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남효의 고전칼럼] 태산불양토양 (泰山不讓土壤)

배남효 고전연구가 / 기사승인 : 2018-04-18 14: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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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림 배남효]
배남효 고전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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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배남효 고전연구가]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은 태산은 한줌 흙도 마다 않고,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는 바다는 가는 물줄기까지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사마천의 사기 이사(李斯)열전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명언이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과 그의 신하인 승상 이사와의 축객령(逐客令)을 둘러싼 갈등에서 나오는 명언으로, 요즈음도 인재를 구하거나 장사를 잘 하고자 할 때 흔히 인용된다.


축객령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사는 진나라의 승상으로 진시황을 보좌하여 천하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유명한 인물이다.


이사는 초나라 사람으로 젊었을 때 지방관청의 하급관리를 했는데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으면서 사람이 가면 달아나버렸다.


그런데 큰 창고의 쥐는 들키지 않고 곡식을 마음껏 먹는 것을 보고서는, 사람이 현명하고 어리석음이 저 쥐와 같아 스스로 몸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입지를 바꾸어 큰 곳에 가서 일하려고, 다시 순자(荀子)의 문하에 들어가 제왕학을 배우고 그 실력을 쌓아서 당시 최대강국인 진나라로 가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이사가 천하통일의 과정에서 각국을 협박하고 회유하는 권모술수의 책략을 발휘하여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높은 벼슬에 오르며 진시황의 신임을 받게 되자 진나라 출신 귀족들은 이사를 시기하여 축출할 기회를 노리게 된다.


그러던중 외지(外地) 출신인이 중용되어 큰 토목공사를 책임맡아 수행했는데 간첩으로 드러나고, 토목공사도 진나라 국력을 약화시키려는 술책으로 드러나 처형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진나라 토착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진시황에게 외지 출신자들이 진나라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으니, 모두 벼슬을 빼앗고 국외로 추방시켜라는 강력한 요구를 하면서 격렬한 정치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진시황도 이 요구를 받아들여 외지 출신들을 쫓아내는 축객령을 내리게 되고 이사도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이사는 반발하여 진시황에게 축객령을 취소하라는 진언을 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간축객서(諫逐客書)’라 하여 중국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이사가 쓴 간축객서의 요지를 짧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보물, 미인, 노래 등 천하의 진귀한 것들은 진나라 것이든 외지 것이든 구분 않고 얼마든지 취하고 아끼면서, 유독 인재만은 외지 출신이라 배척하고 추방함은 옳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진나라가 강성하게 된 것은 상앙 범수 등 외지 출신 인재들을 잘 기용하여, 그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축객령을 발동하여 외지인들을 쫓아내면, 앞으로 천하의 인재들은 진나라에 등을 돌리고 말게 될 것이니 이는 진나라에 큰 손해를 끼치는 좋지 못한 조치이다.


태산(泰山)은 불양토양(不讓土壤)하여 고(故)로 능성기대(能成其大)요, 하해(河海)는 불택세류(不擇細流)하여 고(故)로 능취기심(能就其深)이라는 말이 있다.


즉 태산은 한줌 흙도 마다 않아서 큰 것을 이룰 수 있고, 바다는 가는 물줄기 하나까지라도 받아 들여 깊이를 취할 수 있다.


지금 외지인들을 쫓아내면 결과적으로 타국에 인재를 주고 진나라는 인재를 비우게 되는 꼴이 되어. 결과적으로 진나라에 엄청난 손해를 가져오는 일이므로 축객령은 즉각 취소해야 한다.’


진시황이 이 글을 읽고 크게 깨우쳐서 곧바로 축객령을 취소하고 이사를 더욱 신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사의 간축객서는 아주 유명한 명문장으로, 매우 쉬운 사례들을 조목조목 들어 사람의 생각을 간명하게 설득시켜내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이사의 간축객서를 읽으면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천하의 인재들을 출신 지역이나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실력에 따라 널리 많이 모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저절로 쉽게 깨닫게 해준다.


그후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천하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게 되고, 명실공히 진시황 다음의 2인자인 승상의 지위를 확실히 굳혀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고 황제의 승계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나중에 결국 자신은 물론 모든 일가가 처형당하는 비극을 맞이하며 권력 무상의 비정함을 역사에 남기는 대표적인 본보기가 된다.


이사는 아들과 함께 처형당하기 직전에, ‘나와 네가 다시 누런 개를 이끌고 함께 상제의 동문을 나가서 토끼를 쫓아가고자 한들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라는 회한이 가득한 탄식의 말을 남겼다고 사마천은 이사열전의 후미에서 기술하고 있다.


진시황과 이사의 고사에서 보듯이 중국은 역사적으로 인재를 구하는 인사정책이 매우 발달하여 재미있는 일화도 많지만, 그 전통이 현대의 중국 공산당에까지 이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세계에 자랑하는 인사정책의 원칙이 임현취능(任賢取能)인데, 풀이하면 현자를 임명하여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는 뜻으로 충분히 새겨볼만한 훌륭한 인사원칙이다.


지역주의와 연고에 따른 인사를 벗어나 출신지나 신분을 넘어서 어질고 유능한 인물을 기용하여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부국강병의 지름길임을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의 풍부한 역사 속에서 그대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십수년전 나는 고향인 대구로 낙향하여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그때 어느 은행의 지점장을 하고 있는 선배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선배를 만나던 지점장실의 벽에 ‘泰山不讓土壤’ 이라는 한자가 쓰인 액자가 걸려 있어, 내가 지점장 선배에게 액자의 글이 좋다는 덕담을 하게 되었다.


선배는 자신도 이 글의 뜻을 알고 은행의 영업 정신과 잘 맞아 좋아한다는 말을 하였고, 나는 이 글귀가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뜻이 깊은 명언임을 이야기하였다.


진시황과 이사의 축객령에서 벌어졌던 고사를 소상하게 설명해 주면서, 그 선배의 신임을 좀더 얻을 수 있었는데 2200여년전의 인물인 이사의 덕을 조금 본 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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