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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보라, 국회 개원을 두고도 얼마나 많은 대립과 싸움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했는가를. 국회가 개원하자 야당은 소위 싸움닭이라 일컫는 싸움질 잘하는 의원들을 전면에 배치하며 여당과 정부를 상대로 전운을 불태우고 있다. 국정 책임이 막중한 여당도 여당 대표와 윤핵관이 집안싸움으로 점입가경이다. 이쪽에서 수군대니 저쪽에서 화답하듯 독설로 대응하니 중구(衆口)가 난방(難防)이다. 이쪽에서 이 말을 하고 저쪽에서 저 말을 해대며, 이리 쑤시고 저리 쑤셔대면, 세상이 어떻게 평온할 수 있을 것인가. 이래서 인간의 삶은 싸움 아닌 것이 없다는 정설이 자리매김을 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정치에서 싸움과 갈등은 어쩔 수 없이 계속 이어져 왔다. 현실주의 정치철학의 냉정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란 인간이 가진 싸움의 본능을 걸러서 사회가 내전이나 무정부 상태로 퇴락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를 '갈등을 둘러싼 갈등 조정의 체계'라 정의하고, 그것이 민주적 성격을 갈등과 통합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여ㆍ야가 공적 선택을 둘러싼 갈등과 그에 따른 다툼은 항시 존재하기에 물리적으로는 제거될 수 없는 나쁜 관행이다. 당사자 서로가 동일한 의견을 갖도록 하거나 모두를 이타적 존재로 바꿀 수도 없다. 정치에서 보수ㆍ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들 사이의 불안전한 상호이해는 어쩔 수 없는 정당 정치가 갖는 고질적인 요소다. 그러한 불일치와 불완전한 이해는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조건이지 좋은 사회로의 길을 방해하는, 단지 극복돼야 할 장애물이 분명 아니다.
좋은 정치는 능력과 역량에 따라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도 다루기에 따라서는 조정 가능한 공통의 의제로 만들 수 있다. 서로 간의 견해 차이를 없앨 수는 없어도 서로에게 구속력을 갖는 정당한 절차로 협의해 차이를 줄이며 그 과정과 결과를 합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이 정치에 가지는 불신과 불만은 정당들이 싸우고 갈등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오랜 기간 성과없는 소모적 싸움으로 불신 조장을 해온 근간의 우리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인은 종종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 정당을 대화 불능 대상으로 규정하곤 한다. 그것은 때로는 의견을 달리하는 정당, 시민에게 자신들이 주장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데 있어 게으르거나 불성실하다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이것은 국민 기만으로 이것이 일방적인 독선과 방기로 이어질 때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다. 특히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와 국가의 안위가 걸린 문제는 양자택일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기에 일방적 독선보다 진지한 가치와 국가적 이익을 위해 깊은 성찰과 함께 이것으로 인해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많은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치적 상대와 필히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갈등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주정치 역시 일정한 규범성이 필요하다. 우선 반대편의 입장을 규정하는 데 있어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주장을 개진하는 것이 정치적 싸움의 일차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상대 정당과 내가 속한 정당이 이해하고 있는 것 사이에 의미 있는 수렴 지점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숙고하여 논의해도 문제가 남게 되고 그것이 오해의 산물로 밖게 볼 수 없는 차이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때는 양보로 반대편 상대와 조정을 추구해야 한다. 나의 완전한 승리와 상대의 완전한 절멸은 민주정치가 추구하는 공존공영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선진국이 민주정치를 지지하는 이유는 공적 논쟁을 잘 이끌어 사안에 명료한 이해와 공통 이익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주적 싸움의 절차와 규범을 준수해 구속력 있는 공적 결정에 도달함으로써 조정과 협동하는 것이 서로 갈등하기만 하는 것보다 유익할 때가 많다는 것에 생각의 폭을 넓혀왔다. 흔히 싸움과 갈등이 정파적 이해관계와 전략적 고려가 불가피하다 해서, 정치가 '늘 정파적 싸움에 골몰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세계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이견을 통해 배우며 견해의 폭을 좁혀 서로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사회를 지금보다 조금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민주정치 전망을 어둡게 할 것이다.
많은 이유와 상황을 고려할 때 인간의 정치에서 싸움을 피할 수는 없으나 잘 싸울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여ㆍ야당에 바라건대, 싸우데 잘 싸워 달라는 것이다. 싸움이 조정 역할을 위한 싸움이어야지, 싸움하듯 싸워서야 되겠는가. 싸움을 좋아하는 싸움 닭들아, 세상을 만지고 주무르는 힘센 싸움꾼들아. 싸울 때 싸우더라도 제발 잘 좀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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