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황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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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정산 시인 |
황정산 시인.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시를 전공해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한국 현대시의 운율론적 연구」.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에 시를 발표하며 시 창작을 병행했다. 저서로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 『소수자의 시 읽기』 『발표와 토론』, 시집 『거푸집의 국적』 등이 있다. 대전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계간 『상상인』 『불교문예』 주간을 맡고 있다.
Q1. 이 시간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신 황정산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먼저 대학 4학년 때 형님의 프랑스 유학 권유를 뒤로하고 국문학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셨습니다.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사연을 들려주세요.
▶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를 썼습니다. 대학에서는 형님과 마찬가지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지요. 대학 4학년 때 형님은 저에게 프랑스로 유학을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형님이 먼저 공부했던 길을 따라 프랑스 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무렵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대학사회에는 민주화운동과 민족문학에 대한 열기가 매우 강했습니다. 저 역시 문학을 개인적인 취향이나 교양의 영역에만 둘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해하고 민주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려면 한국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때 고려대학교에 갓 부임하신 김흥규 선생님과 김인환 선생님께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유학 대신 국문학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전공 하나를 바꾼 일이 아니었습니다. 문학이 한 시대의 현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언어가 억압받거나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를 평생 생각하게 만든 출발점이었습니다.
Q2. 형님이신 황현산 평론가와는 문태중·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함께 다니셨고, ‘한국에서 유일한 평론가 형제’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형님은 선생님의 문학과 삶에 어떤 영향을 주셨나요?
▶ 형님은 저보다 먼저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대학생이던 형님이 고향에 내려오면 프랑스 소설과 문학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어린 왕자』 이야기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문학이 교과서 속의 지식이 아니라 낯선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통로라는 사실을 형님을 통해 일찍 알게 된 셈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형님과 형수님이 제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형님은 문학적 선배이면서 삶의 버팀목이었습니다. 다만 제 글을 일일이 가르치거나 고쳐주는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제 평론을 읽고 “그런대로 괜찮네”라고 말한 정도였지요. 서로의 글을 존중하면서도 각자의 문학을 각자 감당했던 관계였습니다.
오랫동안 ‘황현산의 동생’이라는 이름이 따라다니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형님의 이름이 저를 억누르는 그늘이기보다 제가 쉽게 흐트러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그런 책임감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형님의 문장은 격조를 지키면서도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했습니다. 저와 문체는 달랐지만, 문학적 태도와 삶의 품격에서는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Q3. 광주민주화운동은 선생님의 학문과 문학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대의 경험은 문학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각에 어떤 변화를 불러왔나요?
▶ 광주민주화운동은 제가 대학 3학년 때 일어났습니다. 당시 저는 운동권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휴교 기간 선배와 동료들로부터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자는 권유를 받았지만,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어 끝내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제게 큰 부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 사건은 문학이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이 은폐되고 진실이 말해지지 못하는 사회에서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게 되었고, 그 질문이 프랑스문학 대신 한국문학을 선택하게 한 이유였습니다.
연구 초기에는 문학이 사회 변혁에 직접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공부가 깊어지면서 올바른 이념이나 선한 의도만으로 좋은 문학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문학은 현실에 참여하되, 한 사람의 고통과 삶의 구체성을 끝까지 붙드는 언어여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소수자와 주변부의 삶을 읽고 쓰는 제 문학관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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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판> 동인들과 함께. |
Q4. 『창작과비평』을 통해 평론가로 먼저 활동하셨지만, 늘 ‘못다 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남았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시를 처음 쓴 것은 중·고등학교 때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현실주의 문학과 민족민중문학을 공부하고 학술 활동에 몰두하면서 시를 쓰는 감각은 점차 멀어졌습니다. 평론과 논문을 오래 쓰다 보니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는 끝내 담아낼 수 없는 욕망과 사라진 사람과 사물에 대한 기억의 감정이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오래된 갈증이 다시 시를 쓰게 만들었습니다.
2002년 제가 편집위원으로 있던 『정신과표현』에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쳇말로 ‘야매’로 시인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제게 시는 평론을 보완하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평론이 작품과 세계를 분석하는 언어라면, 시는 분석 이전의 감각과 욕망을 움직이게 하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끝내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저를 다시 시로 이끌었습니다.
Q5. 선생님의 평론은 쉽고 명확하면서도 독자를 배려하는 문체로 평가받습니다. 어려운 문학을 쉽게 풀어내는 글쓰기를 지향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 평론은 작품과 독자 사이에 놓이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어려운 개념과 현란한 문장을 늘어놓으면 작품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또 하나의 장벽을 세우게 됩니다. 저는 한 문장을 읽었을 때 그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고, 앞 문장과 뒤 문장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쉽게 쓴다는 것은 작품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려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한 뒤 핵심을 분명한 말로 전달하는 일입니다. 오히려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 문장이 막연하고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쓴 문학의 이해』라는 책을 낸 것도 문학의 주요 개념을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이해하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평론의 명료함과 시의 쉬움을 동일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의 질서를 거부하기도 하고,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언어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평론가는 그 낯선 언어를 평범한 교훈으로 바꾸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작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밝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독자를 배려하는 평론이라고 생각합니다.
Q6. 오랜 평론 활동 중에 시집 『거푸집의 국적』을 출간하셨습니다. 시집 속 시 한 편과 이 시집에 대한 말씀 부탁드려요.
▶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시 「바지랑대의 하루」를 읽겠습니다.
바지랑대의 하루
젖은 것들을 붙잡고도
슬프지 않았다
외줄 위에는 쉬이 이슬도 말랐다
죽은 아이의 머리칼을 물고
물길을 헤집어도
노엽지 않았다
물속에 길은 없었다
날개 가진 것들이 찾아오지만
잠시였다 그림자도 남기지 않았다
붉은 노을은 더 짧게 지나갔다
이제 하늘을 잴 시간이야
내가 쓰러지면 모두가 힘들어
말씀하시고 어머니는 누우셨다
누워서도 길었다
어머님의 고단한 삶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집 한구석에 세워져 있다가 중요한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 ‘바지랑대’에 비유하여 쓴 시입니다. 제 어머니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삶이 이러지 않았을까 합니다.
제 시집 『거푸집의 국적』은 제가 2002년 시를 발표한 뒤 오랜 시간에 걸쳐 쓴 작품들을 묶은 첫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는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물과 사라진 존재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공사장의 거푸집, 생선 궤짝, 도마, 바지랑대, 솥, 종이컵처럼 제 역할을 다하고 버려지거나 이름을 잃어버린 것들입니다.
시집은 ‘블랙’, ‘시인 시점’, ‘어처구니의 행방’, ‘불량한 시’, ‘동사들’의 다섯 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검은색과 죽음, 시와 시인에 관한 질문, 오래된 생활 도구, 기존의 시적 규범에 대한 의심, 사물과 기억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동사의 힘이 전체를 이어줍니다.
이 시집에서 저는 소외되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들은 흔적과 기억으로 남아 지금의 우리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시는 그 이름 없는 것들을 다시 불러내는 임시적인 거푸집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 거푸집 안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독서를 통해 그것을 깨고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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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과 표현』 시인들과 함께. |
Q7. 표제작 「거푸집의 국적」은 건설 현장의 거푸집과 이주노동자의 삶을 겹쳐 보여줍니다. ‘거푸집’이라는 소재에 담긴 상징과 의미를 들려주세요.
▶ 거푸집은 건물을 세우는 동안 시멘트를 받쳐 형태를 만들어주는 구조물입니다. 건물이 완성되면 해체되어 다른 현장으로 옮겨지거나 버려집니다. 도시를 떠받쳤지만, 완성된 건물에서는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운명이 건설 현장의 이주노동자들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도시의 건물과 도로를 만들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잘 묻지 않습니다. 작품에 ‘응우옌’과 ‘무함마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거푸집을 단순한 목재가 아니라 이름과 고향과 가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순간, 도시에서 지워졌던 노동자의 모습도 함께 드러납니다.
거푸집에는 시의 형식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시인은 사라진 존재들을 시라는 형식 안에 잠시 불러 모읍니다. 그러나 형식이 너무 단단해지면 그 존재들을 다시 가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의 거푸집은 무엇인가를 고정하는 틀이면서, 완성된 뒤에는 해체되어야 하는 틀입니다. 독자가 시의 정답을 찾는 데 머물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거푸집을 깨고 나갈 때 작품의 의미가 새롭게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Q8. 평론가의 시선으로 시를 읽어오시다가 시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평론가로서 쌓아온 안목이 직접 시를 쓸 때는 어떤 도움이 되든가요?
▶ 평론가로서 많은 작품을 읽어온 경험은 시를 쓸 때 분명 도움이 됩니다. 익숙한 표현과 상투적인 이미지를 비교적 빨리 알아차릴 수 있고, 한 작품의 구조가 어디에서 느슨해지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언어의 긴장, 행과 연의 배치, 이미지들이 서로 맺는 관계를 점검하는 훈련도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평론가의 눈이 지나치게 앞서면 시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시가 나오기 전에 이론으로 작품을 재단하고, 아직 움직이기 시작하지 않은 언어를 미리 평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론가는 객관적으로 검증하려 하지만 시인은 자기 안에서 말하려는 낯선 목소리를 허용해야 합니다. 너무 빨리 설명하면 그 목소리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시를 처음 쓸 때는 평론가를 잠시 뒤로 물러나게 하려고 합니다. 이미지와 말이 충분히 움직인 뒤에 평론가의 눈으로 다시 읽고 고칩니다. 평론가의 안목은 시를 탄생시키는 힘이라기보다, 태어난 시가 자신의 언어를 제대로 갖추었는지 살펴보는 보조적인 힘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쓰는 시간과 평론을 쓰는 시간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시는 주로 감성이 움직이는 밤에 쓰고 평론은 새벽에 일어나 맑은 이성의 힘으로 씁니다.
Q9. 박사학위 논문 「한국 현대시의 운율론적 연구」를 비롯해 오랫동안 시의 운율을 연구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운율 연구가 선생님의 시 창작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 저는 운율을 일정한 음절 수나 반복되는 박자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대시의 운율은 문장의 통사적·의미적 단위가 어떻게 나누어지고 이어지는가와 깊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제가 연구에서 말한 ‘마디’도 호흡과 문법, 의미가 한 덩어리를 이루며 움직이는 단위입니다.
같은 문장도 어디에서 행을 바꾸고, 어떤 말을 앞이나 뒤에 놓느냐에 따라 속도와 긴장이 달라집니다. 짧은 마디가 연속되면 말이 다급하고 촘촘하게 움직이며, 긴 마디는 생각을 머물게 하거나 느슨하게 확장합니다. 이러한 리듬은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 됩니다.
시를 쓸 때도 소리 내어 읽으며 호흡을 점검합니다. 의미가 정확해도 호흡이 막히면 시가 살아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리듬이 지나치게 매끄러우면 언어가 익숙한 관성 속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행을 끊거나 문장을 비틀어 독자의 호흡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운율 연구는 제게 시의 리듬이 내용을 장식하는 요소가 아니라, 의미를 발생시키는 구조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Q10.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모든 말은 원래 동사였다”라고 쓰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시의 언어와 언어의 생명력에 대해 들려주세요.
▶ 시집의 ‘시인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말은 원래 동사였다
움직이는 것들이 굳어 명사가 된다
아직 굳지 못한 기억
동사로 남아 꿈틀댄다
명사는 대상을 하나의 이름과 형태로 고정합니다. 사람을 노동자, 이주민, 노인, 환자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이 살아온 수많은 시간과 관계는 그 이름 뒤로 사라지기 쉽습니다. 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거푸집’이나 ‘도마’라는 이름만 남으면 그것이 지나온 나무의 시간과 사람의 손길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동사는 존재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한 존재는 만들어지고, 일하고, 상처받고, 이동하고, 사라지면서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시의 언어는 굳어버린 이름을 다시 풀어 그 안에 남아 있는 움직임을 발견하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생명력은 새로운 단어를 발명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너무 익숙해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 말을 다시 낯설게 하고, 그 말 속에 눌려 있던 기억과 감각을 움직이게 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시는 명사가 된 세계를 다시 동사로 되돌리는 작업입니다.
Q11. “시인은 미치다 만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표현에는 어떤 시론과 문학관이 담겨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 이 말은 광기를 찬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이성과 사회적 규범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욕망과 충동, 기억과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억누르며 살아가지만, 시인은 그 목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는 객관적인 근거와 검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인은 자신 안의 타자가 말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것이 시가 되지는 않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충동을 언어의 질서와 긴장 속에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미친 사람이라기보다 ‘미치다 만 사람’입니다. 이성과 광기, 질서와 충동 사이에 머물면서 그 경계에서 언어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저는 시인이 독자에게 손쉬운 희망이나 위로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는 때로 독자를 불편하게 하고, 익숙한 생각을 흔들며, 우리가 외면해 온 것을 보게 합니다. ‘미치다 만’ 상태는 굳어 있는 현실과 언어에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그 조금 남은 불온함이 시를 가능하게 합니다.
Q12.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시 세계와 『거푸집의 국적』을 읽을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앞으로도 이름을 잃거나 제대로 불리지 못한 존재들에 관심을 두고 싶습니다. 사람들뿐 아니라 낡은 생활 도구, 버려진 사물, 사라져가는 말과 기억에도 저마다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또한, 시가 익숙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언어 자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명사로 굳어버린 세계를 다시 동사로 돌려놓으며, 독자의 호흡과 생각을 조금이라도 흔드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시집 『거푸집의 국적』을 읽으실 때 하나의 정답이나 비밀번호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집 안에 들어와 각자의 기억과 경험으로 작품을 새롭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인이 만든 거푸집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깨뜨리고 빠져나가실 때, 이 시집은 비로소 독자 자신의 새로운 사유의 형태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름 없이 우리를 떠받쳐 온 사람들과 사물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거푸집의 국적』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그들의 이름과 시간을 함께 기억해 주신다면, 그것이 제가 이 시집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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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시인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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