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호국의 방패를 허물기 전에 다시 물어라

이재훈 주필 / 기사승인 : 2026-08-10 17: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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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관학교 통합과 관련한 의견을 주고받은 간담회에 참석한 역대 참모총장단. (사진=육해공군 참모총장단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국군사관학교’ 창설에 속도를 주문했다. 지난 5일 외교·안보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군사 쿠데타를 무려 세 번이나 한 중심이 육군사관학교인데, 한 번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며 통합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제 사관학교 통합이 단순한 국방부 교육개혁을 넘어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실린 국정과제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정책의 타당성은 별개다.
 

5·16과 12·12를 거치며 군이 정치에 개입한 역사는 엄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군의 정치적 중립과 문민통제 역시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부 정치군인의 과오를 육군사관학교라는 교육기관 전체의 역사적 책임으로 돌리고, 그것을 사관학교 통합의 주요 명분으로 삼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육사의 역사에는 과오만 있는 것이 아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사 생도들은 전선에 투입됐고 일부는 불암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육사 출신 장교가 전쟁과 대간첩작전, 최전방과 해외파병 현장에서 대한민국을 지켰다. 정치군인의 잘못은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그 책임을 조국의 방패로 살아온 수많은 장교와 교육기관 전체의 역사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국방의 본질이다.


육군은 땅에서 싸우고, 해군은 바다에서 싸우며, 공군은 하늘과 우주를 지킨다. 육·해·공군이 하나의 대한민국 국군인 것은 당연하지만 전장 환경과 무기체계, 작전개념과 교육방식은 서로 다르다. 합동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합동은 전문성의 해체가 아니라 전문성의 결합이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여론 수치도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방부 의뢰로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서는 49.1%가 사관학교 통합에 찬성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통합교육의 취지와 장점을 설명한 뒤 의견을 물었다는 점에서 이 수치를 곧바로 정부가 추진하는 통합안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해석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같은 연구에서 정작 육·해·공군 사관생도 1,791명 가운데 91.3%가 통합에 반대했고 장교단도 60.9%가 반대했다. 연구진은 군별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1·2학년은 통합교육을 하고 3·4학년은 각 군 사관학교에서 전문교육을 받는 ‘2+2 네트워크형’을 절충안으로 평가했다. 반면 정부는 대전 자운대에서 4년간 교육하는 통합안을 기본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단순히 ‘통합 찬성 49.1%’라는 숫자만으로 현재 정부안이 국민적 동의를 얻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직접 교육을 받고 미래의 군을 지휘할 사관생도 10명 중 9명이 반대한다면 대통령은 속도를 재촉하기에 앞서 왜 그들이 반대하는지부터 들어야 한다.


국방부는 오는 8월 26일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공청회는 이미 정해놓은 결론을 설명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도와 교수, 현역 장교와 졸업생, 군사전문가와 지역사회, 국민의 목소리를 폭넓게 듣고 필요하다면 기본계획 자체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공청회가 이미 정해진 결론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그 결론까지 바꿀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사관학교는 어느 대통령의 학교도, 어느 정권의 학교도 아니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조국의 방패가 될 장교를 길러내는 대한민국의 학교다.


과거의 잘못은 사람과 제도에 정확하게 책임을 묻고, 미래의 군사교육은 오직 국가안보와 국방력이라는 기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국방은 백년대계다. 대통령은 통합을 재촉하기 전에 정부가 추진하려는 구체적인 통합안을 국민 앞에 충분히 설명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 동의부터 구해야 한다. ‘사관학교 통합’이라는 원론적 방향에 대한 찬반과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통합할 것인가에 대한 동의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사관학교 교육은 일반적인 교육제도의 개편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 유사시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질 지휘관을 길러내는 국가안보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한번 허문 전통과 장교 양성체계를 되돌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와 부작용은 군의 전문성과 지휘역량,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방력에까지 장기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사관학교 개편은 속도가 아니라 국가안보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재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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