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가에게 있어서 유년기의 기억은 창작행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작품과 늘 같이한다. 그 기억은 작품주제나 모티브를 설명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작업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자면 미술가의 작품은 자신의 경험 그 자체라 할 만하다. 황인혜 작가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닌데, 자신에게 주어졌던 내·외부적 환경적 요인이야말로 독자적인 작품을 형성케 한 주 요소다. 성장지의 특성과 가족 간의 연관성도 크다. 아름다운 시절이었음을 고백하는 작가에게 그러한 환경이 바로 스승이었다.
경북 대구 인근에서 출생한 그는 아름다운 정원과 사과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친은 서예 뿐만 아니라, 시와 그림에도 남다른 능력을 소유한 분이었다. 그러한 부친의 영향을 받은 것은 자연스런 일로서, 작가로서는 유년기부터 인문학적 분위기에서 성장하는 행운을 가지게 된 셈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회를 받아들이고 자기화하려는 태도다. 황인혜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학습기회를 한껏 받아들였다. 필묵이라는 재료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 잠재된 예술적 가치를 발견했다. 작가의 눈과 인식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동양 문화권에서 발견할 수 있는 회화적 근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성장한 그의 작품에서는 지적 요소와 한국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서예는 작업을 위한 기초이자 향후 전개될 예술 활동의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다. 서울대 동양화과 재학중에 국전 서예 분야에서 입선을 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글씨를 쓴다는 일반적인 행보를 따르지 않았다.
기법적인 측면이서나 문자 그 자체에 매달리기 보다는 확산된 조형적 시도를 선택했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선과 선, 선과 면, 면과 면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선의 장단, 면의 농담, 필압의 강약도 회화적 경계에서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그는 서예에서 발견할 수 없는 형상의 자유로움을 구사할 수 있었다. 황인혜 작가는 한국화가로서 정통적이고 모범적인 학습방식법을 체득했다. 먹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서예에 깃든 인문학적 수양의 과정을 거쳤다. 이번 예술의전당에서의 개인전에서는 40여년에 걸친 그의 양식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황인혜 작가의 작품에는 간결한 색조가 주는 시각적 편안함이 있다. 창조주가 선사한 자연과 인류가 고안한 최고의 산물인 문자 사이에서 그는 부드럽게 유영한다. 작품 속에 간직하고 있는 추상적 아름다움이 있는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리 낯설지 않는 색조와 공간구획, 일상에서 접하는 문자의 조합이 그 핵심이다.
그의 최근작에서는 문자추상을 중심으로 하되 보다 종합적인 제작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인물, 풍경, 문자추상 등을 구태여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작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0년 덴마크에서 열었던 갤러리 넥서스 쿤스트센터(Galleri Nexus Kunstcenter)초대개인전은 그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그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집약한다. 한지의 특성을 잘 이용한 순수 추상회화, 추상과 구상의 자유로운 조합, 한지를 오브제로 이용한 입체적인 작업, 한글의 자모음을 기초로 한 인물의 단순화작업 등이 전시작품의 사례다. 더욱이 종이 매듭을 만들어 작품 요소요소에 배치한 것도 감각적이었다.
예술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예술가 자신이라고 한다. 어떠한 소재나 내용으로 작품을 다루더라도 결국 그 작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흙과 나무에서 자연을 배우고 문살과 한지에서 매체를 발견했다.
먹(墨)이 어떤 세계를 열어 보여줄 수 있는 지도 비교적 일찍 깨우쳤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매우 소중하며 그 중심에는 사랑이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작가에게는 이같이 따스하고 넉넉한 요소들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조형적 사유를 보다 풍성하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다.
황인혜 작가의 작업 요체는 문자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한글 고유의 아름다움과 형태를 이용한 조형적 실험은 그만의 개성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성과의 뒷면에는 전통이라는 뿌리와 연결된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우리 문화를 재발견하려는 진취적인 자세와도 연계되어 있다. 그는 작은 경험일지언정 크고 깊게 받아들이고자 했다. 부분적인 요소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예술작품으로 확장해내었다.
이러한 태도가 모여 황인혜 작가의 정체성을 만든다. 이 점에서 이 다양한 형태의 조형작업은 곧 그의 자화상이라 할만하다.
@예술통신 감윤조(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큐레이터)


<PROFILE>

황인혜
196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개인전 27회
2012 KSD 문화갤러리, 서울
2011 명지미술관, 담양
예술의전당 갤러리7, 예술의전당
2010 갈레리 낵서스쿤스트센터, 덴마크
2009 부산아트센터, 부산일보사
2007 갤러리 베아르떼, 서울
2006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코엑스
MANIF12! 06, 예술의전당
2005 MANIF11! 05, 예술의전당
경향 갤러리, 경향신문사
단체전
2012 서리풀 회화대작 전,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서울미술협회전,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서초미술협회전,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2011 쾰른아트페어, 독일
KIAF, 코엑스
한국화 여성 작가전,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2010 “서울에서 카라카스까지”, 갈레리 디마카 초대전, 베네주엘라
한국미협전, 예술의전당
화랑 미술제, 벡스코
SOAF (서울오픈아트페어), 코엑스
서초 한국화전, 팝아트 팩토리
한국-라틴 현대미술전, 베아르떼
2009 아트인터내셔널취리히, 스위스
북경 관음당 아트페어 2009
2008 아트 상하이, 중국
베이징올림픽아트페스티벌, 베이징
2007 갑자전, 서울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베를린기술박물관, 연세대학교박물관, 남송미술관,
모로코현대미술관, 주부루나이 한국대사관, 주네델란드 한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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