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책임 정치와 대화 정치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2-11-14 13: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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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하며 책상 위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를 명패에 새겨 올려놓았다. 이 글은 대통령 자신이 국정쇄신에 정치적인 책임을 지며 잘못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 관한 현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보면 대통령이 다짐한 단어 자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책임에 관한 일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변한 게 없다. 우리 사회는 참사가 터질 때마다 희생양을 먼저 찾는 구태를 보며 나는 지금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과 분노를 느끼며 이 글을 쓴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 나섰던 158명의 아까운 목숨이 졌다. 사망자 유족들은 사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말하며 쓰려져 울었다. 아무도 유족들의 슬픔을 달랠 수 없었기에 그저 참담하다. 아마도 이 참담함은 이 나라의 무수한 힘 없는 국민들의 참담함이었을 터이다.

이태원 참사 책임을 둘러싸고 여ㆍ야당간에 싸움박질이 점입가경이다. 이미 진행된 국회 행안위원에서는 책임에 묶여있는 주무부처 관계자들을 불러 사고를 사전에 방지 못 한 것과 늦장 대응에 관한 책임 추궁을 하고 있다.

여당은 무력하게 한숨을 쉴 뿐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드러난 사실은 인파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려 일어난 사태를 어떻게 속 시원한 설명으로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이른바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부는 이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으로 요란을 떨지만, 책임자를 지목하지 못하고 그저 변방만을 확인하며 시원한 해답을 못 내고 있다.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과 관계자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모든 일에는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알맹이 없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백번 말해도 안전이 제일이라지만 이미 사고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 앞에서 그 말이 무슨 씨가 먹힐 것인가.

과거 대형 참사는 위정자들이 말로는 책임진다 했지만,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 없었다. 대형 참사나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의 책임은 언제나 힘없는 아래 사람들 책임으로 난국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책임의 범위를 어떻게 적용하여 책임을 지울 것인가. 이것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다. 대통령의 책임 정치 성패는 오직 여기에 달려있다. 또 힘없는 아래 사람들에게 책임이 전가 된다면 책임 정치는 실패한 것이다.

야당에서는 모처럼의 정치적 호재를 세월호 사건과 연계하여 책임자 추궁이 한창이다. 그런데 책임자 추궁의 본질이 참사와는 무관한 정치적 공세로 변질되고 있다. 야당 대표의 검찰 소환과 맞물려 정치적 위기 탈출 계기로 삼는 듯하다. 심지어 새로운 이슈를 만들며 국정조사 특검 압박과 장외 투쟁에 나서 길거리 정치를 주도하며 수세의 몰린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솔직히 희생자를 위한 대책 이외 그 어떤 것을 주장하는 진부한 잠언은 그야말로 위선이거나 허위일 수밖에 없다.

이태원 사고의 정점으로 민심이 예전 같지 않다. 민심이란 무엇인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정치적 의사의 최대 공약수를 뜻한다. 기탄없이 말하면 지금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에 정치력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다. 검사 일색의 인사라든가, 대화와 타협의 정치력 부재는 정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이태원 참사의 대형 사고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우연으로 돌리는 듯한 무책임한 언사도 민심을 가르는데 한몫을 하였다. 서민들은 고금리와 물가 상승으로 힘들어하는데 정치권의 정치 부재와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는 안팎에 겹쳐 민심이 불안하고 뒤숭숭한 건 당연한 이치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대통령 책상 위에 명패를 올려놓고 책임을 강조한 대통령은 민심의 소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흔들리는 민심 수습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아직도 집권 초기 민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환상에서 못 깨어난다면, 만일, 이런 한 민심에 편승해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국민이 불안은 잠재우지 못할뿐더러, 더욱 불만의 파문이 확대해 가게 마련이다. 당면한 고금리 문제로 드러난 어려움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서민과 기업에 목줄을 죄고 있으나 감춰진 거대한 암초인 부동산의 침체 문제 등은 장기 금융 불안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 큰 주름이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자가 누구인가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은 꽉 막힌 정치력의 복원이다. 야대 여소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나라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과거 우리 정치는 어려울 때마다 대화와 타협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라는 단어는 참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오늘의 상황에 대입되면서 '말로써 서로의 문제를 푼다'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 방법을 총칭하게 됐으며, 보다 내면적으로는 형태의 폭력이나 물리적 힘의 사용을 배제한다는 합리적 사고를 뜻하기도 하다.

대화란 상대방 존재를 인정하는 전제로 한다.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때론 자신 이익의 극대화가 제약될 수도 있는 경우를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쌍방이 양보와 타협을 유도하는 것이다.

대화는 자신의 뜻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인내와 아량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상대의 주장과 문제를 듣고, 자신의 생각과 기대를 전달하는 과정은 상호 인정이라는 신뢰 관계의 출발점일 수도 있다. 따라서 대화는 상대방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고언과 힐책이 될 수도 있으며, 이럴 경우 상대방에게 듣기 싫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전제로 한다.

조간신문에 한미일 경제안보 대화 신설 합의라는 기사가 머리기사로 장식했다. 왜 국내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안 되는가. 정치력 부재시대 대화 단절의 정치에 필요한 대화와 타협 그에 따른 성실한 이행과 책임 이것이 책임지는 정치와 가장 적합한 자세다. 리더는 처 해진 현실에 책임이 무엇인가를 잘 파악할 때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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