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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전–홍콩–광저우(GBA)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2026년 글로벌 혁신지수 혁신클러스터 순위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도쿄–요코하마와 미국 산호세–샌프란시스코를 앞선 이번 성과는 선전의 첨단 제조 역량, 광저우의 연구·산업 기반, 홍콩의 금융·국제 비즈니스 기능이 결합한 혁신 생태계의 경쟁력을 보여준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
선전·홍콩·광저우가 유엔 전문기구의 세계 혁신클러스터 평가에서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유엔 전문기구인 세계지식재산기구가 발표한 2026년 글로벌 혁신지수 혁신클러스터 순위에서 선전–홍콩–광저우가 1위를 차지했다. 도쿄–요코하마가 2위, 미국 산호세–샌프란시스코가 3위였고 베이징과 서울이 각각 4위와 5위에 올랐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순위만이 아니다.
왜 서로 다른 세 도시가 하나의 세계 1위 혁신클러스터로 작동하는가. 선전과 광저우는 중국 본토의 도시다. 홍콩은 중국에 속하지만 법률과 행정, 금융제도에서 본토와 차이가 있다. 세 도시의 산업구조와 기능도 같지 않다. 그런데 특허와 논문, 투자활동의 실제 발생지역을 따라가자 행정경계와는 다른 하나의 혁신지역이 나타났다. GBA의 경쟁력을 읽는 출발점은 이 질문에 있다.
● 세계지식재산기구 세계 1위…중국의 ‘기술력’만 보면 절반만 보인다
2026년 세계지식재산기구 평가에서 선전–홍콩–광저우는 국제특허뿐 아니라 과학연구와 벤처투자가 함께 집중된 세계 최대 혁신거점으로 평가됐다. 중산대학교는 최대 과학논문 발표기관이다. 최근 5년간 벤처캐피털 거래도 7328건으로 세계 혁신클러스터 가운데 6위를 기록했다.
한 기업이나 하나의 산업만으로 만들어진 순위가 아니다. 선전에는 정보통신·AI·로봇·첨단제조 기업과 촘촘한 공급망이 있다. 광저우에는 대학과 연구기관, 자동차·바이오·첨단제조를 포함한 폭넓은 산업기반이 형성돼 있다. 홍콩은 연구중심 대학과 금융·투자 기능, 국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세 도시의 경쟁력은 서로 다르다. 그 차이가 오히려 상호보완의 조건이 된다.
선전이 광저우가 될 필요도, 홍콩이 선전이 될 필요도 없다. 서로 다른 기능이 연구와 사업 과정에서 실제로 연결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세계지식재산기구 역시 2026년 글로벌 혁신지수에서 혁신정책의 과제를 단순히 투입을 늘리거나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두지 않았다. 기관과 인재, 인프라, 금융, 기업의 역량이 서로 강화되는 경로, 즉 ‘시스템의 정합성’을 강조했다. GBA의 세계 1위를 이해하려면 서로 다른 자원을 얼마나 빠르고 지속적으로 연결하는지를 봐야 한다.
● 국제지역학으로 본 GBA…행정구역과 경제활동의 지역은 일치하지 않는다
지역은 행정경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이동하고 기업이 거래하며 대학의 지식이 다른 도시의 기업으로 넘어가고 자본이 그 기술을 따라 움직이면 행정구역과 다른 경제적·기능적 지역이 형성될 수 있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에서 공부한 왕타오가 선전에서 DJI를 창업한 과정은 이런 이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에서 형성된 지식과 인재가 선전의 전자·제조 공급망과 결합했다. 이후 홍콩과기대 리쩌샹 교수 등이 참여한 창업생태계는 대학 연구와 인재를 광둥성의 제조기반, 공급망, 창업기업과 연결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DJI라는 성공기업 하나보다 주목할 것은 그 뒤의 연결 구조다.
대학의 지식이 다른 도시로 이동해 제조역량을 만나 제품이 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다시 창업과 연구로 이어졌다. 고속철도가 연결됐다고 하나의 경제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했다고 지역혁신체계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과 지식, 기술과 자본이 실제로 이동하고 그 관계가 반복될 때 비로소 지역연계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 글로벌 거버넌스로 본 GBA…제도가 다를 때 ‘연결 능력’이 드러난다
GBA의 시험대는 도시 사이의 거리보다 제도의 차이에 있다. 특히 선전과 홍콩 사이의 기술협력에서는 공동연구를 한다는 선언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연구자가 이동해야 하고 연구장비와 시료가 오가야 한다. 연구비와 투자자금이 움직이고 데이터와 지식재산, 연구성과의 귀속 문제도 처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법률과 행정절차가 만난다. 허타오 선전–홍콩 과학기술혁신협력구는 그래서 중요하다.
선전강을 사이에 둔 선전파크와 홍콩파크를 ‘하나의 구역, 두 개의 파크’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홍콩 정부는 2026년 정책에서 두 파크 사이 연구인력과 데이터가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제도와 규칙의 연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콩파크에는 100개가 넘는 혁신기술 기업과 기관이 단계적으로 입주하고 있다. 허타오에서 주목할 대목은 두 지역의 제도를 하나로 통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제도를 유지하면서 연구와 사업에 필요한 규칙을 연결하고 실제 협력이 작동하도록 조정한다. 통합 이전에 조정이 존재하는 셈이다.
중국 중앙정부와 광둥성, 선전시,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만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과 투자자도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 대학은 연구성과와 인재를 보고 기업은 기술과 시장을 본다. 투자자는 사업성과 회수 가능성을 판단한다. 정부는 산업육성과 지역발전뿐 아니라 제도의 안정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행위자가 참여하는 구조에서는 누가 명령하는가보다 누가 연결하고, 누가 조정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경로로 해결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서로 다른 제도와 이해관계를 연결하고 실제 협력이 이어지도록 조정하는 과정이 GBA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보여준다.
● 국제관계학으로 본 GBA…서로 다른 제도와 규범을 연결하는 인프라 협력
선전과 홍콩은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같은 제도와 규범으로 움직이는 지역은 아니다. 법률과 행정절차, 금융제도와 데이터 관리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는 도로와 철도 같은 물리적 인프라만 연결한다고 해소되지 않는다. 사람과 기술, 연구자금과 데이터가 실제로 움직이려면 서로 다른 제도 사이에서 행정절차와 적용 규칙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리적 인프라가 지역 사이의 이동시간과 거리를 줄인다면 제도적 인프라는 협력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줄인다.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유지한 채 접속 가능한 영역을 넓히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과 투자기관도 연구와 사업의 실행 주체로 움직인다. 중국 중앙정부가 지역발전과 기술혁신의 큰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실제 협력은 지방정부의 조정과 대학·기업·투자기관의 참여를 거쳐 구체화된다.
GBA의 인프라 협력은 서로 다른 제도와 규범 아래에서도 교류가 지속될 수 있도록 연결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다. 국가가 협력의 큰 틀을 만들더라도 실제 연결은 지역과 도시, 대학과 기업이 참여하는 현장에서 구체화된다.
● 유엔 세계지식재산기구 순위에 잡히지 않는 경쟁력…GBA의 ‘관계 인프라’
세계지식재산기구가 보여주는 특허와 논문, 벤처투자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경쟁력도 있다. 그러나 어느 대학에 필요한 연구자가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 기술을 적절한 기업과 연결하는 기관, 기업의 문제를 연구팀으로 다시 가져가는 네트워크, 시제품을 빠르게 생산할 제조 파트너, 사업성을 판단할 투자자, 행정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할 기관과 절차를 알고 있는 경험은 하나의 숫자로 측정하기 어렵다. 이런 자산은 반복된 협력 속에서 축적된다.
한 번의 공동연구가 기술이전으로 이어지고 기술이전이 창업과 투자로 이어지며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이 다시 새로운 연구와 기업을 연결하면 지역 안에는 보이지 않는 협력경로가 생긴다. 도로와 철도, 연구시설이 물리적 인프라라면 이를 ‘관계 인프라’라고 볼 수 있다. 정책 발표나 산업단지 건설만으로 GBA의 경쟁력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책은 관계가 형성될 조건을 만들 수 있지만 관계 자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 성공한 협약의 숫자보다 ‘협약 이후’를 봐야 한다
중국의 지역개발을 볼 때 협약과 기관의 숫자만으로 성과를 판단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GBA에는 공동연구소와 산업단지, 협력구와 수많은 협약이 존재한다. 그러나 협약 체결과 기관 설립을 곧바로 지역통합의 성과로 해석하면 실제보다 앞서갈 수 있다. 공동연구 협약 이후 연구자가 실제로 움직였는지, 연구비가 집행됐는지, 지식과 기술이 다른 기관으로 전달됐는지, 연구성과가 제품이나 서비스로 이어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첫 번째 협력이 두 번째 공동연구와 기술이전, 새로운 기업의 참여로 이어졌는지도 봐야 한다. 중단된 사업도 분석 대상이다. 어느 단계에서 연결이 끊겼는지를 보면 제도와 산업 사이의 실제 장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GBA를 이미 완성된 하나의 경제권으로 전제하기보다 실제 관계가 어디까지 형성됐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람·지식·기술·자본이 어느 분야에서 이동하고, 첫 협력이 후속 연구와 기술이전, 사업화로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 코트라의 시각…‘중국시장 진출’에서 ‘혁신 네트워크 진입’으로
이 시각은 한국 기업의 GBA 진출전략과도 연결된다. GBA가 세계 1위라는 사실 자체가 한국 기업의 사업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 가진 역량과 부족한 기능부터 구분해야 한다. 연구기술은 있지만 현지 검증이 부족한 기업이라면 대학과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기술검증을 마쳤지만 제품화 역량이 부족하다면 선전과 주변 제조 공급망을 살펴봐야 한다. 중국을 넘어 국제투자와 해외시장까지 연결하려는 기업이라면 홍콩의 금융과 국제 비즈니스 기능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
코트라와 같은 무역·투자 지원기관의 역할도 시장규모와 경쟁기업, 관세와 투자환경을 알려주는 데서 한 단계 확장할 수 있다. 한국 기업에 필요한 기능을 찾아 현지 대학–연구기관–기업–제조–투자 네트워크의 어느 지점과 연결할 것인지까지 살피는 방식이다. 질문도 ‘중국시장에 무엇을 팔 것인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한국의 기술과 기업이 GBA의 어느 혁신 네트워크에 들어갈 수 있는지, GBA가 필요로 하는 어떤 역량을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 세계 1위보다 중요한 것
세계지식재산기구의 세계 1위 평가는 선전–홍콩–광저우에서 만들어진 혁신의 결과를 숫자로 보여준다. 하지만 숫자만으로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도시의 기능이 어떻게 보완되는지, 대학의 지식이 기업으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제도 차이를 누가 조정하는지, 한 번의 협력이 다음 연구와 사업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이 지점에서 GBA의 혁신클러스터는 단순한 산업집적과 구분된다.
지역의 혁신역량이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서로 다른 도시가 실제 관계를 통해 기능적 지역을 만들며, 그 과정에서 여러 행위자와 제도를 연결하는 조정 능력이 작동한다. 한국의 관심도 순위 확인에서 끝날 이유가 없다. 세계 1위라는 순위보다 서로 다른 자원을 어떻게 연결해 같은 성과를 반복해서 만들어내는지를 봐야 한다. GBA를 읽어야 할 지점은 그곳에 있다.
일요주간 / 서영현 국제경제부 기자 93oliv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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