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래의 경쟁력은 혼자 성장하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경제학은 오랫동안 기업의 경쟁력을 자본과 기술, 노동생산성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산업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성공한 기업은 혼자 성장하지 않았다.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세계적인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혼자서는 반도체를 완성할 수 없다. 반도체 설계 기업, 장비 기업, 소재 기업,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함께 성장한다. 특히 네덜란드의 ASML은 EUV 노광장비를 공급하고, 영국의 Arm Holdings은 반도체 설계 구조를 제공하며, 수많은 소재·부품 기업이 공급망을 구성한다. 경쟁력은 개별 기업보다 연결된 생태계에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세계 무역은 완제품보다 중간재와 부품이 국경을 넘나드는 공급망 중심으로 재편되어 왔으며, 국제기구들은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국가와 기업의 생산성과 혁신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공급망이 단절되면 생산도 멈춘다는 사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세계 경제가 직접 경험했다.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기존 경제학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 경제학이 거래와 계약을 중심으로 설명했던 기업 활동을 ’연결의 가치’ 라는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자 한다.
기업은 혼자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은 연결될 때 성장한다. 기술은 연구소에서 탄생할 수 있지만, 시장은 기업과 대학, 투자자, 정부, 고객이 연결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연결은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요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독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미래의 경쟁력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신뢰와 협력의 연결을 만들고 있는가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 연결은 왜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가
오늘날 세계 경제는 더 이상 한 기업의 역량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의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수백 개의 기업과 연구기관, 투자자, 물류기업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협력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내부 자산보다 얼마나 우수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폰 산업이다. 애플은 아이폰을 기획하고 설계하지만, 제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참여한다. 반도체는 대만과 한국의 기업들이 공급하고,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모듈, 배터리, 정밀부품은 다양한 협력사가 생산한다. 소프트웨어는 수백만 명의 개발자가 참여하는 앱 생태계를 통해 완성된다. 아이폰의 경쟁력은 애플이라는 한 기업의 경쟁력이 아니라, 전 세계가 연결된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도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혼자 성장하지 않았다. 반도체 설계기업, 장비기업, 소재기업, 패키징 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어느 한 분야가 멈추면 전체 공급망이 영향을 받는다. 경쟁력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만들어진다.
국제기구들도 이러한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OECD와 세계무역기구(WTO)는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생산성과 기술혁신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해 왔다. 과거에는 제품을 많이 생산하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졌다면, 오늘날에는 얼마나 효율적인 공급망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는가가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공급망이 한 곳에서 멈추자 자동차와 반도체, 의료기기 생산이 동시에 차질을 빚었고, 많은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공급망을 재설계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이 과정을 통해 기술보다 먼저 확보해야 할 자산이 신뢰할 수 있는 협력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기존 경제학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 경제학이 거래와 계약 중심으로 설명했던 기업 활동을 연결의 경제학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자 한다. 연결은 단순히 거래 상대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비용을 낮추고, 혁신의 속도를 높이며, 새로운 시장을 함께 만들어 가는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다. 결국 미래의 기업은 혼자 가장 강한 기업이 아니라, 가장 많은 신뢰와 협력을 연결할 수 있는 기업이 시장을 선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Relationship Capital이라 정의한다.
◆ 연결은 어떻게 기업가치가 되는가
기업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될까. 전통적인 경제학은 매출과 영업이익, 현금흐름, 성장성을 중심으로 기업을 평가해 왔다. 이러한 기준은 지금도 기업가치 평가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실물경제를 살펴보면 동일한 기술과 자본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시장이 전혀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그 해답 가운데 하나를 연결의 힘(Relationship Capital) 에서 찾고자 한다. 최근 세계 기업들의 경쟁은 개별 기업 간 경쟁에서 산업 생태계 간 경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기차 산업에서는 완성차 기업만으로 경쟁력을 설명할 수 없다. 배터리 기업, 반도체 기업, 소프트웨어 기업, 충전 인프라 기업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어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인공지능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AI 모델만으로는 경쟁력이 완성되지 않는다. 반도체, 클라우드, 데이터, 응용 서비스 기업이 함께 연결될 때 비로소 산업이 성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투자시장에서도 확인된다. 장기 투자기관들은 개별 기업의 실적뿐 아니라 공급망 안정성, 전략적 제휴, 연구개발 협력, 고객 기반 등 기업이 구축한 네트워크의 질을 중요한 경쟁력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는 점차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은 글로벌 경쟁력을 평가하면서 혁신역량과 기업 생태계, 산학협력, 기술 네트워크 등을 중요한 요소로 분석하고 있으며, OECD 역시 혁신 클러스터와 기업 간 협력이 생산성과 기술혁신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결국 연결은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연결은 기술을 연결하고, 자본을 연결하며, 시장을 연결하고, 사람을 연결하는 경제적 자산이다. 연결이 많을수록 거래비용은 낮아지고 정보의 흐름은 빨라지며 혁신의 속도도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기존 경제학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 경제학이 기업 내부의 경쟁력을 중심으로 설명했다면, 오늘날 실물경제는 기업 외부와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항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해석하고자 한다.
기업은 혼자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은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연결 구조를 설계한다. 미래의 기업가치는 더 많은 자산을 소유한 기업보다 더 강한 연결을 구축한 기업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Relationship Capital은 인간관계를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연결이 거래비용을 낮추고 혁신을 가속하며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만들어 내는 경제적 자산이라는 사실을 실물경제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 미래를 이끄는 국가는 연결을 설계하는 국가다
국가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국내총생산(GDP), 수출 규모, 제조업 생산능력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러한 지표는 지금도 국가 경제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세계 경제는 또 하나의 경쟁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바로 연결의 힘이다. 오늘날 혁신을 주도하는 국가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 투자자, 정부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끊임없이 협력한다. 기술은 연구실에서 시작되지만, 산업은 연결 속에서 성장한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세계 최고의 기술기업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스탠퍼드대학교와 벤처캐피털, 글로벌 기업, 창업가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며 새로운 기업이 계속 탄생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시 제한된 내수시장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스타트업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대학과 군 연구기관, 벤처투자, 글로벌 기업이 긴밀하게 연결된 혁신 생태계가 자리하고 있다.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도 같은 원리를 보여준다. 세계적인 강소기업들은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 협력기업, 금융기관이 오랜 시간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하며 기술을 축적해 왔다. 개별 기업의 경쟁력이 아니라 지역 산업 전체의 연결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역시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반도체와 바이오, 인공지능, 미래 모빌리티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투자자, 정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혁신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미래 성장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OECD와 세계경제포럼(WEF)은 혁신 생태계와 산학협력, 연구개발 네트워크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연결이 선택이 아니라 성장의 필수 조건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더 많은 기업을 육성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업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연결 구조를 설계하고 있는가.
Relationship Capital은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다. 기존 경제학이 거래와 생산을 중심으로 성장의 원리를 설명했다면,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연결이 거래비용을 낮추고, 혁신을 가속하며, 산업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경제적 자산이라는 사실을 실물경제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미래를 선도하는 국가는 가장 많은 자본을 가진 국가가 아닐 수도 있다. 가장 뛰어난 기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사람과 기술, 기업과 대학, 투자와 산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국가. 새로운 가치 경제학은 바로 그 연결의 힘이 미래 국가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독자에게 마지막 질문을 남긴다. 미래의 경쟁은 기업과 기업의 경쟁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주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생태계의 경쟁일까. 앞으로 세계 경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줄 것이다.
일요주간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필자 주요약력]
現 INTERPRO H.K PEF 대표
現 일요주간 부회장
前 Proton International LLC (H.K) 법인장
前 Proton Asia PEF GP
前 Proton Asia PEF
아시아 국제 금융 법률,회계 전문위원
前 화중 테크 대표이사
前 화중아이앤씨 대표이사
前 중국 대련보세구 정부 위촉 외자유치 및 투자 구조 자문 대표
前 중국 천진 한화종합유한공사법인장
前 중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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