을 종합하면 적어도 주민이 사고를 신고하기 3시간20분 전에 웅진폴리실리콘 공장 측에서는 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경비원 하 씨의 연락을 받은 공장 직원 유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연락을 받고 공장 직원들에게 조치를 취하도록 했으며, 오전 11시30분께 공장에 도착해 당시 근무 중이던 직원들과 함께 염산을 이동시키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 공장 측에서는 상주시나 경찰, 소방서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경찰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북경찰청과 함께 현장 감식에 들어갔으며 공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경위와 사고 후 조치, 업무상과실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공장의 늑장 대응과 함께 충격적인 것은 상주시 재난대책본부의 대응 체계다. 사고가 난 다음날인 13일 오후, 사고 인근 지역 주민들이 피해 현황과 대책을 논의하는 동안 상주시 재난대책 현장지휘를 맡고 있는 정만복 상주시 부시장과 조병섭 행정복지국장, 이영호 재난관리국장 등이 퇴근하거나 대부분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해물질 누출사고로 인명피해나 재산피해가 발생하면 관할 자치단체는 즉각 재난종합상황실을 가동하고,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상주시는 직원 일부만 현장에 남겨둔 채 지휘라인의 간부 공무원이 모두 자리를 비워 재난 대책에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공장 인근 주민
목·피부 고통 2차 피해 우려
한편 사고가 일어난 공장 인근 주민 중 일부가 목, 피부 등의 고통을 호소해 2차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이날 마을 이장을 중심으로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발생 사흘째인 14일 상주시 청리면 마공리 주민들에 따르면 13일 오후 주민 20여명이 마을회관에 모여 염산 누출에 대한 2차 피해 조사와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주민 5~6명이 목과 눈, 얼굴 등의 고통을 호소했다.
주민 전 모(62)씨는 “염산 누출사고 이후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목이 따끔거린다”고 했고 김모(70)씨는 “사고공장 부근에서 연기(염화수소)를 맡았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 속이 메스꺼워 소화제를 먹고 잤다”고 말했다.
조모(76)씨는 “사고 당일 (염화수소) 냄새를 맡아서인지 다음날 머리가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러움 때문에 고생했다”며 말했다.
주민들은 “사고가 난 공장에 불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불안해서 못살겠다”며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을 즉시 철수하도록 상주시에 건의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무엇 보다 건강이 중요한 만큼 동네 주민들의 건강검진부터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준 마공리 이장은 “청아면장이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주민 의견이 충분히 상주시에 전달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상주시 청아면 마곡리는 염산 누출사고가 일어난 웅진폴리실리콘 공장에서 800여m 떨어져 있으며, 주민 12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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