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52] 연(軟)하게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5-09-22 09: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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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軟)하게

한영옥


톡-톡

올 듯 말 듯 감촉이 오곤 한다

상추가 되지 못한 상추 씨앗인 듯

배추가 되지 못한 배추 씨앗인 듯

발아되지 못한 것들 어깨 두드리는 겐가

조금은 섭섭하다는 겐가

나도 아직 싹트지 못한 거라는 게지

서럽게 같이 울어보자는 게지

알려 줄 듯 말 듯

연하게.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7월이면 여름의 첫 감동을 주는 연꽃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함안 가야읍. 그곳에는 아라가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아라 홍련이 핀다고 들었다. 700여 년의 세월을 지나 발아한 씨앗이 꽃을 피운다는 곳, 그 연꽃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씨앗이 어깨를 “톡-톡” 두드리듯 다가오는 시. “올 듯 말 듯” 아직 피지 못한 연한 것들의 움직임이 들리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이라는 말에서 가끔은 답답함을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시의 씨앗처럼 말이다. 이럴 때면 나는 왜 아직 이 자리에서 정체되어 있을까, 자신에게 묻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물음에서 “아직”이라는 말에 희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보았을 씨앗은 미래를 품은 상징이자 현재를 지탱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기에.

아라홍련과 「연(軟)하게」를 통해 씨앗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 수백 년이 지난 뒤에야 꽃을 피운 아라 홍련의 인내처럼 우리 안의 씨앗도 언젠가는 제때를 만나 꽃을 피울 것이라 믿는다. 이런 이유로 “서럽게 같이 울어보자는” 이 시의 씨앗들은 자기 연민에 머물지 않는다. 촉촉한 흙에서 “톡-톡” 서로를 두드리며 함께 울고 웃는 그들의 위로이다. ‘아직’의 의미는 미처 때가 이르지 못한 시간. 그러니 발아를 기다리는 기원 앞에서 오늘은 서로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경이로운 씨앗에는 모든 감정과 계절이 숨 쉬고 있듯이 어떤 시는 하나의 이미지로 전체의 의미를 품어낸다. 이렇게 “톡-톡” 모두의 마음을 「연하게」 어루만지는 이 시가 그렇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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