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임영웅 연출가를 추모하며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4-05-06 11: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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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노벨 문학상 작가 사뭐엘 베케트가 써 연극으로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임영웅 연출가 기획한 이 작품은 현대인의 삶에 '부조리함' 이라는 '은유'를 연극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베케트의 고향 더블린 페스티벌에서 그의 연극을 영상으로 상영한 후 "한국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다릴 가치가 있다"는 평이 있었지만, 연극을 관람한 시간이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소화되지 못한 채 내 속에 머물고 있다.

한 남자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무엇인지 누구인지는 모른다. 왜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꼭 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를 만나서 무엇을 할지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기다린다. 많은 사람이 이 연극으로 접했을 때 느낌이 이 허망한 작품은 하나 마나 한 소리,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행동을 반복할 뿐, 고도는 끝내 오지 않는 무망의 기다림이다. 현대인의 삶을 그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꿈을 버리지 않고 기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므로 아름답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인가.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린다. 신앙을 믿는 사람은 신의 가호를, 누군가는 출세와 권력을, 어떤 이는 헤어진 옛님의 전화를, 불치병을 앓는 사람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사람들 대부분은 조금 더 좋은 그 무엇을, 노력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 세상을 바란다. 그러나 기다림과 별개로 기다림이 오지 않았을 땐 끝 없이 기다리는 바램을 가진다.

내 삶에도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살아갈 힘이 될 때가 있었다. 어릴 적 불우로 힘든 시절을 지내며 오늘은 어렵지만, 내일은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며 막연히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지금의 내가 존재함은 가난과 부조리한 환경이 주는 극도의 신체적 고통이 내 영혼을 부식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고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생은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보이지 않아도 안으로 동그랗게 나이테를 그리는 나무처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멀고 힘이 들지라도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며 스스로 내 안에 동그라미를 그려주며 묵묵히 길을 가고 있다.

1969년, 스토리가 어렵다고 소문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극 무대에 올려지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연 표가 매진되었다. 그 힘으로 50여 년 동안 1500회 이상 공연 관객 약 22만 명 모은 우리 연극사에 추종을 불허하는 획을 그은 '부조리, 은유의 극'의 연출가 임영웅 연출가님이 90세를 끝으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모든 작품에 원작을 수정하지 않는 대신 행간의 의미를 살리려고 '수학적' 접근을 한다는 연극이 인생에 전부인 그는 우리가 관람할 수 없는 하늘 무대에서 더 좋은 연출을 위해 떠났다.

광대를 보며 웃는 관객이야말로 인생의 광대임을 깨닫게 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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