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공황장애를 앓는 사회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2-12-02 17: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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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세월이 빠르다. 엊그제가 1월이었는데, 12월이 되니 이런저런 일에 생각이 깊어진다. 이제까지 살았던 시간과 생활을 되돌아보니 양탄자 깔린 길이나 무사태평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대략은 무사 무탈하게 지내왔다. 슬퍼 울며 땅을 친 일도 있고, 죽고 싶다는 말을 노래하듯 울먹인 적도 있고, 실의로 불면의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으며, 그 반대로 좋아서 함빡 웃는 행복한 날도 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 모든 것은 살아가는 과정으로 큰 복도 큰 화도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지내온 셈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 이웃들이 대게 다 그러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사람과 조금 덜한 사람도 있었지만 다 고만고만하기에 그런 것이 무릇 서민들의 삶이라고 믿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일에 관해서는 별로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좋은 일이 없는 것처럼 크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확신 같은게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해서 생각해보면, 팔자에 없는 로또에 당첨되거나, 갑자기 신분이 바뀌어 고대광실에서 호의 호색하며 살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처럼,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거나 전쟁에 휘말리는 일도 내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워낙 곳곳에서 '어이없는 사고'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험하고 궂은일이 꼭 남에게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세월호 사고나 이태원 참사를 보자.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나는 나라에서 또 주변에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사회에서 사고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사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인 것만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든 사건 사고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그럴만한 요인이 있지만 우리 모두가 주의해 살피지 않은 안전불감증이 화근의 주원인이다. 그러고 사고는 우리와 무관하게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세월호 사고,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사고도 있었지만, 주변에는 예상치 못한 화재와 산업 현장에서 도로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도 늘 많이 있었다. 나는 나와, 내 가족 주변 지인들이 사고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 불특정 다수가 희생되고 사고를 당했기에, 오히려 나도 내 가까운 누구도 사건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구심이 더욱 커졌다.

나이가 들은 탓인가. 점점 무거운 게 많아지고 조심스러워지며 쓸데없는 걱정도 늘어난다.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중 가끔은 지진에 관한 것도 있기에, 어떤 날은 혹 지진이라도 나서 도시가 엉망이 되는 게 아닌가. 북한에서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는 보도를 보며 이러다 전쟁 나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도 일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상대로 흉악 범죄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쓰다듬는 것도 이상하게 보인다. 아이들에게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가르쳐야 함에도 사람에 대한 경계를 주입 시키며 주의를 가르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보면서 느낀 게 나도 세상도 일종의 공황장애 세상이다.

공황장애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병 상태를 뜻한다. 이유 없이 극단의 불안증세와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병적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공황장애를 불러일으킬 요소는 다양하지만, 그 원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누구도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없는 거라는 자각이 공포를 키운다는 점이다. 어떤 위험에 처해도 구하러 올 사람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이 증세를 가중시킨다. 모든 관계에 대한 신뢰의 유대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이 공포인 셈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공황장애는 특정 연예인들이 앓고 있어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알려진 병으로 당사자는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병이다. 사회가 비대해지고 인간관계가 형식화되고 관계가 물 적화될수록 공황장애가 늘어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생각건대, 멀쩡한 가족이 사회의 안전불감증으로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면 남은 가족들의 삶과 정신은 어떠할까. 그래서 공황장애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사회의 공황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사회 공동체가 개인의 신체와 정신이 함부로 훼손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위험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사회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사고가 일어나면 정확한 진상규명과 더불어 책임자의 책임한계 규명의 투명함과 사고 예방을 위한 잘못된 제도의 정비와 잘못한 것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책임질 줄 아는 그런 태도가 분명 존재한다면, 천재지변에 의한 공황장애까지야 우리 능력으로 어쩔 수 없기에 어쩌지 못하겠지만 인재지변으로 인한 분노와 공황은 한결 줄어들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우리 사회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책임질 희생양만 먼저 찾는다. 장(長)은 책임이 없고 결국 졸(卒)만 본보기 희생이 된다. 진실에 대한 분노와 책임,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에 앞서 의심스럽고 흉흉한 괴담과 음모성 거짓 소문이 먼저 떠도는 사회다. 심지어 사고를 숙주로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야비하고 비겁한 군상들도 많이 있다. 보라, 지금 이태원 참사를 두고 계속 분노를 부추기며 휘발유를 뿌리는 세력들은 남의 슬픔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행위는 멀쩡한 사람까지도 공황장애 환자로 만들고 있다. 과연 이게 올바른 것인가.

사고가 일상화된 사회, 사고가 나도 그 순간만 지나면 잊고, 제발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는 미흡한 사회. 아무리 생각해도 올바른 사회상이 아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는 사회 그 이상의 서글픈 공황이 또 어디 있을까. 지금 이 사회가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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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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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서윤석님 2022-12-02 19:14:08
공감가는 좋은글입니다.
오로지 권력을 위해 한세상을 살아가는
좌파들은~
대한민국이 망해도 권력만 가지는것 외엔 어떠한 생각이 없는거 같습니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안정과 행복을 위하여 봉사하는 위정자가 국민들은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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