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 배남효 고전연구가] 오수척 천하비(吾雖瘠 天下肥)는 ‘나는 야위었으나 천하는 살쪘다’라는 뜻이다.
중국의 당나라 현종(玄宗)이 신하들과 대화하면서 한 말인데, 천하를 통치하는 황제로서 현종의 당당한 면모를 잘 드러낸 명언(名言)이다.
현종은 선대의 태종과 쌍벽을 이루며 ‘개원의 치(開元之治)’라고 불리는 태평성대를 열면서 치세를 잘 한 명군(名君)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물론 나중에 양귀비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여 나라를 기울게 한 혼군(昏君)이 되어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하여 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색(美色)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당 현종은 초기에 인재 등용에 힘을 기울여 요숭 송경 장구령 등 명신들을 발탁하여 국정을 잘 이끌었는데, 특히 한휴 같이 간언을 잘 하는 사람도 측근으로 기용하여 자신의 잘못을 막는데 노력했다고 한다.
현종이 국정을 잘 다스리던 시기의 일화인데, 측근인 한휴(韓休)가 조정에서 현종에게 까다롭게 간언을 많이 하였다.
그러자 한휴를 시기하던 신하들이 좋은 기회라 여겨 현종에게 한휴 때문에 옥체가 많이 상하고 수척해졌으니 한휴를 물리치라고 진언하였다
그러자 현종이 쓴 웃음을 지으며 한휴 때문에 비록 나는 야위었으나 천하는 살찌지 않았는가 하면서 태연히 응수하고는 신하들의 진언을 물리쳤다고 한다.
명군(名君)다운 당당한 기개와 대범한 스케일을 보여준 감동적인 일화이다.
현종이 천하의 황제로서 국정을 임하는 자세가 얼마나 공적이고 헌신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공인으로서의 자세가 투철하고 스케일이 큰 리더쉽을 갖춘 정치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는 찾기가 쉽지 않다.
권력을 갖게 되면 자만심에 빠져 마음대로 행사하면서, 주위의 쓴소리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싫어하고 멀리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국정을 혼란하게 만들고 자신까지 망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는 전철을 되풀이 해온 것이다.
?정계뿐만 아니라 관계, 학계, 재계, 문화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종과 같이 공적인 당당한 면모를 보여주는 지도자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역시 권력을 사유화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마음대로 남용하다, 결과가 좋지 못한 지도자가 되어버려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지 못하고 구시대의 봉건적인 잔재가 많이 남아서, 공권력을 독점적으로 사유화하는 구태가 좀체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천수백년전의 봉건시대에 절대 왕조의 황제인 현종조차 천하를 위해 자신이 수척해지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였는데, 오늘날과 같이 발달된 민주 사회에 살아가는 지도자들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형편없이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나는 야위었으나, 천하는 살쪘다는 현종의 당당한 자기 선언이 아주 먼 옛날의 그냥 듣기 좋은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냥 기분좋게 한번 듣고서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그런 일회성의 고사명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현종의 말뜻을 가슴깊게 새겨보면서 몸가짐을 되돌아보고, 특히 공인이면 공인답게 처신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도 대통령은 야위었으나 나라는 살찌고, 총장은 야위었으나 대학은 살찌고, 사장은 야위었으나 회사는 살찌는 그런 사회가 하루속히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야위었으나 00은 살찌지 않았는가’ 하는 감동적인 목소리가 전국 곳곳의 각계 각층에서 무수하게 울려나올 때, 비로소 우리 나라도 공적인 질서가 바로 잡히고 사람답게 살만한 선진 사회로 발돋음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각자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이 고사명언의 참뜻을 되새기면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충실하게 헌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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