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이재윤 기자] 回心, 제자리 찾기
오카다 외상의 방한과 함께 혜문 스님을 비롯해 그동안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에서 펼쳐 온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에도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역시 조선왕조실록 반환 운동과 같은 미완의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냐는 물음에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국 간 외상 회담에서 논의된 후 그것이 정상회담의 의제로 채택되는 것이 중요하죠. 거기까지 가도록 민간에서 더 많이 활동도 해야 하고, 앞으로 넘어야 될 부분도 많겠죠. 일단 외상 회담을 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반환의 가능성이 상당 부분 현실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만, 실록이 기증이라는 형식으로 돌아온 것처럼 왕실의궤 역시 그렇게 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가진 업보이고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인 거죠. 그때 실록 받은 사람이 지금 총리를 하고 계신데, 그 분이 또 받았다고 하겠네요.(웃음)”
우스개처럼 던지는 스님의 말에 함께 웃었지만 씁쓸한 마음까지 덮을 수는 없었다. 혜문 스님은 지금까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이들과 펼쳐 온 문화재 반환 운동이 우리 사회가 가진 역사인식의 모순과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부를 울리는 경종이 되어서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 놓치고 있던 정신을 되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제가 하고 있는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는 게 제가 생각하는 종교관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불교, 제가 생각하는 종교는 없는 걸 찾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걸 찾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회심(回心)’이라고 하는데,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라 하지 없는 마음을 찾으라 하진 않거든요. 그런 것들이 우리말로 하자면 ‘제자리 찾기’겠죠. 문화재 한 점, 한 점 돌려받는 데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 정신, 자존심을 찾아가는 거죠. 궁극적으로 우리 스스로 양심이 제자리를 찾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문화재 반환 운동의 대원칙, 남북공조
혜문 스님은 한일 강제병합,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가 약탈 문화재 환수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재 반환 운동의 핵심은 ‘조일수교를 통한 대규모의 문화재 반환’이라며, 이를 위해 남북 간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국유문화재는 반환키로 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독립축하금이라고 칭한 청구권 자금 몇 억 불에 눈이 멀어 짚신이며 우체국 간판, 막도장까지 문화재로 쳐서 1,432점만 돌려받고 나머지는 서둘러 청구권을 포기해버린 수치스러운 과거를 딛고 이제 남북공조를 통한 문화재 반환 운동의 대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한다.
우리 정부는 1965년의 협정으로 스스로 발등을 찍는 우를 범했지만, 북은 앞으로 전개될 조일수교를 통해 유네스코가 1970년 제16차 총회에서 채택한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의 ‘외국 군대에 의한 일국의 점령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된다’는 규정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국유문화재는 원칙적으로 반환한다’는 관례에 비춰볼 때 북한은 일본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제가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면서 귀납적인 결론에 이른 거죠. 우리가 문화재를 빼앗긴 건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라를 되찾았을 때 왜 돌아오지 못했나, 분단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65년 한일협정 때 북한측 문화재는 반환이 되지 않았죠. 당시 한일협정의 모순은, 전제 조건이기도 했던 한반도에서 남한 정부만 국가로 인정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그 모순은 앞으로 조일수교가 되면 바뀌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한일협정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북이 필요한 거죠. 북은 이미 2002년도에 고이즈미와 김정일의 평양선언에 입각해서 문화재 반환 문제를 쌍방이 성실히 협의하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남북공조가 중요한 것입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이란 것은 우리 민족의 제자리 찾기이고, 더불어 통일운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문화재 반환 운동의 대원칙으로서 항상 남북공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8월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는 북측 조선불교도연맹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북측은 ‘민족문화재의 반환운동은 6·15 공동선언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남북공조’를 통한 지속적인 반환 운동을 전개하기로 공동합의서에 서명했고, 이에 따라 2008년 9월 남북 공동으로 조선왕실의궤 반환 요청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혜문 스님은 “혹자는 다 지난 얘기 자꾸 들춰내서 뭐하냐고도 한다”면서 “하지만 문화재 반환문제, 역사의 문제는 어떤 한 매듭이 존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령 내 아버지의 유골을 남이 갖고 있는데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자식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처럼 세상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있고, 그러한 것들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 살아있는 민족이라 할 수 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이미 우리나라에 2,077책이나 있다. 거기에 오대산본 47책이 보태어진다고 해서 새로운 연구 성과가 크게 기대되거나 문화 발전에 비약적으로 기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운동을 통해 찾고자 했던 것은 ‘종이와 먹으로 쓰인 실록’이 아니라 ‘빼앗긴 민족의 자존심’과 ‘실록에 기록된 역사의 정신’이었다.”
- ‘조선을 죽이다 - 명성황후 살해 기록과 역사의 진실(혜문 엮음, 동국대학교 출판부)’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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