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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옛날 아테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한 군데를 맞으면 손이 그곳으로 올라가고, 또 다른 곳을 얻어맞으면 그 다른 곳으로 손이 올라가는" 싸움의 방식을 야만인들의 일이라 하며 그것을 아테네인들의 합리적 사고방식에 대조한 일이 있다. 이것은 물론 이방인들에 관하여 한 말이라기보다는 외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부패의 노름 터가 되어가는 아테네를 바라보면서 한 말이다.
우리의 정치도 목전의 싸움에 끌려다니며 긴 안목의 싸움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싸움을 잊어버린 듯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이 들게 하는 일 중 하나는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논쟁 중 하나가 이념 갈등이다. 하나의 사물을 두고 정치성 문제를 제시하며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사생결단의 정쟁이 과도하게 넘친다. 이것이 진실로 오늘 우리의 정치 현실에 맞아 들어가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 발전의 우선순위에서 참으로 긴급한가에 대해서는 분명 이론이 있고 여러 관점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유독 이념 갈등이 심하다고 너도나도 말하며 느낀다. 특히 김대중 '좌파' 정권의 출범 이후 이런 말이 무슨 진리처럼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이념이란 대체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이 현실 속에서 작동되고 있는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나는 그런 질문 자체를 힘들어할 뿐, 거기에 관해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욕망에 정의의 탈을 씌운 은폐물을 이념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이 그렇게까지 답답한 곳이어서는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광주에서 정율성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 터져 나온 이른바 부정적 여론이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흉상까지, '색깔론'으로 확대 해석되며 그런 답답함을 여지없이 입증해 주었다. 이념에 덧칠된 색깔론은 과거 행적이 '전형적인 빨갱이다' 또는 '수구골통 친일파'라는 용어로 변모되어 서로 쏘아대는 공격은 더러운 공격이지만, 한번 발목이 잡히면 끝장이다. 필사적으로 응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더러움은 강력하고도 요란한 더러움이다.
현재 여ㆍ야가 싸우는 이념 갈등은 무슨 일 때문에 생겨난 이념 갈등이 아니라 권력 쟁취와 유지를 위한 권력투쟁 과정의 야망 때문이라 보여진다. 우리처럼 남과 북이 쪼개져 사는 나라에서 이념을 갈등할 무슨 이념이 그렇게 많은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그 '이념 갈등'은 각 세력들의 이익 갈등이고 권력 쟁취 행위일 뿐이다. 여ㆍ야 모두 자기가 잘해 국민 지지를 얻으려 하기보다 남의 실책을 부각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뺄셈 정치에 올인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사생결단의 정쟁이 난무하고 있다. 마음이란 개를 보고 늑대라고 우겨대면 개가 늑대 되는 세상인지라, 정말 그것이 이념 갈등인가 하는 의심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이념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니 두 의견이 서로 좀 다른 것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 보건대, 우리나라는 분명 갈등으로 이어질 만큼의 이념이 빈곤하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이념이 따로 없이 보수와 진보 두 진영에 갈려 극심하게 대립을 하고 있다. 보수 우파의 논리가 절대 우세하지만 진보 좌파라고 지칭되는 것들의 대부분은 세계 기준으로 보면 중도이거나 온건 우파이다. 제대로 된 자유주의도 진보주의도 없기에 두 세력이 주장하는 이념의 내용이 빈약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념 빈곤의 원인이든 아니면 그 결과이든, 정치적 경쟁은 이념이 아니라 좁은 당파의 이익에 따라 일어난다. 여당과 야당의 싸움에 무슨 이념이 그렇게 중요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가? 다 이념에 덧칠된 패권싸움이고 권력투쟁의 일환이다. 이런 벌거숭이 파당 싸움이 스스로 겸연쩍으니 정치세력들은 그것을 이념으로 포장해 여론을 주도하며 정쟁화한다.
색깔론, 친일론 등 일체의 정치색이 배제된 이념은 싸움이 되지 않는 학술 토론 주제로나 쓰여 질 아름다운 이념이다. 이것에 정치색을 씌운 색깔론, 친일론의 이념은 구체적으로 작동되는 더럽고 강력한 이념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그 여러 이념들은 그것을 표방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우월성 과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실 이런 공허감은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정치인 인간의 마음속에 진실로 선한 의지가 살아 있느냐이며, 그 선한 의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 나는 믿는다. 어느 게 맞느냐를 따지기 좋아하는 정치인들은 수긍을 하지 않겠지만.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로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정치만은 해묵은 이념 논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이젠 정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되지 않겠는가. 지나친 일방성에 동의할 수 없는 이념 정치가 정의롭고 살만한 사회로 가는 길에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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