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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지난해는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이 덮친 격동의 한 해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크나큰 자국을 남긴 채 갑진년이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새로운 을사년을 맞았지만 추하게 싸우기는 마찬가지다. 인제 와서 누가 잘하고 누가 잘 못 한 것을 시시비비 따진들 무엇하랴. 지금 와서 누가 덕을 보고, 누가 손해를 봤다고 계산을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의 국격과 위상이 어떻게 훼손되어 있으며 얼마나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었느냐에 있다. 가뜩이나 밥벌이에 고단한 서민 생활이 걱정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통령의 구속은 불행으로 점철된 우리 대통령사에 또 한 번 얼룩을 남겠다.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한 극한 대립의 정쟁을 보며 우리는 지금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서로 자기가 옳고 남은 틀린다고 주장한다. 남을 위한 말 없는 실천보다 나를 위한 말 많은 주장이 더 앞선다. 이토록 극심하게 자기주장이 강한 시대도 있었든가 싶을 정도로 소통의 문이 꽉 닫혀 있어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답답하고 짜증스럽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잃고 계엄으로 야기된 여러 가지 정치 상황 속에 우리 사회는 하나의 국가가 아닌 여러 단체가 혼합해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국론 분열로 목소리 큰 단체, 힘센 단체는 우김질로 세상을 이기려 한다. 하나의 핏줄에 하나의 문화에, 하나의 역사에 하나의 생활 속에 있는 우리나라가 자칫하면 동질성을 망각할 정도로 서로의 이해가 대립된 듯한 느낌이 들게 될 때도 있다.
지금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개인도 어느 정당도 아니요, 어느 지방도 아니요, 어느 계층도 아니고 바로 우리나라 그 자체이다. 크게 보면 국가가 어려운데 어느 개인이 덕을 볼 까닭이 없고, 나라가 어려운데 어느 정당이 덕을 볼 까닭이 없고, 어느 지방이 덕을 볼 까닭이 없다. 만에 하나라도 이 어려운 시국을 덕 볼 기회로 삼아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가장 비열한 행동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누구의 잘못을 따질 것 없이 역사에 무릎 꿇고 스스로 사과하여야 하며, 나라가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성찰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이 주요 축을 이루어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속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되고 어떤 사람은 손이 되고 어떤 사람은 발이 되며 어떤 단체는 귀가 되고 입이 되며 눈이 되어있다. 그 어느 하나라도 소속감을 잃거나 분수를 모르면 생명체는 불구가 되어 제구실을 못 하며 그 생명체는 결국은 죽게 마련인 것을 왜 모르는가.
대통령이 허공으로 쏘아 올린 공을 두고 세상이 양분되었다. 누구 따질 것 없이 참으로 추(醜)한 모습이다. 말의 질서가 심하게 비틀리면서 괴담과 소설이 끝없이 난무하며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비상계엄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말과 편 가름은 이미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 계엄으로 야기된 여러 문제점은 우리가 얼마나 뒤틀린 사회에서 추하게 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추의 미학을 제시한 카를 로젠크란츠는 추의 특징으로 형태 없음과 부정확성을 들고 있다. 형태가 없다는 것은 조화가 사라지고 불균형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정확성은 변형된 것(극악, 불쾌, 비도덕적인 것 등)을 의미한다.
추의 시대는 불온하다. 강한 중독성을 지닌 괴담과 그럴듯한 가짜뉴스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유튜버의 수다가 세상을 덮는다. 우리는 유튜버의 수다들이 얼마만큼 사실이거나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대중은 그들의 수다가 사실이나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믿는다. 보수 유튜버는 진보 쪽 잘못을 부풀려 질긴 이빨로 물고 뜯으며 마구 씹어댄다. 진보 쪽 유튜버도 그럴듯한 거짓말을 섞어가며 대중의 분노를 유발시키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어서 잘못된 부분은 사과 또는 기타 방법으로 해명될 수 있음에도 대중은 불온한 수다 속에서 진정성을 찾고 위안을 삼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 해지자 흥분한 시위대가 법원에 난입해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이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로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치주의의 전면 부정이자 중대한 도전이다. 설령 판사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항의하고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어느 국민이 영장 발부에 불만을 품고 폭력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세력에 동조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추하다. 지옥의 모습을 본 것 같다.
공정하고 깨끗해야 할 법원도 문제다. 자신들의 문제는 들여다보지 않고 사회적 현상에만 잣대를 들여 되고 있다. 대법관들이 20일 긴급회의를 열고 "서부지법 난입 사건과 관련해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 부정"이라며 극단 행위가 일상화될 경우 우리나라는 존립할 수 없게 된다" 고 했다. 그동안 주요 사건에 지지부진한 것은 판사들이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한 것이라고 대다수 국민은 믿고 있다. 이러니 많은 국민은 재판이 진실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판사의 정치 성향에 따라 사건의 결과가 극과 극으로 왔다 갔다 한다며 법원에 불신감만 쌓여 있다.
공수처도 수사를 하는지 정치를 하는지, 하는 짓이 딱 그 모양이다. 처음부터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보다 여론몰이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혐의가 입증되기 전부터 '구속 수사 불가피론'과 '구속 불가론'이 서로 적대하며 부딪쳤다. 공수처가 주장하는 것은 발생한 여론이라기보다 정치적으로 조성된 여론이었다. 윤석렬 대통령을 공수처 조사실로 데려가겠다며 사흘 연속 강제 구인을 시도했지만, 대통령의 거듭된 수사 거부로 강제 구인 방문 조사 모두 실패했다. 공수는 수사 목적보다 대통령 망신 주기의 '수사 쇼'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적 가치가 우선 돼야 할 입법이 특정 정파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국회의 입법권 남용과 고소ㆍ고발을 남발하는 정치의 사법화는 우리 사회를 망국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힘을 가진자들이 정말 이래도 되는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 웃을 수밖에 없는 게 나의 지성이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 이기든 역사는 퇴행할 것이다. 이 퇴행 속에 우리는 하루하루 아둔해지는 '추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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