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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정치인들이 들쑤셔 놓은 이 시대의 많은 사건들이 선거가 끝이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선거기간 동안 많은 이슈를 확대 재생산해 언론 머리기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문제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자 금방이라도 난리가 날 것 같았던 모든 것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이 혼돈의 상황을 지켜보며 때때로 몽유병자와도 같은 환각을 느낀다.
정치는 국민의 앎을 기호화된 허상에 복속시키는 것이 아닌지, 혼란이 연속인 세상 속에서도 삶은 영위되고 있는지, 이런 의문들이 나를 혼돈시킬 때 나는 그런 의문에 시달리는 나 자신의 존재가 몽유인지, 아니면 우롱하는 이 시대의 문제와 그에 따른 문제점을 말하는 전체가 몽유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렵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치가 뭐 하는 건지를 모르고 단순하게 살았던 지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나의 이 어리석은 그리움은 다시 한바탕의 몽유로 폄하되어 마땅하리.
부동산 투기로 세상을 들쑤셨던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집단투기 사건과 성남시 대장동 아파트 기획 부동산 투기 사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조용하다. 대선을 앞두고 불거져 나온 이 사건을 야당은 호재를 만난 듯 사건 발생 처음부터 '특검을 해야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관계 당국도 지켜보다 '조사한다' '수사한다'로 혼선을 빚었다. 시민사회 단체와 야당의 계속되는 정치 공세에 정부는 두리뭉실하게 만든 합동조사반이라는 명칭의 기관으로 조사를 했지만, 아무것도 속 시원히 밝히지 못했다.
성남시 대장동 사건은 관,민이 한 몸이 되어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긴 전대미문의 협잡 사건으로 합동조사반의 수사로 모든 게 곧바로 해결될 것 같았지만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보이는 것은 여ㆍ야당 서로가 자신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서로 우김질하며 고성과 싸움박질뿐이다. 누가 몸통이고 어디가 꼬리인 줄 세 살 어린아이도 다 아는 뻔한 사실인데 서로 우김질하니 이래서 쳐다보는 국민만 몽유병 환자가 되는 느낌이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부동산값은 많이 올랐는데 돈 번 사람의 실체가 없다고 말해야 옳다는 사실뿐이다. 없는 것은 확실히 보이고,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할 '돈먹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합동 조사가 수사가 아닌 조사로 은폐 축소하여 사건을 덮고 간다는 비난이 사방에서 들끓었다. 야당도 여당 대권 주자가 연루된 사건을 노골적으로 봐주기를 한다며 적개심에 불타는 정치적 언어를 쏱아 부었다. 결국은 검찰이 칼을 빼 들었다. 검찰의 수사는 사실의 먼 변방만을 확인했을 뿐 책임의 소재를 규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책임의 소재가 정치적으로 뜨거운 현안이 되는 까닭은 그 책임이 어느 쪽으로 귀착되느냐에 따라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정치적 이해득실이 크기 때문이다.
애당초부터 투기 세력을 끝까지 발본색출하여 공직자가 부동산 투기로 부를 창출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큰소리쳤던 수사 기관이 민간 영역에서 이루어진 사건들은 그 실체가 있다고 했다가 실체가 없을 수도 있다며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언론은 수사 기관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입맛에 따라 논다며 질타했다. 내가 보기엔 말을 바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 말은, 이 말이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다 같은 말이고 결국 소 풀 뜯어 먹는 소리만도 못한, 하나 마나 한 헛소리라는 말이다.
요즘처럼 밝은 세상 어느 곳에 동시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도깨비 같은 사건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먼 옛날 아라비아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얘기 소재다. 적어도 현재를 사는 인간의 의식 한계 안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대장동 부동산 투기뿐 아니라, 모든 부동산 투기는 부추기는 세력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 인간의 언어 이성을 갖는 우리는 말이라고 입 밖에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그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투기 세력을 찾기 위해 검찰권 칼을 뽑아서 모든 부동산 투기 세력을 헤집어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엄정하고 치우침 없이 투기 세력을 발본색출 한다며 떠벌리고 들쑤셨던 공권력들은 어째서 잠잠한가. 신ㆍ구 권력 사이에서 눈치 보기로 수사는 한 발자국도 진전이 없다. 관은, 서민의 등골을 빼먹어 분노했던 국민을 더욱 우매하게 만들며 몽유병 환자를 취급하는가. 수사 기관이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이 말은 당연한 말이고 그들의 책무이다. 그리고 이 당연한 내용은 전혀 아무런 의미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말은 소 풀 뜯어 먹는 소리 같기도 하고 소 트림 같기도 하고 소 방귀 뀌는 소리와 같다. 이 말은 공권력이 국민을 향해 헛소리하는 언어로 뻔뻔스러움의 극치이다.
저인망식 수사로 잘못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큰소리치며 칼을 뺀 공권력의 수사 결과가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수사를 안 하는지 못 하는지가 경계가 모호해진 대장동 부동산 투기는 그 존재와 부재 사이의 신기루 속을 들쑤셨고, 그 신기루의 뜬구름 속에서 몸통은 어디 가고 피라미들만 투망 속에 갇혀있다. 천문학적 단위의 막대한 이익금은 끗발 좋은 사람끼리 다 해 먹었을 리는 세간의 추측이 저잣거리를 휘젓고 추측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원래 그런 날도깨비 같은 돈은 이 사회의 힘 있는 자들의 몫으로 늘 그러함이었다.
이 한바탕 사태는 몽유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각본이 잘 짜인 연극을 다른 몽유병자가 객석에서 관람하는 형국으로 나에게는 느껴졌다. 그러나 이 무대는 몽유가 아니라, 뭉칫돈을 거둔 인간은 어디로 가고 피라미들만 오글오글하게 모여 제살깎아먹기를 하는 현실의 무대다. 이래서 정치인들이 기를 쓰고 정치를 하고 권력을 취하려 죽기 살기로 싸우는가 보다. 힘 있는 자들의 삐뚤어진 사고가 나를 아연하게 한다. 권력이 한바탕 쓸고 간 이 사건에 나는 점점 바보스러워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사사건건 정치적 사건을 두고 왜 무지몽매한 국민을 몽유병자로 만드는가. 지금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178벌의 옷과 명품 장신구를 소재로 연일 불을 피우니 사방에 연기가 운무(雲霧)처럼 깔리고 있다. 정치권은 또 한바탕 국민을 몽유병 환자로 만들 것이다. 제발 이러지 좀 말라. 인제 그만 좀 하면 안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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