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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세계가, 국가가, 사회가, 기업이 그리고 우리 가정생활이 복잡해지면서 혼란스럽게 변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언어도 다양해지며 빠르게 글로벌화하며 진화하고 있다.
요즘 각종 매체나 언론에서 보도하는 내용을 보면 읽을 수는 있는데 뜻은 전혀 알 수 없는 언어가 너무 무질서하게 난무하고 있다. 어휘력 능력이 짧은 노년 세대 사람들은 자고 나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설익은 말과 글들이 세상에 도배되어 떠도는 것을 보며, 부닥치는 낯선 언어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현실 속에서의 생존 자체가 곤혹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외국어의 무분별한 남용은 현시대를 사는 구세대에겐 너무 생소하다. 빌런(괴짜 악당)이란 단어와 레젠드(전설) 펙트(실상)는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셀럽(유명인) 셀루션(해결책) 젠더(성별) 레토릭(수사修辭) 도어 스테핑(약식 회견)등 날마다 언론에서 쏟아내는 이국 언어는 대체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길거리 간판들도 영어부터 시작해 프랑스ㆍ이탈리아 ㆍ독일어 등 뒤죽박죽이니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사회가 우리말 경시 풍조에 물들어 있다.
우리말을 표준어로 써야 할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최근 야당 내분에서 등장한 단어가 개딸, 수박, 낭아, 잘쌋사, 똥파리 등의 언어는 그 낯섦과 생소함으로 알아듣기가 어색한 단어들이다. 어색하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뜻이다. 부자연스러운 언어가 아름다울 리 없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이상한 언어로 변하는 것은 우리 말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사용하는 편의주의 때문이다. 언어는 간편 주의로 어색해서는 안 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당 계파 싸움을 이해하려면 이 단어의 뜻부터 알아야 한다고 한다. 흔히 언어는 쓰는 사람과 집단의 의식과 수준을 대변한다. 이런 삼류 언어 정치는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겠는가.
우리는 시대에 우롱당한 기분으로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문어체보다 구어체가 판을 치고 있다. 그저 같은 나라에서 생활할 뿐, 이제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는 사용하는 어휘는 물론 사고방식마저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단어가 난무하고 읽기조차 아리송한 디지털 용어가 마구 쏟아진다. 글이란 응당 공적인 출간을 염두에 둔 격식 문어로 쓰인다는 옛날 방식의 합의는 깨어졌다. 대신 엽서, 일기, '편지 등 사적인 매체에 꼭꼭 숨겨져 있던 비격식 문어들이 인터넷 세상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글은 표기법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글에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말하는 방식까지 담아낸다. 구어 특유의 미묘한 느낌을 문어에서도 표현한다.
나는, 저잣거리에 떠돌아다니는 그 많은 개념어를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겨우 그 뜻을 짐작하는 단어도 고삐를 틀어쥐지 못한다. 그 단어들은 낯설어 근본을 알 수 없고 웃자라서 속이 비어 있다. 그러기에 말이 아니라 헛것으로 느껴진다. 설익은 말과 생경한 단어는 우리에게 소통되지 못하는 어색함 때문에 당혹스럽다. 결국, 언어를 설익은 표현, 간편 주의, 함축된 말로 만들어 사용한다면 그 말은 어떤 소통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것이 분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어 혼란의 깊은 소용돌이 속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게 된다.
한 민족의 언어가 정체성을 잃으면 그 민족은 멸망하고 소멸한다. 일제가 우리 언어를 말살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언어 말살 정책에 노력했는지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 익히 알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영어를 공통어로 사용하는 나라의 공통점은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그들 나라는 독립을 하였지만, 정신은 여전히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이고, 민족혼은 빼앗겨버린 셈이다. 폭력과 억압보다 더 무서운 게 인간을 지배하는 언어의 마력에 휘말려 민족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우리가 지닌 가장 값지고 자랑스러운 보물이 한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쓰고 있는 문자를 스스로 발명한 민족은 지구상에 우리밖에 없다.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드신 것이 약 580년 전으로 한글은 더할 수 없이 과학적인 문자 체계로 우리 민족사를 넘어 전체 인류사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발명품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며 간절히 바란 것은 백성이 널리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훈민정음은 '바른말'을 백성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고귀한 뜻을 계승 발전을 못 시킬지라도, 지금처럼 무질서한 우리말 경시 풍조는 엄청난 국력의 낭비인 동시에 나라를 얕보게 하고 국어 말살에 부채질하는 것이다. 세대 간의 소통도 단절돼 우리 세대의 정서와 장래마저 어둡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민족의 항구적인 생존과 개개인 올바른 소통,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우리글의 중요성을 철저히 가르쳐 민족 언어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상이 만들어 주신 소중한 우리 말과 글을 잘 가꾸는 일은 후세대를 위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책무이다.
광화문에 정좌하신 세종대왕을 뵈울 때 죄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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