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잃어버린 것과 빼앗긴 것에 대하여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3-03-20 09:35:47
  • -
  • +
  • 인쇄
▲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요즘 우리 사회가 과거 문제로 들끓고 있다. 회고록이란 글로 과거 정권의 문제를 재점화한 것이 그렇고, 과거 학창 시절 학교 폭력이 문제가 돼 그렇고, 일제 강점기 불법 강제징용과 불법 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과 첨예한 쟁점인 강제징용 문제의 매듭을 풀기 위해 조건 없는 대화를 선 제시하며 일본을 방문해 국민의 반일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뜨거운 감정의 분노보다 차가운 이성의 산물의 관 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에게 영원한 화두인 극일(克日)이란 무엇이고 극일은 어떻게 해야 시대 정신에 맞는 것일까.

사리와 이치 그 무엇을 둘러대도 맞지 않는 우김질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그릇된 역사관과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는 주변 국가와 갈등을 점화시키는 에너지로 남겨져 오늘날까지 일본 측의 뚜렷한 반응과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서 계속해 이어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에 관한 사죄와 배상문제 등 우리에게는 일본과는 풀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매듭이다.

일본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 만큼 다 알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몰상식한 국가라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많은 과정에서 보아왔다. 우리는 여ㆍ야 가릴 것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요구했지만, 결과는 '소귀에 경 읽기' 격으로 끝났다. 일본은 한술 더 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교과서 역사 왜곡도 서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 그들은 자라나는 후대에게 거짓된 역사관을 가르치며 한 점 부끄러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정치인들에 이러한 행위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고 여겨진지 오래다. 중국과 아시아 각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 언론에서도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의 만행을 논제로 삼아 많은 질타를 하였기에 새삼스럽게 일본을 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고로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 현실적 상황은 생각지 않고 단순 이상주의에 빠져 일본과 화해 협력하는 것이 굴욕이라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생각의 오류이며 단선적 사고로 생각된다. 이미 백 년전 과거를 문제 삼아 이웃과 대립각을 세우며 불편한 관계를 계속해 이어간다는 것은 결국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다 불행한 일이다. 생각해 보자,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북한이 아무리 한 핏줄이라지만 우린 현실은 남보다 더 못한 친척이 아닌가.

일제 강점기 우리는 많은 것을 빼앗겠고 잃어버렸다. 빼앗긴 것과 잃어버린 것과의 사이에는 실제적 차이나 심리적 정신적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궁극적으로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에 있어서도 커다란 차이점이 있게 된다. 빼앗긴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물리적인 힘으로 나를 탈취해간 것으로 중대한 범죄 행위다. 그러나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책임이다. 내가 잘못해서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과거 36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려면 과거에서 깨어나야만 된다. 과거 속에 마냥 머물러 있으면 빼앗긴 것이 되고 빼앗아 간 자들에 대한 원한만 계속 품게 된다. 우리의 극일은 빼앗겠다는 것보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 진정한 극일을 할 수 있다. 빼앗겠다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차원이 낮다는 말이다.

일본 제국주의 통치하의 한국에서 일본 사람들이 빼앗아 간 것이 많다. 그런데 그자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을 때, 우리 조상 우리 선대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18 세기 급변하는 세계 질서와 제도에 배타적 생각으로 변화에는 소극적이었다. 세도 정치에 취해 나라야 어떻게 되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국가의 장래와 안위는 돌보지 않았기에 나라를 빼앗기는 경술국치의 비극적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는가.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가. 지금 일본에 대해서 경악하고 있는 반일 세대 중에서 그 옛날에 그들의 귀중한 그 무엇을 빼앗긴 것보다는 잃어버린 사람이 더 많지나 않을까 생각한다. 잃어버리고 나서도 빼앗겼다고만 고집한다면 내 잘못 내 탓보다 남의 욕만 평생하며 적개심을 품고 사는 그야말로 바로 과거에 매여 미래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협력체제와 극일이 맞물려 돌아가는 두 개의 톱니바퀴이다. 이런 현실에서 다시 시계를 과거로 돌려야만 하는가. 우리는 과거 죽창과 농기구를 손에 쥐고 탐관오리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다. 그러나 싸움은 딱 거기까지였다. 농민은 죽창가를 부르며 세력을 키워 대항했지만 현대식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 연합 세력에게 5만여 농민군은 무참히 전멸되었다. 당시 죽창가를 지금 일부 정치인들이 다시 부르며 국민의 반일 정서 감정의 불씨를 되살리려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주장 뒤에 깔려 있는 정치적 반사 이익에 기대려는 단선적 사고이다. 물론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가 필요하고 배상도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을 극대화, 극단화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리는 단선적인 생각과 방식으로는 자국에 이익이 걸려 있는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패권전쟁에서 주변 동맹을 총동원하는 '올 코드 프레싱' 전략으로 중국을 봉쇄하며 우리나라가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고 있다. 윤석렬 정부가 일본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서두른 이유도 4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한 일본과의 화해 협력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방문은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것으로, 한미 동맹은 한미와 동아시아 인도 태평양 및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증진하는 데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는 한미 동맹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는 첫 번째 과정이 이웃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징용 문제 해법을 선(先) 제시하며 일본과의 경제협력 복원의 계기를 조성한 불가피한 이유가 다 이런 국제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로 보인다. 날로 커지는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패권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상보다 경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일본과의 경제 협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국가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과거 기억에 갇힌 사고로는 부단히 변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물론 잊지는 말아야겠지만, 기존 개념에 갇혀있지 않고 그 사고에서 넘어서는 결정을 할 수 있을 때 한 차원 높은 정치를 할 수 있다. 정치적 신념에 갇혀있어서는 '다음'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 역사에서 일제 36년은 빼앗긴 게 아니라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위대해지고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철원 논설위원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