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김지민·김청현 기자] 국민이 주목하는 ‘중요 사건’의 재판 결과를 TV를 통해 생중계로 볼 수 있게 된다.
25일 대법원은 대법관회의에서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오는 8월부터 1·2심 재판 선고의 생중계를 허용키로 했다. 기존 최종심 선고 장면만 공개하는 중계 대상에서 확대된 것이다.
그동안 법원은 재판 당사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 본격적인 공판·변론 시작 이후에는 어떠한 녹음·녹화·중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상위법령인 법원조직법 제57조와 헌법 제109조의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조항과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더해 지난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국민의 알권리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재판 중계가 허용돼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대법원이 규칙 개정 검토에 나서게 됐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6월 이 같은 내용으로 전국 판사 290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판사 1013명 중 687명(67.8%)은 ‘재판장 허가에 따라 재판 일부·전부를 중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정계에서는 재판 중게 확대가 적절한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생중계 허용 여부가 피고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 없는 재판장의 결정사항이라는 점에서 부작용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재판장은 주관적 판단으로 공적 이익과 피고인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등을 비교·판단해야 한다.
또 재판이 중계될 경우 여론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인 황성욱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서라도 1·2심 재판의 선고를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재판이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재판은 공개가 원칙인데 중요사건은 공간 문제 등으로 인해 관심 있는 국민들의 방청권이 제한받아온 것”이라며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재판 중계 허용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법원이 ‘언론사가 선고 장면을 촬영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혀 재판의 중계 방식도 논란이 된다. 이 경우 저작권은 각 방송사에 있고, 유튜브 등 각종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라간 영상은 삭제요구가 어렵기 때문에, 피고인이 훗날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영상 삭제 등을 요청하더라도 구제가 어려워진다. 선고 장면이 악의적으로 편집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선고 장면만 촬영하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나 왜곡의 발생 여지가 적다”면서 “재판장이 피고인 모습은 촬영하지 않고 재판부의 선고 모습만 송출되도록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재판 생중계 논란은 정치권에도 번졌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국민의 알권리’라며 환영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여론재판’을 우려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를 “시체에 칼질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인민재판을 벌써 한 번 받았는데 다시 공개해서 인민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며 “지금쯤은 그만해도 될텐데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도 구두 논평을 통해 “공정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재판 생중계가 되는 것이 법관의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에 있어서 여론에 과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재판공개가 이뤄졌을 때 인권침해 소지도 큰 등 국민적 우려가 있는 매우 큰 사안이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지명 바른정당 대변인도 구두 논평을 통해 “생중계를 할 경우 법리적 다툼에서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다툼으로 번져 여론 재판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외부 요인으로 재판이 영향받지 않도록 독립성과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재판 전 과정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 선고만을 공개하는 것이다”며 “선고는 재판의 제일 마지막 단계로, 선고 공개와 공정성 침해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사법부의 하급심 주요 사건의 판결 선고에 대한 생중계 허용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사법부 신뢰도 제고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당도 “중요 사안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법원의 문턱을 낮춘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사실심 법원의 재판이 생중계되는 만큼 담당 법관의 심리적 부담감이 커질 것은 자명하다”면서 “법관의 판단에 대한 존중과 함께 재판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규칙 개정은 대법원이 지난 2012년 2월부터 추진한 것이다. 앞서 2013년 3월부터 이미 대법원 상고심의 생중계를 허용했고, 이날 1·2심 하급심까지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대법원의 이 같은 결정으로 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 1심이 당장 중계 대상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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