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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작가 이름 중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름.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소유하지 않은 사랑> 등 고독, 슬픔, 사랑, 죽음의 시를 쓰고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 묘비명이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겹겹이 싸인 눈꺼플들 속 익명의 잠이고 싶어라' 라고 쓰인 시인......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자 후대 후배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 이름 나오는 시인....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흰바람 벽이 있어- 전문
오래전에 열심히 외웠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인.....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프랑시스 짬, 라인넬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별 헤는 밤- 전문
"사랑이 어떻게 네게로 왔는가/햇살처럼 왔는가, 꽃눈발처럼 왔는가/기도처럼 왔는가? 말해다오" 라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연가를 부른 릴케.
이렇게 가을이 깊어가는 밤에는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근대시인인 동시에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친 릴케의 시 '가을날'을 떠올려 본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가을날- 전문
사는 동안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때,
울적하고 힘들 때 릴케가 쓴 '젊은 시인에게 편지'를 읽었다. 지금도 그때 처럼, 글은 외부 평가를 기대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으로 눈길을 돌리라는 메세지를 준다. 깊어만 가는 이 가을, 열정과 낭만을 잃고 모래처럼 서걱거리는 나의 메마른 가슴에 릴케는 불씨를 지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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