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남효 고전칼럼] 창업은 쉬우나 수성은 어렵다 (創業易 守成難).

배남효 고전연구가 / 기사승인 : 2018-03-29 09: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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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림 배남효]
배남효 고전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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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배남효 고전연구가] ‘창업이 수성난’은 창업은 쉬우나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 말은 당나라 태종(太宗)이 신하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나온 이야기이다.


태종이 당나라를 일으켜 세운 감회에 젖어 가까운 신하들을 불러놓고, 창업과 수성의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를 묻게 되었다.


그러자 태종과 함께 천하를 누비면서 당나라를 세우는 창업에 고생했던 신하 방현령은 창업이 더 어렵다고 말하였다.


“창업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나는 군웅(群雄)들을 제압하여, 최후의 승자만이 창업을 할 수 있으므로 당연히 창업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태종과 함께 나라를 튼튼하게 다스리기 위해 노력해온 신하 위징은 수성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왕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라서 그만큼 수성이 더 어렵습니다."


태종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정리하는 말을 하였다.


"방현령은 짐(朕)과 함께 천하를 얻으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그래서 창업의 어려움을 몸소 겪어서 창업이 어렵다고 한 것이다. 반면에 위징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기 위하여 교만과 사치를 삼가하며 애를 썼다. 그래서 수성의 어려움을 직접 겪어서 수성이 어렵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창업의 어려움은 지나갔고 지금은 수성의 어려움이 있으니 짐은 그대들과 함께 수성에 힘쓸 것이다."


이후 태종은 자신의 말대로 수성에 진력하여 당나라 번영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당 태종은 아버지 이연을 도와 당나라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나중에는 왕위에 올라 천하를 잘 다스려 정관의 치(貞觀之治)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구가한 명군(名君)이었다.


그가 재임하면서 남긴 정치철학과 언행을 담은 서책이 바로 정관정요(貞觀政要)이고, 후대 사람들에게 대표적인 제왕학(帝王學)의 교과서로 불리우며 애독되었다.


태종은 인사(人事)를 잘 하여 창업과 수성의 과정에서 좋은 신하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두여회 방현령 위징과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인 측근(側近)이었다.


그 중에서 위징은 반대편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한 원수였지만, 태종은 과감히 용서하고 받아들여 중책을 맡기는 대범한 리더쉽을 보여주었다.


위징도 태종의 은혜에 보답하여 강직한 자세로 간언을 하면서 태종을 잘 보필하여, 태평성세를 구가하는 명신(名臣)의 역할을 다하였던 것이다.


태종이 신하들과 창업과 수성에 관해 문답을 나눈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여, 후세 사람들이 창업과 수성을 논할 때 곧잘 인용되기도 한다.


창업과 수성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창업의 어려움을 겪은 방현령은 창업이 더 어렵다고 하고, 수성의 어려움을 겪은 위징은 수성이 더 어렵다고 강조한 것이다.


창업은 일을 시작하여 나아가고 성장하는 과정이고, 수성은 생겨난 것을 지키면서 더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다.


창업은 과감한 결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이 요구되고, 수성은 화합하는 포용력과 합리적인 판단력이 요구되는 상당히 성격이 다른 일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사람이 가진 능력과 장단점, 일하는 스타일에 따라 창업에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성에 맞는 사람이 있다.


태종은 창업의 시기가 지났으니 수성이 어렵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창업이나 수성이나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이다.


창업은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하여 많은 어려움 속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물려받아 갖추어진 상태에서 하는 수성보다 더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창업을 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고, 온갖 투쟁과 경쟁을 극복하고 일어서기 때문에 일 자체는 수성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반면에 수성은 갖추어진 것을 물려받아 지키고 더 발전시켜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창업에 비해 덜 힘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창업을 물려받은 후계자는 창업자에 비해 대체로 능력이 부족하여 수성을 잘 못하고 망치는 경우가 많아,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일에 따라서 창업은 단순했지만 수성은 훨씬 복잡해져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요즈음과 같이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새롭게 적응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수성이 더 힘들다고 볼 수도 있다.


창업의 시기에 겪던 어려움과는 현저하게 다른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과 부딪치며 해결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수성이 훨씬 더 힘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도 재벌 대기업들이 3대를 온전하게 계속 발전해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하니, 그 만큼 수성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수성을 잘 해나갈만한 오너의 리더쉽과 인재들의 결합이 없으면 어려운데, 유수한 기업들도 이런 문제에 부딪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천수백년 전의 일이기는 하나 당태종은 본인의 리더쉽도 탁월했고 보좌하는 신하들의 능력도 우수하여, 창업과 수성을 동시에 잘 하여 당나라를 융성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수천년 중국 역사를 통털어 당 태종과 신하들의 콤비네이션만큼 모범적인 군신 관계를 이루며 정치를 잘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간의 창업과 수성에 관한 이야기가 현대에서까지도 곰곰히 되새겨 볼만한 좋은 교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창업의 어려움과 수성의 어려움은 그 특성을 달리 하기는 하지만 모두 마찬가지이고, 그 시기마다 적합한 리더쉽을 가진 인재들의 결합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잘 해나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탕 태종과 명신들의 결합은 시공을 초월하여 아주 모범적인 본보기로서, 참조하고 배울만한 교훈적인 사례가 되는 것이다.


특히 태종의 절대 군주로서의 자세는 너무나 놀라운데, 아끼던 측근인 위징이 죽자 매우 비통해하면서 직접 묘비문을 썼고, 위징을 빗대어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짐은 세 개의 거울을 가지고 있었다. 청동으로 거울을 만들어 의관을 바로 하고, 역사를 거울로 삼아 나라가 흥망성쇠하는 도리를 알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잘한 일과 못한 일을 알았다.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구나.”


청동 거울, 역사 거울. 사람 거울이라는 세 개의 거울로서 자신을 성찰하고, 바로 잡아간 태종의 자세는 통치자로서 정말 모범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더우기 태종과 위징은 단순히 군신(君臣) 관계를 넘어서, 인간으로서 지기(知己)의 관계로까지 발전하면서 수성의 역할을 잘 감당하였음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도 이제 기틀이 잡히고 경제 성장도 진척되어 수성의 과제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시기라서, 태종과 명신들의 콤비네이션 같은 뛰어난 정치 리더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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