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언론자유는 부자유가 자유다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2-10-25 13: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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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발언한 것을 방송한 내용을 두고 여당에서 사실을 왜곡했다며 비난하자 문화방송 노조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정권과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전의를 다지고 있다.

나는 작금의 상황을 주재로 언어와 사유를 전개한다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언론의 자유가 무엇인지는 전문 언론 종사원이 아니기에, 헌법의 근거도 올바르게 해석해 말하기는 지식이 모자라서 어렵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상식적 언론자유의 근본은 언론의 부자유라 믿는다. 이 부자유는 철저한 자기검열에서 온다. 언론의 자기검열은, 이념이나 지향성에 의한 통제행위가 아니라, 사실과 의견을, 존재와 가치를 구별하는 통제행위다.

이른바 지금 방송에서 말하는 언론의 자유 주장은 거룩한 헌법적 가치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다고 보인다. 언론의 자유는, 분리되지 않는 의견과 사실을 기어코 분리시켜 놓으려는 가혹한 부자유의 소산인 것이다. 가령 "너는 나쁜 놈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가 아니다. "이것은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다. 그러므로 이 자유는 결국은 부자유다. 이 부자유를 스스로 수용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이며 자유는 고도의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정치 권력의 언어는 항상 추상화되어 있고 이념화되어 있다. 권력의 속성은 언어를 추상화함으로써 삶의 구체성과 반대 현상을 나타낸다. 정치 언어의 뻔뻔스러움은 이 추상성 속에 서식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이 추상화된 권력의 언어와 맞서는 사실적 언어를 확보하는 데 있다. 언론의 자유는 사실로서 가치를 지향하는 과정일 뿐이다.

사실적 언어가 갖는 층위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사실은 그것을 관찰하고 전달하는 자의 주관 속에서 재편성되고 재해석되며, 의미를 부여받거나 의미를 박탈당한다. 사실이 객관적이고 의견이 주관적이기 앞서서 사실을 다루며 거기에 다가가는 인간의 시선이 이미 주관적이다. 그러므로 사실과 의견은 늘 적대적이다.

방송법의 세 가지 보도 원칙은 객관성ㆍ공정성ㆍ균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바른 판단에 따른 비판과 견제는 책임과 정파를 초월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있다.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감 완벽한 공정성이 절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안이 무시되고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이나 논리의 질서 속에 별 의미 없는 언어를 재해석해 적대적으로 말하는 언론 행위는 올바르지 못하다. 그래서 그 언어는 결국 또 다른 언어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의하여 부정당할 수 있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윤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어에는 듣기와 말하기가 있다. 언론은 말하기보다 듣기 훈련을 해야 한다. 언론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듣기 훈련을 해야 한다. 말은 내가 해야 하는 것보다 남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다. 언론의 말은 담벼락에 대고 혼자서 주절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 언론들은 듣는 자는 없고 말하는 자만 있기에 귀머거리의 세상인 것이다.

여ㆍ야당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현 정국에서 언론의 책임과 방송의 사명이 지금처럼 막중할 때가 없다. 언론의 역할이 신속한 보도와 정확한 사실을 보도에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진보성향의 언론에서 사실 보도보다 정의로운 보도에 관심을 쏟는다면 그 보도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사실을 넘어선 정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보다 정의가 앞선다면 정의는 자칫 선동자의 도구로 변질된다. 정의란 특정 사실을 뉴스로 접한 시청자가 내리는 판단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이념과 세력에 봉사하는 당파적 보도를 정의롭다 여긴다면 정의는 잘못 해석될 수 있다.

지난번 대통령이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뒤 푸념 삼아 했던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주면 ㅇㅇㅇ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란 발언을 두고 문화방송과 여당 간에 진실규명 공방 게임을 벌이며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며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정권 대 방송, 정당 대 방송의 싸움은 전대미문의 백병전과 같다. 이 싸움의 본질은 권력투쟁이다. 권력화된 방송과, 그 권력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정치 권력의 주도권 싸움일 뿐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말하는 자유와 듣는 자유는 퇴행할 것이고 이미 퇴행의 행보는 시작되었다.

가짜뉴스는 터무니없을수록 자극적일수록 파급력이 강하다. 언론은 비판을 받을수록 더 많은 신봉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을 상대로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정치 권력이 연일 방송의 보도를 문제 삼아 공격하는 사태에 대해서도 그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방송사의 보도 내용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지만, 여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호도하는 것에 대한 방송의 책임 의식은 가져야 한다. 잘못한 것 설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기본윤리다.

언론의 사명은 진실의 추구이다. 언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사실이 곧 진실'이라는 명제가 있지만, 사실이 곧 진실이 아닌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사실은 그것을 관찰하고 전달하는 자의 주관 속에서 재편성되고 재해석되며, 의미를 부여받거나 의미를 박탈당한다. 사실이 객관적이고 진실이 주관적이기 앞서서, 사실을 만지고 거기에 다가가는 인간의 시선이 주관적이다.

사실에도 입각하지 않고, 보도하는 방송의 행위는 자신들 진영 사람들의 정서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 정치 권력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설익은 문제들을 끌어모아 싸움에서 이기려 한다면 어떤 진실이 밝혀져도 언론의 자유와는 무관하다. 사실 보도가 우선이며 사실이 여론을 끌고 갈 때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올바른 사회다. 거짓 여론을 조성해 사실을 뭉개 버리는 세상에서 언론의 자유는 논할 것이 아니기에 언론의 자유는 부자유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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