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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이자 배우, 행위 예술가로 불리는 심씨는 자신의 집의 한평남짓한 부엌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꾸며 삶과 무대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자신을 지탱해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무대 위에 펼칠 방법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극장인 ‘한평극장’을 탄생시킨 것이다.
삶을 무대로, 무대를 삶으로 만든 심씨를 만나 그의 인생과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 한평극장은 어떤 곳인가.
-저는 메커니즘을 많이 쓰고, 굉장히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예술 추구합니다. 사람들의 표피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요즘 연극들과는 정반대죠. 한평극장은 우리의 깊은 감성을 깨워주는 일명 ‘우는 방’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이 공간을 만들게 된 이유는.
-사실 배우들 중에 독거노인이 많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무대가 불러주기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그렇다고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죠.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극장이 되는 겁니다. 한평극장처럼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만의 극장이 되는 거죠.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 그동안 했던 연기만 보여줘도 얼마든지 감동적인 공연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몸소 이렇게 한평극장에서 공연을 해도 배고픔이 해결되고 예술가가, 배우가 무대라는 공간과 자신의 삶의 공간이 공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우라면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워 무대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저의 꿈이 한평극장을 통해 실현된 셈이죠. 제 삶의 공간이 곧 무대가 됐으니깐요.
▲ 한평극장은 극장들이 밀집해있는 대학로가 아닌 광화문을 선택한 이유는.
-상업의 논리와 돈의 논리로만 봤을 때는 대학로를 선택하는 것이 맞겠지요.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도시의 디자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아닌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산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좌파, 우파부터 정치, 경제 문제 등 복잡한 이념들과 갈등에서 떠나 서울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도시이자 감성이 뛰어난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극장들이 밀집돼 있는 대학로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서울의 한 곳, 광화문을 선택한 것입니다.
▲ 현재 대부분의 극장은 대학로에만 편중돼 있다. 이러한 공연계의 현실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현재 대학로는 상업 논리로만 이뤄진 연극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관객의 입맛에 맞는 달콤함에 맞추려고 삐끼들까지 사서 표를 팔고 있지 않습니까. 상업도 아니고 순수예술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면 화려한 뮤지컬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이죠. 요즘엔 순수연극이라는 자체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관객들이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를 보기위해 공연장을 찾았지만 지금은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연극을 보고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죠. 결국 교수가 지정한 연극을 보기 위해 학생들은 돈을 내고 일부 교수들만 호의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처럼 공연을 할 수 있는 극장이 대학로와 같이 한 곳에만 밀집해 있지 않고 여러 곳에 분포돼 있습니다. 우리는 시야가 너무 좁아요. 앞으로는 관객들의 시야를 넓혀줄 공연과 장소가 다양해야 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 극 중에서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현재 공연 중인 ‘죽느냐 사느냐’에서 등장하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 이야기는 제 실제 이야기입니다. 지금 어머니는 남동생하고 사시는데 저를 순간에는 알아봅니다. 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때는 가슴이 아파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입니다. 또 극 중 사춘기 시절 정신병원에 보내려는 했던 아버지 이야기도 제 얘기죠. 제가 중고등학교 때 학교를 거부하고 예술에 심취하자 아버지가 저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야기에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기도 제 체험과도 같다고 볼 수 있죠. 논픽션이 있는 것처럼 픽션도 있습니다. 현재 픽션적인 것들을 더 도입해 작품을 객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얘기만 하다보면 자기 힐링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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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한평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어떤 분들인지.
-여기 오시는 분들은 주로 40~50대 주부님들입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뛰어나고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여성의 감성을 여성이 어루만져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자가 다른 감성으로 어루만져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여성분들이 많이 찾아오시고 자신의 감성을 공감하고 가시는 것 같습니다.
▲ 한평극장 이전에 홍대에서 소극장 씨어터제로를 만들어 운영하다 실패했는데.
-그곳에서 진정한 예술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포스터부터 조그마한 봉투까지 최고를 추구했습니다. 예술은 감각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많은 빚을 내면서까지 최고의 퀄리티를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달에 드는 비용만 천만원이 넘었습니다. 그 돈들은 쉽게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재정난에 힘들었죠.
하지만 씨어터제로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예술인을 발굴해냈고 실험적인 공연들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어터제로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금전적인 실패만을 뜻하는 것입니다.
▲ 예술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학창시절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던 내성적인 학생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한명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돼서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친구를 알게 됐고 현대극단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예술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최초로 영화를 접목한 연극를 선보이며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개’라는 작품에서는 넥타이를 맨 남성이 개사슬에 묶여 왈왈 짖는 모습을 선보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굉장한 센세이션이었습니다. ‘햄릿머신’이라는 연극도 인기를 끌어 일본에서 대서특필할 정도였죠. 국내 뿐만아니라 일본, 유럽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 간경화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회복했는데.
-50살이 되서 갑자기 간경화라는 병에 걸렸습니다. 병마와 싸운 게 제 인생을 뒤바꾼 가장 큰 일이었죠. 그 동안 인간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몰랐어요. 내가 죽어갈 때 가족이 있고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겠지 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분노와 에너지를 절제하지 못했었지만 그 이후 인생에 대해 새롭게 깨닫고 성격도 반대로 바뀌었죠. 의사가 몇 개월 밖에 못산다고 했는데 벌써 몇년째 큰 이상 없이 살고 있습니다. 의사까지도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죠. 그렇게 된데 있어서는 제 자신에 대한 고뇌와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삶을 제가 선택하고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겠다고 매일매일 되뇌던 게 효과가 있었어요.
▲ 연출가이자 배우로서 다양한 예술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떤 호칭으로 불리고 싶은지.
-30대에는 배우로, 40대에는 연출가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현재 50대에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평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비주얼을 만들고 연기하려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술가라는 호칭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배우로서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지금처럼 살아있는 나의 모습이 충실하게 보여지는 것이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배역이었습니다.
▲ 예술을 정의한다면.
-사실 먹고 사는데 있어 예술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생존하는 것 외에 무수한 행복감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까. 미묘한 인간의 감성, 공기 속에 다양한 에너지가 있잖아요. 그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계획 중인 공연은 어떤 것이 있나.
-거창연극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100명의 햄릿’의 연출을 준비 중입니다. 100명의 햄릿과 함께 할 오필리어에 대한 오디션은 이달 11일 진행됩니다. 물 위에서 펼쳐지는 야외공연으로 사운드이미지극입니다. 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공연으로 드디어 공연으로 선보이게 됐습니다. 그밖에 한평극장에서는 6월 중순부터 무용가들이 선보이는 한평댄스 공연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제는 제 안의 에너지를 발산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실험적이고 진정성이 담긴 공연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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