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1년] "간호사 업무 범위 벗어난 의사 업무 전가 심각...공공의료·인력충원 제도 개선 시급"

하수은 기자 / 기사승인 : 2025-02-21 11: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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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연대본부·시민건강연구소, 지난해 2월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병원현장 변화에 대한 병원노동자 848명 설문조사 결과 발표
병원노동자 실태조사, 간호사 업무 범위 벗어난 추가 업무 수행 '증가함' 또는 '매우 증가함' 응답 비율 70%...의사 업무 전가 심각
▲ (사진=newsis)

[일요주간 = 하수은 기자] 전공의 집단사직 1년을 맞아 병원 현장은 시장중심적인 의료 시스템과 지역의료 붕괴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서울대병원(혜화역) 암병원지하 1층 서성환홀에서 ‘의료대란 1년, 병원 현장 어떻게 변했나’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가짜 의료개혁 철회하고 공공의료를 강화(경북대병원 조중래), △환자 안전을 위한 인력충원(서울대병원 권지은), △노동권 보호와 제도 개선(울산대병원 안지홍)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 병원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 전국 국립대 및 사립대 병원 노동자의 생생한 실태증언 △ 보건의료 전문가(건강과대안 이상윤 책임 연구위원) 순으로 진행됐다. 병원노동자 설문조사의 경우 의료연대본부와 시민건강연구소가 국립대 및 사립대 병원노동자(의사, 관리직 제외) 8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다.

첫 발언자로 나선 의료연대본부 박경득 본부장은 “의료대란의 해법은 전공의가 빠진 자리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료가 상품이 돼버린 한국 의료의 문제를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올해 의료연대본부는 모든 시민이 건강하게 살기 위한 요구를 걸고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병원, 위기 극복이란 미명하에 초과근무 확대 등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 요구”


이어 병원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가 진행된 가운데 시민건강연구소는 전공의 이탈 후 병원의 대응 전략 분석을 발표했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 후 병원은 ‘비상경영체제 선언 및 가동’을 전략으로 삼았다. 시민건강연구소는 “병원노동자들에게 경영위기를 지속적으로 알리며 위기 극복이란 미명하에 근무조별 인원감소, 무급휴가, 초과근무 확대 등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전략이다. 병원이 비상경영체제 아래 희생을 강요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고 전했다.

울산대병원 안지홍 노동자는 “병원이 비상경영을 시행하고 전공의 공백을 메우며 위기 상황을 대처했다”며 “그러나 위기 극복은 병원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의사업무를 수행하며 의료공백을 메웠고 울산대병원은 2024년 8월까지 142억 원의 흑자를 달성했으나 노동자에게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권지은 노동자도 병원이 적자라며 “지난해 4월 비상경영을 선포한 후 심각한 수준의 의사 업무 전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미 간호사들은 전공의 이탈 전부터 의사 업무를 전가받아 고강도 노동을 해 왔다. 일반간호사 402명 중 43.8%가 전공의 이탈 전 의사 업무인 복합드레싱 수행을 해 왔고 전공의 이탈 후에는 47.5%로 증가했다. 간호사 업무 범위를 벗어난 추가 업무 수행이 ‘증가함’ 또는 ‘매우 증가함’으로 응답한 비율은 70%에 달했다.

◇ “간호사, 업무 책임 소재 불분명으로 인한 불안감 79.1%나 겪어”

충북대학교병원 이가현 노동자는 “10년 넘게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의사들의 업무를 대신할 때는 모르쇠를 일관하던 정부가 이제 와서 ‘합법’이라며 의사들의 업무를 대신하라고 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면서 병원과 정부가 노동자들을 고강도 노동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병원은 비상경영 체제하에서 비민주적 운영을 강행해 왔다. 응답자의 45.1%가 업무 조정 과정이 비민주적이라고 평가했다. 진료지원 업무 전담 간호사의 42.9%는 일방적 통보로 진료지원 업무를 맡게 됐다고 응답했다. 전담 간호사 61.6%는 역할 관련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업무 책임 소재 불분명으로 인한 불안감은 79.1%나 겪고 있었다. 전공의 이탈에 대한 병원의 희생 강요적 전략이 실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게 시민건강연구소의 분석이다.

경북대학교병원 조중래 노동자는 “전공의 업무를 일방적으로 하달받고 일단은 하고 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의사가 하던 업무에 말 그대로 내 던져진 간호사들의 고충을 간호부도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병원 상황을 전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전공의 이탈과 병원으로부터 노동권을 침해받는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환자의 안전도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로 환자들이 제 때 진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2.4%는 환자 안전사고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시민건강권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인력충원을 하지 않는 병원도 대다수였다.

제주대병원 신동훈 노동자는 “의정갈등으로 의료 서비스가 제한됐다. 그럼에도 의료 인력 부족이 심화 돼 도민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민건강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병원은 전공의 이탈 후 인건비 지출 절감을 위해 신규 채용을 유보하고 병동 팀 인력 축소 등 인력을 되려 축소하는 전략으로 병원을 운영 중이다.

신동훈 노동자는 “이전부터 심각했던 지역의료 붕괴는 전공의 이탈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지난 1월 병원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지난 1월 임신 29주 된 임산부가 조산 위험으로 응급실을 찾았으나 병상부족으로 헬기를 이용해 긴급 전원 했다”고 의료 현장의 인력 부족 실태를 전했다.

충북대병원 이가현 노동자도 “충북대병원 응급실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보도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충북의 위중한 환자들은 충북대병원으로 올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병상수가 30에서 22 병상으로 줄면서 충북지역 초과사망(평균적인 사망자 수를 넘어서는 사망)이 2024년 2월부터 7월 사이에만 초과사망이 3136명 발생했다”며 지역의료의 위기 상황을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이상윤 책임 연구위원은 “문제는 시장중심적인 의료 시스템에 있다”며 “한국 의료 시스템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의료 민영화가 아닌 공공의료 강화를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연대본부는 “의료대란 사태 해결과 붕괴위기의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장중심 의료체계를 공공중심 의료체계로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며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공의사와 지역의사 양성, 간호인력을 포함한 보건의료 인력 충원 그리고 적정한 보건의료인력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정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 의료연대본부는 모든 시민이 건강한 삶을 지키는 요구를 걸고 시민들과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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