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구차함에도 막장으로 치닫는 선거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2-04-18 1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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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이 풍진 세상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한고비가 지나가면 다른 한고비가 온다. 지금 이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산 것 같다. 생에 속은 것이다. 우리는, 생은 우리를 속일 마음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속고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제일 많이 속이는 게 정치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 중심에는 정치를 출세 지향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의 말은 항상 국민을 위한다지만 그 말은 거짓말일 경우가 대부분이며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국민팔이를 하는 것이다.

나는 생에서 닥치는 필연의 속이고 속는 굽이굽이마다 견디고 고비를 넘기며 사느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하류층에 편입된 소시민이다. 스스로 어쭙잖고 부족함이 많음을 알기에 자신을 낮추어 겨우 일신의 적막을 지탱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더구나 은퇴 후 대구 어느 동네 깊숙한 곳에 엎드려 지낸 지 오래니 세상사를 입 벌려 말할만한 식견이나 글을 쓸 재간은 있을 리 만무하다. 특히 정치에 관한 것은 장님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수준이다. 그러할진대 굳이 정치 행위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는 대구에 '시장 자리' 먹잇감을 놓고 벼슬에 굶주린 군상들이 연출하는 막장드라마의 구차스러움 때문이다.

요즘 대구시장 선거가 예측 불가의 막장드라마로 변질되고 있다. 현 시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무주공산이 된 대구시장 자리에 어중이와 떠중이 심지어 오징어 꼴뚜기까지 8명이나 뛰어들며 어물전 망신을 시켜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는 짓거리가 차마 눈 뜨고 봐주기가 역겹다. 아무리 권력 쟁취가 정치인의 궁극적인 목적이라지만 일반 시정잡배들도 이러지 않는다는 생각에 참담함을 느낀다. 과연 이래도 괜찮은가? 의구심이 든다. 도무지 예(禮)라고 찾아볼 수가 없다.

일찍이 공자가 말한 예(禮)는 예법이나 에티켓이 아니라 일을 이치에 맞게 처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예기(禮記) 책에서 예란 치사(治事), 즉 일을 제대로 다스리는 것이라 정의했고, 일의 이치를 어기는 것을 구차하다 했다. 순자(荀者)는 이 구차함을 일삼는 소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인은 마음이 크면 오만 포악하고 마음이 작으면 비뚤어지게 행동한다. 똑똑하면 남의 것을 빼앗고 어리석으면 남을 해치고 문란한 행동을 한다. 벼슬자리에 오르면 각박하고도 교만하다." 나는, 구차함이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어떻게든 하려 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 생각된다.

서울에서 4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고 당 대표를 두 번, 경남지사, 소속당 대권주자까지 지낸 지도자가 하방(下防)이라는 격에 맞지도 않는 단어를 쓰며 대구시장 출마 선언을 했다. 국회의원이 임기 중 대구시장으로 갈아타는 것은 하방이 아니라 뽑아 준 수성구민에 대한 방기(放棄)에 속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는 지난 총선 때 당에서 험지 차출을 마다하며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로 대구에서 정치적 부활을 하였다. 그가, 다시 대구시장에 도전하며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텃밭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며 지방선거를 막장으로 만들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모 예비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낙마 후 최고위원으로 정치적 재기를 하였다. 티브이 패널로 등장해 재치있는 순발력과 입심 좋은 위트로 관심을 받은 그는 과거 대구 고등학교 다니던 인연을 강조하며 낙후된 대구 살리기를 출마의 변으로 시장선거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대리인 변호사로 박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던 유모 변호사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원을 등에 업고 대구시장 자리에 도전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관심권에서 머물렀던 3명의 스타급 뉴스메이커 스피커들이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대구에서 자신만이 대구를 위할 수 있다며 대구시정 지휘봉을 잡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출마가 대구를 위한다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기에 문제가 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후보가 비전을 제시하고 시민의 선택을 받는 게 일반적 상식이다. 구체적인 공약도 내놔야 한다. 그런데 공약은 없고 변화만을 말하고 있다. '체인지', '리모델링'이란 말만 무성하다. 바꾸고 꾸미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무엇을 바꾸고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가 없다. 그렇게 바꾸려면 자신들부터 바꿔야 되지 않겠는가? 공히 출마자 모두 허공 속 뜬구름 잡듯 추상적인 언어로 시민을 우롱하며 신선한 선거를 혼탁하게 만드는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지도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시장 먹잇감을 놓고 신선하고 엄중한 선거를 막장드라마로 변질시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지켜보며, 하고 싶은 말은 지도자의 삶은 쉽지 않기에 말과 행동의 두려움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품격이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자신이 입신양명을 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욕심으로 무장된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이 수치스럽지 않은가. 사람의 품격과 신뢰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근본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눈앞에 빤한 정치적 야망을 챙기는 좀스러움은 정치를 바르게 할 수 없다. 이것은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도 공히 유효하다.

3대 도시에서 3류 도시로 추락 중인 대구는 28년째 1인당 GRDP (지역내총생산)전국 꼴찌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 유출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참담한 사정을 감안하면 대구를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슬로건' 경쟁이어야 할 선거가 엉뚱하게 심(心)타령 선거로 변질되었다. 박심(朴心) 윤심(尹心 )당심(黨心)을 내세우는 심 타령 쟁탈전은 대구를 더욱 퇴보시킬 것이다. 왜 그들은 대구시민의 민심(民心)은 외면하고 무시하는가. 상식과 미래지향적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깐부', '배신', '조작', '심 팔이'. '빅딜 '등 퇴행적 언어의 깃발이 나부끼며 대구시민의 마음을 황량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인이 없는 허상을 만들어 소란을 떨고 시민을 향해 기만 질을 해대면 세상은 견딜 수 없이 무의미해진다. 이해타산으로 무장한 입신양명 주의가 시민의 눈과 귀를 막으며 양심은 송두리째 폐기시키려는 구차함을 바라보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심란하고 또 한심하다. "징치가란, 강(江)도 없는데 다리를 놓겠다고 하는 자들이다."라는 글귀가 이명처럼 들린다. 아, 구차하다. 원하지도 않는 막장 드라마를 봐야 하는 대구시민은 어쩌란 말인가.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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