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0년 전(BC 496~406년) 소포클래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3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에 해당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비극적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그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불륜을 저지른다.
근친상간으로 괴로워하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철저한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서 죽을 때까지 황야를 헤맨다.
그의 자식들인 안티고네, 이스메네, 폴리네이케스, 에테오클래스는 어떻게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이것의 궁금증의 열쇠가 오이디푸스의 3부작 중 종결편인 ‘안티고네’에 나와 있다.
오이디푸스가 황야를 헤맬 때, 그의 곁을 지킨 것은 아들들이 아닌 딸들이었다.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래스는 아버지가 포기한 왕위를 얻고자 싸우고 승부가 나지 않자 두 아들은 1년씩 돌아가면서 왕을 하기로 합의한다.
에테오클래스가 먼저 왕이 되어 테베를 다스리고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의 공주와 결혼을 한다.
약속한 1년이 지나 에테오클래스가 왕위를 넘기라고 이야기 하지만 ‘권력은 나눠가질 수 없는 것’.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넘기지 않는다. 결국 에테오클래스는 군대를 일으키고 테베를 침략하지만 저주 받은 씨앗의 결말이었던가. 두 사람 모두 전사한다.
안티고네의 숙부이자 오빠인 크레온은 왕권을 이어 받으며 혼란스러운 국가를 강력한 법으로 통치하려 하고 그 본보기로 테베를 침략한 폴리네이케스에게는 가혹한 법으로 그의 매장을 불허한다.
에테오클레스에게는 국왕으로 테베를 지키다 전사한 점을 높이 사 성대한 장례를 치러준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매장을 금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크레온(인간의 법)과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한 안티고네(신의 법)의 두 법이 대립한다.
<오이디푸스>가 정체성에 대한 논란으로 빚어진 비극이라면 <안티고네>는 법과 개인의 양심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국가의 법이 개인의 양심에 우선되어야 하는가, 개인의 양심이 국가의 법에 우선되어야 하는가.
국립극단과 한태숙 연출의 <안티고네> 어떠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싶었는가. 그리고 이 시대의 <안티고네>는 2500년이 지난 21세기 관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의 표정은 어려운 숙제를 하나 가득 받고 나오는 듯 했다.

극은 어둠 속에서 빗소리와 사람들의 수군거림, 울음소리가 괴기하리만큼 음산한 분위기로 표현되고 있다.
사람들의 움직임 또한 좀비에 가깝다. 살아있지도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영혼 없는 메마름이 느껴진다. 격렬한 움직임 사이로 짓이겨진 시체 폴리네이케스가 굴러 내려온다. 주검이 되어버린 폴리네이케스를 보며 사람들은 동정심을 보이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다. 클레온의 애도와 매장을 금지하는 칙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자는 땅속에서 쉴 수 있다”라는 신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한다. 이것이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한 치도 양보 없는 대립의 사건이다.
현대인에게 100분이라는 시간을 집중하라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만큼 볼거리와 콘텐츠가 난무한다는 의미도 되겠다.
하지만 연극<안티고네>는 흡인력이 강한 연극이다. 노장 배우들의 연기 인생의 연륜(年輪)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신구(클레온), 김호정(안티고네), 손진환(파수꾼) 등 많은 배우가 역할을 빛을 발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띈 건 박정자였다. 길다란 지팡이를 들고 까마귀 무리와 함께 등장한 예언자 테레시아스(박정자)는 2번의 출연에도 그 존재감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자만함과 오만함의 절대군주의 크레온과 자신의 신념으로 벼랑 끝까지 몰아 세우는 안티고네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 주지 못하고 맹목성과 논리가 다소 약했던 점이다.
두 인물의 대화와 행동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의 줄다리기가 더 팽팽한 긴장을 유지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크레온에게 내려진 시의 단두대가 절정의 비극으로 관객에게 다가 갈 수 없을 지 모르니 말이다.
9미터 높이의 가파른 삼각형 경사무대는 벼랑 끝에 있는 캐릭터의 심리를 잘 보여주거니와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움직임이 보여지기에도 효과적이다.
무대가 가운데로 갈라지는 것 또한 안티고네의 철저한 고립과 괴로운 심리가 잘 표현 되었다.
김창기 조명 디자이너의 부분적인 조명과 이경은 안무가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도시의 비극을 암시하는 검은 새 때의 몸짓은 관객들에게는 불안감을 시민들에게는 두려움과 공포를 보여주었다.
김우성 의상디자인의 현대적인 의상 또한 극과 앙상블이 조화되어 <안티고네>의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티고네>는 세기를 뛰어 넘어 모드 사람들에게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는 오만한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는 중요한 작품이다.
오는 28일까지 공연되는 <안티고네>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재개관 이후 첫 연극 작품이다. 배우 신구(크레온), 박정자(테레시아스), 김호정(안티고네), 이갑선(하이몬), 윤현길(이스메네), 우현주(유리디케), 손진환, 서경화, 신덕호, 강진휘, 박종태, 황성대, 이지혜, 심완준, 최순진, 전운종, 허진 등이 출연해 열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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