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곱절 백 곱절 더 소중하다”라고 외치는 하선의 외침이 연극 ‘광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영화개봉 3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연극으로 다시 선보인다는 것이 관객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나 영화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은 시점에서 연극만의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은 어쩌면 힘든 싸움일 수 있다.
역사 속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픽션과 논픽션의 외줄을 얼마만큼 잘 타느냐가 관건이다. 너무 과하면 역사 속의 사건이 왜곡(歪曲) 될 수 있고 덜하면 관객에게 캐릭터의 정서가 잘 전달될 수 없다.
광해와 하선이라는 1인 2역을 편집이나 영상미 없이 표현해야 하는 연극은 드라마의 탄탄한 구성과 캐릭터의 정서적인 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입부는 영화와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하선이 왕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좀 더 속도감 있게 표현된다.

영화에서는 도부장과 하선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을 두고 신경전이 펼쳐지지만 연극에서는 도부장이 이미 하선의 정체를 알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던 하선과 도부장의 긴장구조를 배제 시킨 대신에 연극은 하선이 왕의 되어가는 과정을 좀 더 심도 있게 그리고자 했다.
도부장이나 허균이 예전의 전하를 그리워하는 모습이나, 허균이 “하선, 그자에게서 예전 전하의 모습을 보았네……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다시 본 거지. 그래서 몇 년 만에 맘이 설렜네”, 중전이 “전 요즘 예전 전하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더할 더위 없이 행복합니다”라는 대사를 통해 하선이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는 왕이 되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연극만의 특징이 또 있다. 바로 관객참여다. 연극은 직간접적으로 관객이 연극에 참여한다. ‘광해’에서는 여색을 밝히는 광해군이 18째 비를 채택하는 과정을 놀이와 하선의 걸쭉한 입담으로 관객을 동참시킴으로 유쾌한 웃음과 해학을 잘 보여줬다.

또 궁에 끌려간 하선에게 허균이 대신들의 이름을 외우게 하는 장면이나 매화틀을 들이는 장면, 변의 맛을 보는 장면은 연극만의 재미를 살렸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도플갱어 기법이나 줌 인(zoom in)을 통한 인물의 생생한 표정은 나타낼 수 없지만 타악기의 고저나 극의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나오는 음향은 인물의 심리와 캐릭터를 긴장감 있고 위트 있게 잘 표현하였고 무대에 두 대들보가 기울어진 모습은 조선의 위태로운 상황과 광해의 비뚤어져가는 심정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대소신려들의 4대부의 도리와 명분을 내세워 명나라에 파병을 요청하는 자리에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곱절 백 곱절 더 소중하다” 외치는 하선의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뛰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외침이었다.아마 우리는 이런 리더를 기다리고 소망하는 것이 아닐까?
평면적인 나열조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영화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영화와의 대결에서는 다소 밀리지만 연극의 재미와 결말의 비틀기로 권력의 가장 하위에 있는 천민의 모습을 빌어 조선이 필요로 했던 진정한 군주의 모습을 그려낸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진정한 리더를 바라고 꿈꾸는 2013년 현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는 영화’26년’등에 출연했던 배수빈과 뮤지컬 ‘셜록 홈즈’의 김도현이 번갈아 광해를 연기한다. 오는 4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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