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제 49회 대종상에서는 ‘광해’가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등 15개 부문을 독식하는 가운데, 피에타는 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특별상, 단 2개 부문을 수상하는데 그쳤다. 물론 상을 받는 것이 영화의 가치를 모두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한국 최초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수작으로서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영평상 수상소감에서 “올해 천만 영화 두편 (‘도둑들’, ‘광해’)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영화 자체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화인들의 노력도 굉장히 높이 산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고 덕담을 건냈다. 그러나 이어 “다만 한 가지, 백성의 억울함을 말하는 영화가 멀티플렉스 극장 독점을 통해서 영화인들을 억울하게 한 것이 많이 아쉽다”며 뼈 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도둑들이나 광해 모두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1,000만 관객의 선택을 받은 영화인 만큼 재미로나, 작품성으로나 분명 훌륭한 영화들임에 의심할 여지는 없다. 다만 두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마냥 칭찬 받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던 부분을, 김기덕 감독은 많은 영화인들을 대표하여 지적한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 수상 기념 기자회견 당시, 김 감독은 “(관객 점유율이) 15% 미만인데도 1,000만 관객 달
성이라는 기록을 세우기 위해 영화를 내리지 않고 있다”며 영화 ‘도둑들’의 멀티플렉스 상영을 비판한 적이 있다. 영화 ‘광해’도 비슷한 경우다. 멀티플렉스 극장을 운영하는 대기업이 배급을 맡은 덕분에 500개 이상의 상영관을 확보하며 1,000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었다.
물론 인기 있는 영화가 많은 상영관에서 상영되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김기덕 감독이 지적한 것처럼, 인기 여부에 관계없이 배급사의 힘으로 상영관을 확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어떤 영화들은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서 관객들과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배급사가 영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영화의 내용이나 질을 결정하는 제작보다 배급이나 마케팅이 흥행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가 돈이 되기 시작하면서 대기업들이 배급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배급과 투자를 이유로 제작지분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영화 산업의 중심이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닌 유통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은 분명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유통 권력’이 산업의 중심이 되는 것은 비단 영화계만의 일이 아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큰 인기를 끌면서, 싸이의 음원 수입에 관해 여론의 관심이 모인 적이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6개 주요 음원 차트에서 9주간 1위를 차치했던 싸이의 음원 수입이 총 3,600여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은 음원사이트 등의 유통사가 30% 정도만 수익을 가져가는 반면, 한국은 50%에 가까운 수익을 가져간다. 음악계에서는 ‘음원정액제’을 반대하며 한 곡당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이를 돌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을 넘기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소비자와 음악인들이 서로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을 할 것이 아니라, 음원의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 배분의 모순을 바로 잡음으로써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유통 권력’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대형 할인 마트’이다. ‘1+1 행사’나 ‘통큰 치킨’으로 대표되는 대형 마트의 공세는 골목 상권을 죽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소비자에게 저렴한 물건을 공급하고 편의를 제공하면 그 뿐이라는 항변도 있었지만, 소규모 상인들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형 마트의 문제나 앞서 언급했던 영화 배급사, 음원 유통사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지 영화인, 뮤지션, 골목 상권의 피해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제작자보다 유통 권력에 더 큰 힘이 주어질 경우 보다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독점’이다. 유통 권력 문제의 핵심은 독과점이 생기면서 각종 제품의 생산과정의 기형적 구조를 만들어 내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유통 권력의 독점을 꾸준히 견제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제품의 질적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
생산의 독점보다도 더욱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극장을 갔는데 ‘광해’ 밖에 상영하지 않는다는 상상을 해보자. 혹은 통큰 치킨이 질려 다른 통닭은 먹고 싶은데 어디서도 팔지 않는다는 가정을 해보자.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음원 사이트가 수익이 맞니 않는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중단했는데 그 외에는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인가. 지나치게 시장 논리만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시장 경제를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유통 권력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영화 ‘광해’의 천만 관객 신화를 보면서,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쉬움과 걱정이 함께 밀려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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