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와 함께 봄의 전령사들 따스한 꽃소식
산과 들판 위에서 종다리가 봄소식을 물고와
냉각되어 있는 남북관계 잠시나마 희망 시선
● 3월이 오면 삼라만상이 분주해진다.

[일요주간 = 작가 한상림] 3월이 오면 삼라만상이 분주해진다. 땅속에 있는 씨앗들은 새싹을 밀어 올리며 발아를 시작하고, 겨우내 잠들어 있던 나무도 꽃눈을 틔우려고 가지 끝으로 양분을 끌어올리며 새 잎 돋을 준비를 한다.
덩달아 바람도 신이 나서 꽃눈을 간지럽히며 긴 동면에 잠들어 있던 나무들도 기지개를 켠다. 산골짜기의 계곡이 몸을 풀면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가지사이에 이는 바람소리, 새소리와 함께 구석구석 봄의 전령사들의 따스한 꽃소식이 밀려온다.
봄의 전령인 꽃들의 함성은 마치 태극기 휘날리며 밀려오던 3.1 운동의 만세 함성처럼 추운 겨울에서 해방되었음을 알린다. 또한 꽃샘추위가 움츠리고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몸살을 일으키며 부산을 떨어대다가 잠들어 있던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나서야 물러간다.
3월은 자연의 몸짓으로부터 온다. 봄눈이 지나간 빈 나뭇가지에 맺힌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의 연노란 꽃잎 벙그는 소리, 산꿩의 분주한 날갯짓, 그리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산과 들판 위에서 종다리가 봄소식을 물어다 준다.
남쪽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한 매화 꽃망울 함성이 북상해 오면서 온 천지는 축제 분위기로 들뜨고, 오색찬란한 꽃들의 향연을 바라보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더욱더 고향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해마다 3월이면 새내기들이 새 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새롭게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달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3월을 표현할 때, “3월이 온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
3월 21일은 태양이 적도 위를 비추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이다. 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는 파종을 하고 화단의 흙을 일구며 며칠 남지 않은 식목일에 씨 뿌릴 준비를 한다. 춘분을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준비에 바쁘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음력 2월중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치 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에 ‘꽃샘’이라고 한단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았다.
농경사회에서 우리 조상들은 오로지 자연에 순응하면서 기후변화에 따라 농사일을 하여야만 했다. 따라서 춘곤기인 3월을 지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급박한 가난한 현실에서 겨울은 또 얼마나 지루하고 길었을까? 철모르던 아이들은 처마 끝에서 녹아내리고 있는 고드름을 따먹으면서 깡통 차기와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면서 놀았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3월도 녹록치만은 않았었다. 하얀 쌀밥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보리쌀에 고구마를 섞어 만든 밥과 무밥, 시래기 밥, 수제비를 끼니로 먹으면서 고구마가 유일한 간식이었다.
아버지는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어 작은 방 안에 수숫대로 엮은 고구마 퉁가리를 만들어 내 키 보다 훨씬 큰 퉁가리 안에 고구마를 가득 채워놓고 3월까지 식량을 대신했었다.
● 너무도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먹고 입고 지내는 모든 것들이 유년의 기억 속 가난했던 겨울보다 훨씬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오히려 메마르고 삭막하고 너무도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추억속의 가난했던 시절을 되돌아볼 겨를 없이 바삐 살아가다보니 배고픈 시절을 자꾸만 잊고 사는 건 아닌가 싶다. 풍요속의 빈곤처럼 현실에 대한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견디지 못하고 그저 편안하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거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하려는 욕심이 앞설 때가 많다.
또한 문명의 이기(利器)속에서 스마트폰에 의지하여 정보를 주고받고 소통하면서 때로는 대인관계마저 기계에 더 의존하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주고받던 정(情)들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나는 그동안 배고프고 아린 유년의 추억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한 번도 설명하거나 들려줄 기회조차 만들어 주지 못했다. 아마도 6-70년대 우리가 살아가던 모습을 들려준다면 상상도 안 되거니와 우리가 아무리 실감나게 들려주어도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을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는 아이들에게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아마도 전래동화 속 ‘흥부놀부 이야기’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처럼 아주 생소하여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게 뻔하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진보와 보수의 세대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소통의 문제점일지도 모른다.
박목월시인은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다 / 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노래했다. 그렇다. 3월은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무엇이든지 잘 이뤄질 것만 같은 역동의 달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처음의 힘으로 끝까지 달릴 수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동계올림픽의 스켈레톤 경기에서도 첫 스타트가 그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
● 평창 동계올림픽경기도 마쳤다.
처음 출발의 힘으로 끝까지 차분하게 종주할 수 있는 빙상경기처럼, 우리의 봄도 처음 시작의 힘으로 한 해의 목표점에 잘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3월은 어느 달보다 희망차고 역동적인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2월이 가는 것이 아니라 ‘3월이 온다’ 라고 하는 것이다.
3월을 며칠 앞둔 지난 2월 25일, 평창 동계올림픽경기도 마쳤다. 수년간 만반의 준비를 해 온 올림픽추진위원회와 자원봉사자들의 단합된 모습으로 성황리에 큰 행사를 잘 마쳤다.
더군다나 남북한 단일팀인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바라보면서 함께 한반도기를 흔들던 남북한 응원단 모습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잠시나마 한민족 동지애를 서로 느낄 수 있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북한의 핵문제로 인하여 냉각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잠시나마 희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지만 이 또한 앞으로 풀어가야만 할 우리 정부의 가장 큰 과제로 남아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물꼬가 트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편 내게 3월은 언제나 첫사랑처럼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3월을 생각하면 왜 그리 마음도 몸도 분주해지는지 모르겠다.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풋풋하고 상큼한 시작의 달(月)이 바로 3월이기 때문이다.
또한 3월은 한 해의 시작을 하는 1월에 이어서 새롭게 출발을 하게 되는 첫 출발, 첫 감정, 첫 다짐, 첫 만남으로 언제나 새로운 ‘봄의 시작’을 알리는 톡톡 튀는 계절이기도 하다.
2018년도 3월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에도 ‘평화통일’로 이어지려는 희망찬 봄소식과 함께 새로운 국운(國運)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그리고 한반도 전체로 쭉쭉 뻗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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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총 전문위원
국제 펜클럽회원
시집 ‘따뜻한 쉼표’ ‘종이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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