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30일 한국기원에서 제8기 원익배 십단전 시상식이 열렸다.
‘十段’ 칭호를 얻은 주인공은 강동윤 9단. 결승 상대는 반집 마왕이라 불리는 계산과 끝내기의 달인 박영훈 9단이었다. 사실 결승전을 앞두고 상대전적에서도 6:7로 강동윤 9단이 밀리고 있었고, 랭킹(박영훈 9단 5위, 강동윤 9단 9위)도 그렇고 또한 당시 박영훈 9단이 14연승을 거두는 등 무서운 기세를 올리고 있었기에 바둑계에서는 박영훈 9단의 우세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국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 난전 끝에 승리를 거둔 강동윤 9단이 2국에서는 불리한 바둑을 특유의 버티기로 상대를 흔들어 끝내 역전에 성공하며, 결국 2-0 퍼백트 승리를 거두었다. 2009년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3년 9개월만에 우승이며 본 대회에서는 첫 우승이다.
사실 세계대회인 후지쯔배를 제패하고 난 후 거의 4년의 시간동안 타이틀이 없었기에 그 동안 남모르는 아픔이 많았을 것이다. 3번의 우승 기회가 주어졌지만 번번이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던 아픔의 시간이 있었기에 우승의 기쁨은 더욱 컸다.
강동윤 9단은 우승상금 5000만원과 우승 트로피를 치켜들고 특유의 환한 웃음을 보이며 지나간 아픔의 시간들을 모두 날려 보냈다. 준우승자인 박영훈 9단도 트로피와 20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강동윤 9단은 오랜만에 우승하며 기쁘게 한해를 시작해서 기분이 좋다. 이 기세를 살려서 다른 기전에서도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시상식에는 후원사인 (주)원익의 차동익 대표이사, 조용래 기획조정실장, 김동처 기획조정실 상무, 주최사 경향신문의 정동식 부사장, 오광수 국장과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김계홍 바둑TV 사장 등이 참석해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치열한 랭킹 다툼
최근 랭킹 싸움이 (漸入佳境)점입가경이다. 5월 랭킹을 살펴보면 이세돌 9단이 한 달 동안 5승 3패의 성적을 거두며 7개월째 랭킹 1위를 수성했다. 이세돌 9단이 1위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어느덧 자연스러워진 느낌, 하지만 이제는 정상의 자리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지난 3월에는 제14기 맥심커피배 결승에서 박정환 9단에게 0-2으로 타이틀을 내준 것에 이어 4월에는 김지석 9단과 제18기 GS칼텍스배 결승에서도 0-3 완봉패를 당하며 점수가 제법 많이 하락했다.
이세돌 9단의 랭킹 점수는 9795점이다. 올 1월 기준으로 9851점을 기록한 이세돌 9단은 4개월 동안(당시 2위 박정환 9단 9,686점) 56점의 하락폭이 있었다. 반면에 추격자들의 랭킹 점수는 상승 중이다. GS칼텍스를 품으며 8승 1패의 성적으로 랭킹 2위에 이름을 올린 김지석 9단은 지난 1월 9578점 (7위)에서 점수가 대폭 상승하여 9720점으로 142점의 상승폭을 그렸다.
김지석 9단은 자신의 역대 최고 랭킹인 2위를 기록함으로 이제는 1위 자리마저 넘보고 있다. 랭킹 3위를 기록한 박정환 9단은 4월 한 달 동안 5전 전승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나 김지석 9단의 점수 상승폭이 워낙 커서 1년 9개월 만에 3위 자리로 밀려 내려왔다.
그러나 박정환 9단도 지난 1월 9686점에서 5월 9710점으로 5개월 동안 24점의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현재 1위인 이세돌 9단과 3위인 박정환 9단의 점수 차이는 85점, 이제는 얼마든지 순위가 요동 칠 수 있는 가시권 안에 있다. 반면에 최철한 9단이 12승 1패의 성적으로 두 계단 상승한 4위에 올랐고, 최근 제8회 원익배 십단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무관에서 탈출한 강동윤 9단은 12승 2패의 성적으로 3단계 상승한 5위를 기록했다.
한편 부진한 성적이 이어지며 어느덧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던 이창호 9단이 9전 전승의 성적으로 11개월 만에 다시 10위권 진입에 성공하며 부활의 날개를 폈다.
여자 기사 중에서는 박지은 9단 만이 유일하게 100위권 안에 이름을 남기며 87위를 기록했다. 2009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로운 한국랭킹은 레이팅 제도를 이용한 승률기대치와 기전 가중치를 점수화 해 매달 랭킹 100위까지 발표된다.
집중분석
제8회 원익배 십단전 결승 2국
흑: 박영훈 9단 백: 강동윤 9단
결과: 192수 백불계승
제8회 원익배 십단전 결승 2국에서 간단한 수읽기를 두 기사 모두 착각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금부터 그 내막을 살펴보자.
강동윤 9단이 좌변 흑 대마의 공격하는 과정에서 박영훈 9단의 묘수가 등장한다. 흑 1, 3에 이어서 흑 5가 준비된 수. 백 6이 불가피할 때.
흑 7까지 연결에 성공하며 박영훈 9단이 우세를 확립한다. 백 6으로 A로 차단하는 것은 흑이 6의 곳에 두어 백이 곤란한 형태. 형세가 불리한 강동윤 9단은 2도 백 1을 선수로 활용하고 백 3의 곳을 차지해 하변 집을 극대화 시키는 작전을 펼친다.
흑 10의 차단에 백 11, 13이 강력한 저항. 계속해서 흑이 3도 흑 1로 움직이는 것은 백 8까지 흑 돌이 갈 곳이 없다. 박영훈 9단이 수순 중 4도 흑 1로 차단하는 것이 간명했다. 백 2로 한 점을 잡는 정도인데 흑 3, 5로 백 모양이 많이 깨져서 흑 승이 확실시 되는 그림이다.
5도 흑 1은 백의 약점을 추궁하며 국면을 안정적으로 정리해 가겠는 뜻. 앞서 이득을 봤지만 여전히 강동윤 9단이 불리한 형세. 이대로 끌려가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강동윤 9단은 백 2, 4, 6으로 강하게 버텨간다. 이것이 해프닝의 시작. 사실 우변 백 돌은 여전히 못 살아 있는 형태다. 하지만 두 기사 모두 우변 사활을 착각하고 있었다. 우변 백 대마는 6도 흑 1의 곳에 치중하면 살길이 없었다.
백 2로 받는 것은 흑 3으로 늘어두고, 백 4에 흑 5로 두어서 잡히는 형태. 7도 백 1로 응수를 달리하는 것도 흑 4의 치중이 호수로 흑 10까지 오궁도화로 잡히는 모습이다. 사실 이런 정도라면 중급 사활 정도의 수준인데, 아무리 초읽기 상황이라고 해도 정상급 기사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이 착각 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하지만 강동윤 9단이 수를 정확하게 봤다면 사실 상 역전이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착각이 약이 된 셈이다. 결국 박영훈 9단은 8도 흑 1로 단순하게 막아서 받았고, 백 2로 백 대마의 삶이 확인됐다. 흑 5로 지킬 때 백 6으로 늘어서 정리하는 것이 끝내기의 묘. 하변에서 백이 큰 이득을 보고 백 12로 큰 자리를 차지해서는 역전무드다.
강동윤 9단은 이후 박영훈 9단의 실수를 정확하게 응징하며 결국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대국을 보며 원숭이도 가끔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3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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