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 없는 선출권력 독주 ‘빨간불’
‘노조 손해배상 제한’ 앞두고 긴장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지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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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훈 편집인 |
이어 “삼권분립(三權分立)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사법부 독립이란 것이 사법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주권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내란 특별재판부는 국민 뜻이고 그것은 삼권분립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쉽게 말해 국회가 사법부 위에 있다는 것이다.
◇ ‘내란 특별재판부’ 국민 뜻, “삼권분립에 어긋나지 않아”
우리 헌법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를 포함해 어떤 외부 세력도 사법권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다. ‘어떤 사건을 어떤 재판부가 담당하게 할 것인지의 결정권’은 사법권의 핵심 중 하나다. 국회가 내란재판부를 만들어 특정 사건 재판을 맡기는 것은 ‘국회가 사법부 위에 있다’는 인식을 떠나 헌법에 위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헌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 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대법원장·대법관이 아닌 사람이 내란 특별재판부 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위헌인 것이다. 대법원이 “내란재판부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국회에 밝힌 것은 이 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민주당은 과거 반민특위 특별재판부와 3·15 부정선거 특별재판부가 있었다며 내란 특별재판부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물론 당시 헌법에는 특별재판부 허용 조항이 있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헌법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특정 정치 세력이 자신들 성향에 맞는 법관을 골라 재판을 맡기려는 것 자체가 ‘법관의 독립’을 보장한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모든 것은 국민의 뜻에 달려 있고, 국민 뜻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이라고 했다. ‘국민의 뜻’이 모인 가장 중요한 문서가 헌법이다. 헌법을 위반하면서 그것을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면 모순이고 강변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이긴 정파가 ‘국민의 뜻’이 자신들에게만 있다면서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왔다. 그 제도적 장치로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세계 민주 국가에서 지켜져 온 민주주의의 기둥이 입법, 사법, 행정 삼권분립과 상호 견제다. 헌법이 특별히 ‘사법권 독립’을 규정한 것은 선출 권력이 이 견제와 균형을 깨고 독주할 때 사법과 법치만은 독립을 유지해야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긴 것은 국민이 입법권을 위임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 뜻’이란 이름으로 사법부를 국회 아래에 두고 민주당 입맛에 맞는 판사들을 골라서 민주당이 원하는 판결을 내리라고 국민이 표를 준 것은 아니다. 한 정파가 선거에 이겼다고 입법·행정·사법을 모두 틀어쥐고 마음대로 하는 것은 바로 독재(獨裁)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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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newsis) |
◇ ‘노란봉투법’ 강행 처리, 공표 전부터 노동계 압박 등 후폭풍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 특별재판부’의 위헌 논란이 불거지던 8월 24일 국회에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됐다. 일명 ‘노란봉투법’이다.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재석 186인 중 찬성 183인, 반대 3인으로 원안대로 가결했다. 이 법이 통과되자마자 기업에 대한 노동계의 압박이 시작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노조 손해배상 책임 제한이다. 법이 통과되면 사측은 파업에 대해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또 하청업체(下請業體) 노동자가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진 원청업체(原請業體)와 교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노동계의 숙원을 담아 역사적으로 큰일을 했다”고 환영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근본부터 흔들 ‘독소 입법’”이라며 비판했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원청 기업을 교섭 대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는 하청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동권 위축을 방지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제계에선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경영 예측 가능성을 파괴한다’고 반발해왔다.
노란봉투법은 이제 현실이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두 번이나 거부권 행사를 했을 정도로 많은 논란과 우려가 있었지만 통과됐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에 어느 정도 타격을 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산업계가 일시에 붕괴되는 현상이 도래하진 않겠지만,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총생산(GDP)에선 연간 약 10조원, 외국인의 한국 투자는 연간 1.5%(약 4000억원) 손실이 예측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한편 노란봉투법은 잘못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추진됐다. 민주당은 ‘선진국 수준으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청 노조의 원청 교섭허용(노조법 2조)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손해배상 책임제한(노조법 3조) 역시 해외에선 파업 시 사업장 점거가 아예 불가능해 제한 자체가 없다. 주한 美상의(암참)나 주한 EU상의가 일제히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법안을 강행 처리한 민주당은 이제 그들이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부작용이 최소화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유예 기간 동안이라도 “귀족 노조만 대변할 뿐, 대다수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더 어렵게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법안 중에는 약자를 보호한다면서 오히려 약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전례는 수없이 많다. ‘비정규직 보호법’과 ‘임대차보호법’ 등이 대표적이다. 유예 기간 동안 부작용을 철저히 검증해 문제점을 보완할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
◇ 상법 개정안도 ‘손해배상 철회-배임죄 고발’ 등 정면 충돌
아직 공포되지 않았고 공포 후 6개월 유예 기간을 두고 있는 노란봉투법이지만 벌써부터 말이 많다. “직접 교섭하라”는 노동단체와 하청 노조들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성명을 내고 “현대자동차 사측이 200억원대의 손해배상을 풀지 않아 노동자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0년 울산1공장 생산라인 점거와 2013년 ‘현대차 희망버스’ 사건 등 총 5건의 사건에 대해 법원 판결이 난 200억원대 손해배상을 면제하라는 것이다.
9월 초 현대차는 민주당 압박 속에서 3억 6800만원 규모의 노조 상대 손해배상 소송 3건을 취하했다. 그런데도 노조가 법원에서 확정 판결된 손해배상 문제까지 들고나온 것이다. 현대차 측은 “법치주의에도 안 맞고 개정된 상법에 따른 주주 이익 확대 규정에도 맞지 않아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손해배상을 철회했다가는 주주들로부터 “왜 회사에 손해 끼치는 일을 했느냐”고 배임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화오션 역시 8월 말 파업 하청노동자를 상대로 470억원 손배 청구 소송을 취하하려고 했지만 미뤄지고 있다. 검토 과정에서 ‘일방적 취하할 경우 경영진에 대한 배임죄 고발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와 이사진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에 대해서도 ‘소 취하’의 최소 명분으로 노조 측 사과문과 재발 방지 약속을 요청했으나 협의가 아직 안 되는 상황이다.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은 서로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기업들은 이중고에 시달릴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개정된 상법은 기업 경영진에게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할 의무를 강화했다. 불법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이 의무의 일환이다. 반면 노란봉투법은 경영진에게 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결국 경영진이 법적 권리를 포기해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데, 이는 형법상 배임죄와도 정면 충돌한다. 한쪽에서는 주주 이익에 반하고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위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법이라는 명분으로 이를 사실상 강요하는 셈이다. 진퇴양난이 물고 온 모순의 극치다.
◇ ‘정규직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유일한 답
기업은 국가 경제의 주역이자 고용 창출의 원천이다. 주요 대기업의 조선·중공업분야 1차 협력사를 보면, HD현대중공업 2420개, 삼성중공업 1430개, 한화오션은 1334개에 이른다. 이 분야 노사 관계가 가장 적대적이고 위험한 환경에 속한다. 이런 환경에서 하청업체의 직접 교섭권을 열어주고 기업의 손해배상 권한까지 제한한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국가는 보편적 사회안전망을 통해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다.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 기업하기 좋은 환경,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가령 노동자가 실업과 질병, 노령에 직면했을 때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과 장치가 없으면 불안정한 노동을 거부하지 못한다. 귀족노조가 득세하는 현실이다. 이에 대한 구조적 해법이 없이 하청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노동쟁의를 수행하는 노란봉투법 같은 현상적 해법만으로는 노동의 불안정을 최소화할 수 없다.
기업에서 임금 목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금액엔 불가피하게 한계가 존재한다.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들 몫을 줄이지 않고 하청에 추가로 돈을 내려 줄 방법이 무엇일까?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연구개발이나 시설재투자 금액까지 헐어 내지 않는다면, 돈이 나올 구석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규직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유일한 답이다.
혼돈의 시기에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지혜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씨앗(種子) 과일은 먹지도 팔지도 않아야 하며, 후손을 위해 남겨둬야 한다. 땅을 일궈 재배해야 새싹이 나고 열매가 맺힌다. 농부는 이듬해 파종할 볍씨까지 밥솥에 넣을 순 없다. 절망의 순간을 이기지 못하고 씨앗까지 먹어치우거나 팔아먹으면 희망이 사라진다. 오죽했으면 ‘씨 팔 놈’이란 상스러운 말이 나왔겠는가?
자본과 산업유치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유래가 없는 관세(關稅)전쟁이 벌어지는 탈(脫) 자유시장 환경에서 부국안민(富國安民)의 기조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유동성이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국민의 행복을 우선하는 국가의 공동선(公同善) 기조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당리당략(黨利黨略)을 떠나 각계각층 목소리를 대변하는 범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삼권분립·노란봉투법 논란 등 국가적 현안을 풀 것을 제안한다.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거듭나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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