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새끼'와 '역대급 비운의 세대'... 그리고 월드컵 [허준혁한방]

허준혁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2-12-05 14: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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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혁 UN피스코 사무총장
[일요주간 = 허준혁 칼럼니스트] 바닷물은 하루에 두 번씩 높아졌다 낮아졌다 한다. 밀물과 썰물이 겨끔내기로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이다. 조석간만의 차가 가장 클 때를 '사리', 가장 작을 때를 '조금'이라 한다.

영화 ‘1987’의 ‘연희네 슈퍼’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는 목포시 서산동과 온금동에는 '조금 새끼'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선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조금 물때에는 출어를 포기하고 간만에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집집마다 대부분 열 달 후 애들이 한꺼번에 태어났다. 이때 태어난 애들을 '조금새끼'라고 불렀다.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다. 대부분 생일이 거의 같아 생일잔치를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닷가에서 함께 뛰어놀던 '조금새끼'들은 어른이 되어서는 아버지의 업을 이어 배도 같이 탔다. 그러다 바다가 이들을 삼키면 제삿날까지 같았다.

각종 금기사항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부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출어 시 머리와 손톱을 깎지 않는다. 떠나는 남편이나 자식, 그리고 남는 가족은 서로 인사 없이 떠나고 떠나보낸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배에 타지 않는다. 등등...

'조금새끼'란 말과 그 배경을 들으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방 눈물이라도 날 듯 울컥해지는 건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새끼'라는 단어를 들으면 생각나는 또래들이 있다. 역대급 비운의 세대로 자타가 평가하는 99년생과 02년생이 그들이다.

20세기 끝자락이자 IMF 직후 태어난 99년생들은 초4 때는 신종플루, 초6 때는 교육과정개정으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고, 중3 때는 세월호 참사와 함께 수학여행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됐다.

고1 때 메르스, 고2 때 대통령 탄핵, 고3 때 포항 대지진으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경험을 맞아야 했다.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해에 태어나 '월드컵 베이비'라 불리웠던 02년생들도 초1 때 신종플루, 중1 때 메르스, 고3 때 코로나바이러스를 겪어야 했다.

이제 그 세대들이 성인이 되어서는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도 2022년 월드컵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들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일제, 6.25, 4.19, 5.16 등을 겪어야 했던 세대들…. 5.18, 6.10, IMF 등 역사의 굴곡점을 함께 겪어왔을 세대들...

'조금새끼'들의 '웃픈'인연을 생각하다가 한일 월드컵 이후 벌써 20년이 훌쩍 지나버린 카타르월드컵을 보면서 나와 내 또래들의 젊은 날과 오늘날... 그리고 같은 시대를 헤쳐왔을 각 세대와 또래들이 오버랩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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