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이재윤 기자] 우리 전통 한옥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에서 볼 때 그 진정한 멋이 우러난다고 한다. 한옥이 가진 이러한 멋스러움의 비결은 ‘차경(借景)’에 있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가지려 하지 않고 잠시 풍경을 빌려서 즐긴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옛적 선비들은 이름난 경승지를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대청이나 방안에서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와경(臥景)’을 조성해 풍류를 즐겼다.
방안에서 편안하게 누워 산수를 감상하고자 사랑채의 뜰 앞에 석가산(石假山)을 조성해 실제 자연에 대한 욕구를 충족했다고 하는데, 그 기원은 저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 아파트에 진경산수를 담다!
석가산은 감상 가치가 있는 돌을 쌓아 산의 형태를 축소시켜 재현한 것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 등이 왕명을 받아 단군조선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엮은 사서인 동국통감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오래된 조경의 한 양식이다.
동국통감 권4 삼국기에는 ‘백제에서 궁실을 수축하는데, 물을 파고 산을 만들어서 특이한 화초를 심고, 기이한 새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고, 권9 신라기에는 ‘왕이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서, 화초를 심고 진기한 날짐승과 길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경이라고 하면 아파트 단지에 나무를 심거나 하는 경우를 대개 떠올리죠. 실제 기존의 아파트 조경에서는 소나무를 비롯해 대형 나무들을 식재하는 경향이 대부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 주거문화가 점점 더 아파트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자연과 더 가까운 자연을 갖고 싶은 욕망도 더욱 커지고 있어요. 석가산은 이러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반영한 최근의 조경 트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집안에 자연을 들여와 그 안에서 멋과 풍류를 즐겼던 것처럼, 석가산을 통해 현대인들이 더욱 자연과 가까이 벗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석가산 전문 시공기업인 ‘정원 L&D’의 이미선 대표는 대구에서 석가산 조경을 선도하고 있다. 이미선 대표는 “일반 주택에 살아도 정원 하나 갖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누구나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갖다 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데, 기존의 소나무 식재 등의 조경으로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 보면 마치 군락처럼 키 큰 소나무를 심어뒀는데, 잎이 누렇게 말라죽은 모습들을 간혹 보게 돼요. 비싼 돈 들여서 소나무 조경을 했는데, 그게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흉물이 된 경우죠. 저희가 전문으로 하고 있는 석가산과 비슷한 개념으로 예전에 시내 곳곳에 인공폭포를 만들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FRP나 스티로폼 등의 소재를 사용했어요. 그래서 아무리 자연과 흡사하게 만든다고 해도 재료 자체가 주는 인공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칠이나 재료 자체가 벗겨지면서 흉물로 전락하기도 하죠.”
이미선 대표는 조경은 단순히 시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관리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런 점에서 석가산은 기존의 소나무 같은 대형 수목의 식재나 인공폭포 조경에 비해 장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석가산은 관상 가치가 있는 자연석을 쌓아 산의 형태를 축소시켜 재현한 것으로, 이미선 대표는 이를 ‘진경산수’ 조경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존에 해오던 획일화 된 평면설계 시공에서 오는 무료함을 탈피해 남들과 차별화 되는 작품성 있는 입체적 조경 시공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진경산수를 표현하는 석가산은 돌과 나무를 이용해 자연에 가장 가까운,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매력적이었죠. 이를 우리 주거환경 안으로 끌어와 많은 분들이 마음의 평온함과 일상의 여유, 풍요로움을 느끼게 함으로써 조경의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게 보람이기도 하고요.”
이미선 대표는 기존에 아파트 단지 조성이나 도심지 랜드마크 조경에 대개 대형목인 소나무를 위주로 식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운반 및 시공비가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유지관리비도 많이 들고, 하자 확률도 높다”며 그에 비해 “석가산은 시공비 대비 조경 효과와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고,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경제적 가치가 높다”고 석가산 조경의 장점을 설명했다.

◆ 조경은 천직, 내가 세상에 온 이유
이미선 대표는 조경시공 회사인 ‘평창산업’에서 조경 설계, 시공, 유지관리 등 각 분야에 두루 경험을 쌓았다. 조직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직장을 그만 두고 독립을 결심한 이유는 “조경이 천직”이라는 직업적 소명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조경 일을 하기 전에 주변 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일을 소개받았었는데, 그때마다 저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나중에 다른 일이 하고 싶으면 어쩌지?’ 그때마다 답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안 들더라고요. 그런데 우연찮은 기회에 조경 일을 접하게 됐는데, 이 일은 내가 계속 할 거라는 답을 할 수 있겠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이 일이 내게 천직이고, 심지어 제가 이 세상에 온 이유도 이게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이미선 대표는 “건축물과 차가 다니는 도로를 빼고 모든 것이 조경시공업에서 다루는 분야”라며 “지구상에 있는 소재는 모두 이용할 수 있다”고 조경의 매력을 꼽았다.
앞으로 지역에서 석가산을 전문적으로 시공하는 유일한 업체로서 독창적이고 작품성 있는 조경으로 시민들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이미선 대표는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조경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독창적이고 차별화 된 석가산 조경을 위해 조경학 뿐만 아니라 다육아트협회 작가, 조경학원 외래강사 등의 다양한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그녀는 지난 2012년 대구광역시 조경상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조금씩 자신의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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