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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사람들은 왜 나이를 들었다 하지 않고 먹는다고 표현할까. 칠순을 넘긴 나는 그동안 뭘 먹어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뭐든 먹었으면 배가 불러 소화를 해야 하고 그 먹은 건 영양분이 되어 몸 어딘가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울 속을 들여다보니 그동안 먹은 것이 다 어디 갔는지, 뭘 먹었기에 거울 속의 모습은 세련보다는 가련(可憐)에 가까운 노년의 모습이다. 내 몸과 영혼은 그동안 먹은 것들에 비해 일부는 과잉이고 일부는 결핍인 불균형상태임에 틀림없다.
헌법기관인 국회가 존재한 지 어느덧 70여 년이 지났다. 사람으로 치면 고희가 지났다는 것이다. 세월의 흔적인가, 여의도 한가운데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는 의사당 지붕도 탈색되어 하얗게 서리가 내린 모습이 건축물의 격을 더 해주고 있다. 그런데 의사당의 격에 걸맞게 의사당 주역인 의원들의 품격도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일부 의원들의 품격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9명의 보좌진을 거느리는 특권 사장으로 민을 위한 정책보다,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 싸우는 소리가 들리니 흡사 싸움닭만 모아놓은 것 같다. 한마디로 긍정적인 면의 결핍과 부정적인 면의 과잉으로 품격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국회는 대한민국 건국 헌법을 제정하여 국가의 틀을 세웠고 헌정질서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절묘한 대화와 타협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바로 세웠다. 9차례 국가 틀의 손질을 거치며 70년 연륜에 맞게 관록이 붙었다. 무엇보다 민의를 대변하는 일에 최우선 하였기에 그야말로 국민이 일상에 주인이 되는 대의 민주주의를 꽃피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사사오입 개헌과 유정회라는 어용단체 단체가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한 잘못도 있었다.
흔히 치적을 평가할 때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고 하지만 세상인심은 '공'보다 '과'를 더 크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국회는 대한민국이 해방과 건국,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는 데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입법 활동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의원은 지역주의와 색깔론에 기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국가와 국민팔이를 하면서 사회발전을 뒷걸음질 치게 한 허물도 있었고, 그 잘못 또한 크다. 최근 자신들의 정치를 하는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지 경계가 모호하며 민을 위해 그리는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국회 내년도 운영 예산을 올해보다 364억 원 늘어난 7881억 원에 합의했다. 국회가 국정 모든 분야에 예산은 삭감을 추진하면서도 자신들을 위한 예산은 364억 원 증액하기로 했다고 한다. 여야는 예산을 놓고 각 상임위에서 원수처럼 싸우지만, 자기들이 쓸 돈을 늘리는 데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듯 한마음 한 몸처럼 행동한다. '정책 전문성 강화'라는 명분으로 예산 증액을 추진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명분으로 보좌진 급여를 여러 차례 올렸지만, 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개선됐다는 평가와 보도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국회는 무늬만 민의 대표기관이지 유명무실하기 짝이 없다. 유명무실과 명실상부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름은 났지만 실체가 없는 게 유명무실이고 이름과 실체가 한결같은 게 명실상부이다. 이만하면 국민의 대표 자격이 무엇인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는가. 국민들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바로 언행일치, 솔선수범이다. 말은 그럴듯한데 행동이 어긋나거나 정반대이면 그건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친구나 동료로도 자격 상실이다.
스포츠 게임의 구호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다. '더'라는 플러스의 단어는 기록 갱신을 위할 때 필요한 단어이지만, 하지만 그건 스포츠나 사업을 할 때의 목표이지 삶의 목표로는 곤란하다. 인간적 향기가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에는 '더'라는 단어보다 '다'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나는 예전에는 '더(more)'에 관심이 많았는데 요즘엔 '다(all)'에 마음이 끌린다. 더 잘사는 게 최고였는데 다 잘사는 게 최선이라는 걸 느지막하게 깨달은 셈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진 국회도 필요한 단어가 '더'보다 '다'이다. 작금의 국회의원들 행동을 보면 더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으며, 최고의 권력까지 양손에 쥔 자들이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안달이다. 혼자만이 잘났다며 남보다 더 튀는 정치를 해서야, 바라보는 국민만 불안하다. 요즘 정치는 정파적 이익에 매몰돼 더불어 잘살자는 구호보다. 다 함께 못살자는 편 가름 싸움판의 소용돌이 속으로 국민을 몰아넣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싸우는 개싸움처럼 여기서 짖으면 저기서 따라 짖으며 으르렁거린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독설가 이지(李贄)는 분서[焚書]라는 책에서 "나이 오십 이전에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다"라고 고백했다. 실상 고백이라기보다 자기 선언에 가깝게 들린다. 아, 쳐다보기도 민망한 지겨움! 국민은 다들 울고 싶다. 제발 이러지들 말라. 나이 값하며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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