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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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승래 시인 |
[편집자주] 2010년 봄 <시와시학>으로 등단한 조승래 시인은 『몽고 조랑말』 『내 생의 워낭소리』 『타지 않는 점 』 『하오의 숲』 『뼈가 눕다』 『어느 봄 바다 활동성 어류에 대한 보고서』 『적막이 오는 순서』 『수평에 쉬다』를 출간했다. 『칭다오 잔교 위』는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시선집으로 『수렵사회의 귀가』 임재도와 공동 발간한 『공감 여행 』 김일태 외 6인 공동 발간한 『길 위의 길』 그 외 다수.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와시학 문인회와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2019년 제3회 영남문학상, 2020년 제6회 계간문예 문학상, 2021년 남양주 조지훈 문학상 수상했다.
● 올봄 신간 『수평에 쉬다』를 출간 하셨습니다. 책을 낸 뒤의 근황과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 먼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일요주간에 감사드리며 긴장감을 해제시키시는 이은화 문화예술 전문 주필 위원님의 해맑은 미소에도 감사합니다.
2년 만에 아홉 번째 새 시집을 발간한 뒤 느낌은 독자들이 더 많아졌음을 느낍니다. 제가 그동안 시 해설 등을 통한 소통을 많이 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타이어에서 상무이사로 퇴임하고 대주주의 회사인 아노텐금산(주) 대표이사 퇴임하고 개인 해외 소기업 투자에 관여했던 것이 직장 활동 경력입니다. 대학에서 무역학사(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학위를 받고 기업관리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상하이 교통대학)를 받았으며 문학 관련 공부를 한 적은 없습니다. 중국에서 해외주재원 12년을 한 경험이 있고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강연한 것이 강연의 전부였으며 이제는 시단에서 시를 배우고 쓰고 함께 읽고 있습니다.
● 첫 시집 『몽고 조랑말』과 『수평에 쉬다』의 사이에 여러 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긴 시간 속 자신의 변화된 세계관이나 방향성이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 고등학교 때 문예부장을 했고 ‘빛불’이라는 동인지를 발간한 것이 문학의 시발점이라면 고교 은사님이신 공영해 시인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 덕분에 시인이 된 것 같습니다. 2006년 12월 수필집 풍경을 출간했는데 이 수필집을 읽으신 공영해 선생님께서 수필보다는 시를 쓰도록 권유하셔서 2008년 시로 등단했습니다. 2009년 첫 시집 『몽고 조랑말』 발간했고 유재영 시인과 이가림 시인의 권유로 <시와시학> 2010년 봄에서 재등단했습니다.
제 시집의 해설을 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함을 밝혀보겠습니다. 호칭 생략하고, 공영해, 김재홍, 박호영, 유재영, 장석주, 홍신선, 이숭원, 이동순, 황정산 등 저의 시를 예쁘게 보아주신 시인과 평론가들입니다.
15여 년간 시집을 내면서 본인의 변화된 세계관이나 방향성을 정립해 보지는 않았지만 시집을 세 권씩 순서대로 묶어 특징을 분리해 본다면 천(天, 과거), 지(地, 현재)와 인(人, 현재와 미래)와 나눌 수 있겠습니다. 과거의 단계는 부모님과 유년기의 그리움이 주요 내용이었고 먼저 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많았습니다.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시는 아마도 자유로운 마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저 우주 어느 곳에라도 영속적 삶을 추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시작詩作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 수평에 쉬다』에서 삶에 대한 넉넉함과 긍정성이 읽힙니다. 또한 자연과의 공존을 내적 사유로 끌어내어 많은 독자에게 ‘쉼’이라는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 책을 묶으면서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이 있을까요.
▼ ‘조승래 시인의 시편들은 재밌게 잘 읽힌다. 일상에서 솟구치는 언어와 마음으로 쉽게 쉽게 시를 쓴다. 이리저리 머리 굴려 가며 써 머리 아픈 시가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난 시이기에 독자 가슴에 그대로 직격해 들어가 둔중한 울림과 깨달음을 준다. 그리하여 우리네 삶과 세상에 가 없는 깊이를 돌려주고 있다. ‘말’, 언어로는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침묵’,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지경을 일상의 말로 다가서는 시편들이기에 쉽고도 깊이 있는 울림을 주고 있다.’라는 이경철 문학평론가의 말입니다.
조송현 인져리타임 대표의 평을 인용해 보면 ‘시편들의 소재는 하나같이 삶의 일상에서 간택된 것 같다. 자연을 탐구 대상으로 하는 과학자를 자연과학자라 한다면 시인은 삶과학자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수평'이 공평, 형평을 뜻함을 알겠다. 인생은 상승의 꿈을 안고 수직으로 움직이지만 종국에서 모두 수평에서 쉰다.’라고 합니다. 저는 쉬운 일상 언어로 독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수평에 쉬는 사람’ 모두가 공감하는 시입니다.
● 그동안 출간한 작품집 중 유독 주제나 특징 면에서 의미가 깊은 책이 있다면 어떤 내용이 담긴 책일까요.
▼ 일곱 번째 시집 『어느 봄 바다 활동성 어류에 대한 보고서 』에 수록된 시 ‘하늘 나그네’는 어려운 시어가 없습니다.
초승달은 자꾸만 채우며 가고/ 보름달은 계속 버리며 갑니다// 비우고 비워 깜깜해지고/ 채우고 채워 환해집니다// 버리는 데에 반 달/ 채우는 데에 반 달// 자세를 바꾸어 가면서/ 구름이 다가가 살펴봅니다// 하늘 길 밤 나그네/ 못 본 척 지구를 돌아갑니다 -「하늘 나그네」 전문-
편안하게 읽히면서 생각할 것이 있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에 부합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이어 다음 한편은 ‘연두’이며, 희망을 잃지 않으면 새 생명으로 태어날 것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마른 잎 몇 장/ 땅 위에 엎드렸다가 사그라지더니// 그게 마중을 간 것이구나/ 문패도 없는 거길 용케도 찾아// 떡잎을 데리고 왔네/ 공손하게 모시네// 여기/ 또 저기서도/ 받드는 희망 -「연두」 전문-
여덟 번째 시집 『적막이 오는 순서』에 수록한 시 한 편을 더 소개합니다. 「더듬어도 걸어서」는 자존심을 강조해 보았습니다.
잠자리의 눈을 받아 360도 화각으로/ 앞뒤 좌우 다 볼 수 있게 해준다 해도 사양하겠네// 앞만 보고 사는데 뒤를 어찌 볼 것이며/ 사방이 에워싸고 주시하는데 뒷감당은 또 어찌하려고// 날개는 더욱 거절하겠네/ 여기까지 걸어왔으니 마저 걸어가겠네 -「더듬어도 걸어서」 전문-
● 타인의 시를 읽고, 감상하며 그 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때로 시 쓰기와도 닮아 있습니다. <시통공간>과 여러 지면에 시 감상과 해설을 쓰고 계시는데, 이 경험은 선생님의 시 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좋은 시를 고르는 기준점에 대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 타인의 시집 다수와 월간, 계간 문예지 10여 편을 읽으면서 좋은 시를 선정하려고 합니다. 뉴스경남 ‘시통공간’에서 주 5회, 인져리타임에서 ‘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를 주 1회 시 해설을 연재합니다. 계간 시와소금에서 ‘좋은 시’ 2편을 해설하고 동행문학에서 ‘조승래의 진(眞)한 시 읽기’, 계간문예에서 ‘집중평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쓴 시는 한 편을 읽는 데에 30초도 걸리지 않지만 시인은 그 한 편을 위해 몇 시간, 몇 달을 고민하고 퇴고했을 겁니다. 소중하지요. 그러나 지면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자연히 긴 시는 중간 생략하여 인용하거나 길지 않은 시를 소개하게 됩니다. 당연히 다른 시인의 시를 분석하면서 배우는 점도 많고 제 생각도 함께 녹아서 좋은 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셈입니다. 시를 수필로 다시 쓰는 마음으로 시 해설을 하니까 충실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선정하는 기준이라고 정해 놓은 것은 없지만 470여 편을 해설하다 보니까 아련한 그리움을 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고 우주에 대한 상상력을 북돋아 주는 그런 부류의 시를 많이 선정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달 분량 이상을 미리 써서 신문사로 보냅니다. 왜냐하면 원고에 쫓기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제가 비선호하는 시는 길고 애매한 것입니다. 키워드만 남기면서 차례로 시를 줄여보면 남은 것이 모호하다고 느끼게 되고, 심지어는 시인 본인도 표현하고자 한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을 거라는 심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마무리가 덜 된 시는 배제하게 된 것 같습니다.
● 글을 쓴다는 것은 종종 장면을 ‘기록’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시를 쓰면서 힘든 부분과 뿌듯한 점이 있으신지요. 이어 독자 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시 한 편 부탁드립니다.
▼ 중국 문단에서는 시 한 편의 원고료는 200자 원고지 40매 (단편소설 분량)로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시가 그만큼 압축되어 있고 울림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시 한 편이 기둥처럼 있어야 작곡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가 짧아도 여운이 긴 시를 쓴다면 그것이 시인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알맞은 시어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기억이 있고, 자다가도 맞는 표현이 떠올라서 메모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시가 널리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인의 도움으로 문학상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시향문학상은 시향문학회가 2023년 시향문학상 제정 제1회 시상(수상자: 김시탁 시인), 2024년 제2회 시향문학상 시상(수상자: 신진순 시인), 2025년 제3회 시향문학상 7월 시상예정(수상자: 이진주 시인)이며 태남그룹 조택래 회장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동행문학상은 계간 동행문학이 2023년 동행문학상 제정 제1회 시상(수상자: 김보나 시인), 2024년 12월 제2회 동행문학상 (수상: 조은솔 시인), 2025년 12월 제3회 동행문학상 시상 예정이며 ㈜ 메가투스 조창협 대표가 후원합니다.
상의 취지는 모두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을 발굴하고 좋은 시를 널리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후원자들이 저의 친구인데 이해하고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달개비꽃
고향 울밑 어디서나 피다지는 꽃이 있다
헤어지고 오던 길 남겨 둔 하늘처럼
유난히 동맥이 파란 몸매 야윈 그 아이
소꿉놀이 지치고 흙담아래 주저앉아
그렇지 도란도란 눈도 멀고 귀도 멀던
살며시 단발머리에 얹혀주던 청보라
희미한 옛 시간도 꼭 쥐면 물이 들까
꽃 속에 있던 아이 어디에도 없는데
부르면 나올 것 같아, 어린 날의 달개비꽃
「달개비꽃」은 제가 좋아하며 추천하고 싶은 유재영 시인의 시입니다. 꽃은 피었다가 지는 것이지만 유재영 시인은 ’피다 지는 꽃‘을 이야기합니다. 활짝 피지 못한 미완성을 암시하는데 그런 꽃을 두고 온 고향 하늘이 멀고 높으며 고향 울 밑 단발머리 그 아이 생각이 나는 거지요.
흙담 아래 주저앉아 눈도 멀고 귀도 멀고 살며시 머리에 얹혀주던 청보라, 도란도란 희미한 소꿉놀이 추억. 흐르는 시간을 꽉 잡아 둘 수도 없고, 꽃 같은 그 아이 지금 어디에도 없지만 ’부르면 나올 것 같‘이 내 마음에 머무르고 있는 어린 날의 ‘야윈 그 아이’ 달개비꽃으로 왔습니다.
세 연을 읽으면 시인의 그리움은 곳곳에서 보입니다. ‘시간을 꽉 쥐면 물이 들까’에서 ‘꽉 쥐’고 싶은 안타까움이 있고 ‘물이 들까’에서 달개비 보랏빛 추억을 재생시키고 싶은 것 같고 달개비꽃과 동맥이 파란 그 아이의 여운이 오래 남는 시입니다. 저도 ’달개비꽃‘이라는 시를 쓴 것이 있습니다.
달개비
한 번도 타향을 가본 적 없는 달개비가
담쟁이 넝쿨 따라 담벼락을 넘어 보았다
해거름에 담쟁이와 얽힌 마른 손을 놓으며
긴 여행을 마무리했다
뒤돌아보니 어느덧 고향길도 늙고
누구의 등 굽은 그림자 언덕을 넘어가네
● 시를 읽고 감상할 때 어떤 시는 현실의 삶과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감각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께 시란, 삶의 어떤 층위를 지탱해 주는 언어인가요.
▼ 시를 세 번이나 읽으면서도 의미 파악이 어려운 시를 접할 때가 있는데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몇 번 더 읽어보니 시인의 생각이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고 대리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이심전심이 되기도 합니다. 독서가 힘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많은 시를 읽으면 배움도 많고 서정의 폭도 넓어진다고 봅니다.
시는 이루지 못한 것을 시 속에서 대신 이루어지게 하는 기능이 있어서 슬픔도 어느 정도 완화해 주고 기쁨은 더 솟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고마운 문학 영역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삶의 희로애락을 다 만져주는 것이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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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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