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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진정한 프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박세리 선수는 IMF의 시련을 겪는 국민에게 LPGA 골프 대회 우승으로 희망과 용기를 심어 줬다. 손흥민 선수도 개인의 성취보다 공동체의 행복을 위한 것에 목표를 가지고 경기에 임하기에 우리는 그를 보며 열광을 한다. 내가 즐겁고 나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 즐거움이 남에게까지 전달되어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이게 바로 프로, 즉 전문가의 삶이다.
국민의 삶에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것이 프로 정신이다. 우선 프로 정신하면 스포츠를 연상하지만, 프로 정신은 비단 스포츠에서만 요구되는 게 아니다. 정치에도 프로가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사회의 발전에 따른 각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프로 즉 전문가가 요구된다. 국민 생활과 직접 연관이 있는 정치와 경제, 학문과 예술의 세계에서도 프로페셔널리즘이 요구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프로 스포츠에서 배울 게 많이 있다.
작금의 정치를 살펴보면 우리 정치에 필요한 프로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까 자기네들끼리만 소리 내서 다투는 정치를 하고 있으니 프로 정치가 아닌 셈이다. 특히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정치나 경제에 있어서는 좀 더 치밀한 계획성과 좀 더 두터운 신뢰가 요구되는 곳으로 철저한 프로가 요구되는 곳이다. 정치가나 경제인의 잘못이나 오판은 많은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치에 프로가 필요한 것은 과거처럼 '내 편 우선주의'나 '대충 어물쩍' '흘러가는 대로' 등 막연하고 애매한 아마추어식 정치로는 급속히 변하는 시대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산업화 사회에서 민주화 사회로 변화의 시대를 겪으며 숱한 위기와 분열이 있었다. 그때마다 탁월한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가, 정치가 위기 국면에 처할 때마다 훌륭한 리더십으로 위기국면 수습을 했었다. 정치 9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많은 지도자들은 숱한 위기를 철저한 프로 정신으로 정치를 이끌어 왔기에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프로 부존의 우리 정치는 비상이 일상이 된 듯, 정당들은 선거에서 지거나 몇 가지 악재만 터져도 비대위로 전환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당연시된 듯하다. 당의 구성원, 정책 등 본질은 그대로인데 뭔가 변한 것처럼 국민에게 보이고 싶을 때 외부 인사를 영입해 비대위를 출범시킨다. 정당이 안고 있는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하지 않고 분칠을 해서 덮으려는 수준 낮은 눈속임 수단을 하고 있다. 매 순간 이름값 하는 사람으로 땜질 처방을 하다 보니 달라지는 게 없다. 그러니 정국이 조금만 꼬여도 비대위를 설치가 당연한 수순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국힘당이 당 운명을 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비상시국을 맞았다. 새롭게 출발하는 정권에 맞춰 당을 운영하는 프로 정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국민이 뻔히 보는 백주에 아마추어보다 못한 짓을, 윤핵관과 이준석 전 대표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배가 부르니 벌써 몇 년 전 야당으로 전락한 쓰라림을 잊고 내부 권력투쟁으로 정신을 못 차린 결과이다. 그들의 못난 정치는 한순간에 소멸될 한 줌의 권력이라도 더 갖기 위해 부끄러움도 잊었다. 초유의 퍼펙트 스톰 속에 벌어지고 있는 여당의 내전은 명분도 염치도 없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야당은 선거에 졌으니 지도부가 책임지는 자세로 비상이 되었지만, 여당은 선거에 이기고도 비상이라니 도무지 이해 불가이다. 비대위 체제로 지난 3월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른 민주당도 선거 패배 후 또다시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여 야당 살림살이를 비대위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정의당도 지방선거 후 비대위로 전환해 우리나라 정치가 비대위 정치로 운명 되고 있어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시계는 멈춰져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말 그대로 당이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 가동되는 한시적 임시 기구다. 현 상황에서 비대위로 비정상적인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의미소(意味素)를 모두 상실한 전적으로 무의미하고 무내용 하다. 위기이고 비상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뒤집어쓰고 뻔뻔스럽게 행해지는 자기네끼리의 정치 놀음이 국민을 또 한 번 무지몽매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다원적 가치가 공존하는 열린 시대에 그들만의 정치 놀음은 그 나물 그 밥을 모아 비빔밥 전술을 쓰기에 그러한 위기 극복 방법이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 까닭은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비비고 덧칠하여 내놓는 그 논리가 새로운 사실과 구체성 위에 바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주요 선진국에서 비대위가 들어선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선택한 지도부가 임기 동안 책임을 지고 당을 이끄는 풍토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비대위라는 한시적 구조를 지난 몇 년간 정치권에서 무 비판적으로 손쉽게 받아들여진 행위가 옳은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혼란과 내 주장이 엉킨 작금의 정치에 진정한 프로가 안 보이니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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