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㊷] 어떤 그림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5-07-07 11: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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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

이병률


미술관의 두 사람은 각자
이 방과 저 방을 저 방과 이 방을 지키는 일을 했다

​사람들에게 그림을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졌다
자신들은 서로를 깊게 바라보다
만지고 쓰다듬는 일로 바로 넘어갔다

​두 사람은 각자 담당하는 공간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란히 공간을 옮겨 다녔다

그림이 그 두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두 사람을 그림 안으로 넣겠다고
그림이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인연이네요’ 어느 겨울, 이 문장에 마음이 갇혔다. 시집을 보내 준 이보다, 책 내용보다 더 깊이 품고 다녔다. ‘인연’이란 어휘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예문도 읽어보던,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뜻을 더 친밀하게 느끼고 싶던 계절. 사람들과 연을 맺고 사는 동안 인연에 감사함보다, 관계의 의미를 따지며 지내온 날들. 우연과 필연이라는 말을 아우르는 인연. 시집 앞장 색지에 적힌 “인연이네요” 이 울림이 가시기 전 「어떤 그림」을 만났다,

이 시의 두 사람의 인연은 미술관을 지키는 일에서 시작된다. 작품과 관람객 사이 감상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안내하는 일.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움직임이 오히려 행위 예술을 관람하는 것처럼 읽힌다. 마치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 속 전시된 인물과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는 현상처럼 말이다. ‘사람들에게 그림을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졌다/ 자신들은 서로를 깊게 바라보다/ 만지고 쓰다듬는 일로 바로 넘어갔다’ 미술관의 작품들이 멋있다고 한들, 사람 마음을 감상하는 재미보다 더하겠는가. 겹꽃처럼 마음 겹치는 사연을 영상처럼 들려주는 시, 어느 날 마주친 눈빛과 스치는 웃음과 귓전에 잠시 머문 목소리처럼 찾아오는. 그러나 우리 삶 안에 각인된 무늬로 남거나 어떤 만남은 눈송이처럼 녹는 인연도 있다.

관람객과 작품들 사이에서 인연을 맺는 두 사람, 우연과 필연을 건너뛴 인연이라니. ‘두 사람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란히 공간을 옮겨 다녔다’ 이 부분에서 한 편의 그림이 완성되는 시. 누구라도 액자에 담으면 작품이 되는 사연 하나쯤 있을 듯한 여름밤, 지금 「어떤 그림」을 함께 읽고 있는 “우리는 인연일까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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