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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그럼에도 왜 쓰는가 에 대한 물음에는 우리 국민이 오랜 세월 동안 정치 권력의 거짓말에 속아왔고, 그 불신은 우리 정치 정서 속에서 허무주의로 자리 잡았고, 그 허무주의는 일상화된 부당함이 서식하는 토양이 되었다. 그 속에 뿌리내린 시대의 난제인 불편과 고통은 늘 힘없는 서민들에게 전가되어 왔기에, 이 부당한 현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서 쓴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중언부언할 뿐이다.
내가, 또 무슨 말 같지 않은 헛소리를 하려고 서문부터 장황한 글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본시 배부른 보수의 안주(安住)보다 배가 고픈 진보의 진취적 행동을 좋아했다. 그런데 굳이 진보주의자에 관한 비난성의 말 같지도 않은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런 글들을 쓰게 된 경우도 나의 적극적 선택보다 소극적 선택에 따라 쓴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저편보다 이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편보다 이편이 덜 싫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 싫어함도 대부분은 어떤 냉철한 논리에서가 아니라 감정적인 반발에 가까웠다.
국민이 정치를 부인하지 않고 정치가 국민을 억압하지 않는 사회, 사회가 경제를 단죄하지 않고 경제가 사회를 경멸하지 않는 사회. 국민이 서민을 업신여기지 않고 서민이 국민을 받들지 않는 공정한 사회, 그러면서도 조화롭고 풍요하게 발전하는 사회를 위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욕심에 따른 비루한 나 자신의 변명에 불과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정치 현안에 여ㆍ야가 서로 옳다는 주장만 난무하니 바라보는 국민들만 헛갈려 우왕좌왕하고 있는 현실에서, 올바른 사항을 쓰려 노력하고 쓰지만, 이 역시 잡문이기에, 다만 거기에 조금이라도 묻어 있을 내 고난과 헤맴의 자취에 의하여 그 부끄러움이 사하여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내 부끄러움은 고사하고 부끄러움 단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는 주변에 널려 있다. 특히 정치권 주변에는 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은가. 그들은 학교 도덕 시간에는 뭘 배웠는지, 그 뻔뻔함이 글로 표현을 하기조차도 민망하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함께 모여 사는 곳으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도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대의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여론이 들끓는다면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스스로 포기할 줄도 알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그렇지 못할까. 그것도 많이 배워 알만한 사람들이 말이다. 아둔한 나는,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적합성만으로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우리는 천민이라 한다. 아무리 고관대작이면 뭘 하는가.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조차 구분을 못 하는 사고(思考)로 일상이 젖어있는 불쌍한 사람들인데. 누가 뭐래도 혼자만이 옳다고 우김질을 하며 마이웨이 하는데. 모(某)의원의 위장 탈당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본인만 아니라고 국민을 향해 우김질하며 천민 지향적 행동에는 다만 연민스럽다. 진퇴가 분명함에도 버티기로 서슴없이 자신이 천민임을 자처하는 공공기관장도 볼썽사납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가치보다 하위 가치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위 가치도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몰상식이 문제다.
문재인 정권은 임기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국가 주요자리의 인사를 감행했다. 요직을 꿰찬 문재인 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이 버티면서 신ㆍ구정권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구정권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는 기관장급 13명, 이사ㆍ감사 46명 등 59명이 있다. 새 정부와 국정철학이 다른 공공기관장이 버티면 결국 국가 정체성의 혼란으로 국력 낭비가 될 수 있다는 공론(公論)과 법에 보장된 임기는 지켜줘야 한다는 공론(空論)이 맞부딪히며 소리를 내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모든 정무직이 사표를 내는 미국처럼 한국도 정치적 중립성이 꼭 필요한 자리를 제외하면 새 대통령이 새 기관장과 호흡을 맞추도록 배려하는 게 상식의 정치다.
진보 정권 인사들이 공공기관장 자리가 요식협회나 상가번영회처럼 사인(私人)의 이익집단 같은 모습을 국민에게 비춰지고 있다. 고위 공직의 자리가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진 데, 공공기관이 정권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잘나가는 고관 아류들의 물 좋은 취직자리가 아니며, 천하의 공물(公物) 일진데 그 자리를 내놓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는 말인가. 공적 영역에 사적 사고가 섞이면 이해충돌이 생긴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 세상 흐름은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많은 여론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을 오기로 맞서는 넉살은 공ㆍ사를 구분조차 못 하는 심히 부끄러운 행동이다.
고위공직자들이 숙지해야 할 것이 제도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올바른 공직관이다. 공직을 출세와 생계 수단 정도로 가볍게 보거나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는 몰염치하고 천박한 사람들의 공직관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현시점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과 규정 그게 바로 전부라는 것은 반드시 구별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은 이제 나는 왜 지금 이 자리에 연연해야 하는가? 공직자들이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다.
세상이 이렇고, 부끄러움은 어떻고를 운운하며 나도 이 부끄러운 글을 썼지만 그럼에도 그 부끄러움의 본질에는 다다를 수 없는 것에, 그 단어 정신의 절정에는 말하지 못하는 결함을 갖는다. 그들이나, 나 역시 억지로 하려니 되는 일이 없어 이런 소재로 글 쓰는 것조차 부끄럽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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