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포퓰리즘이 동네북처럼 이용되는 시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2-02-18 16: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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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요즘 세상은 포퓰리즘이 대세다. 아니, 정확하게는, 포퓰리즘에 대한 무비판적 비판이 대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외교 등 거의 모든 사회적 논란에서 포퓰리즘은 단골 메뉴로 되었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대선을 앞둔 지금 여ㆍ야당이 하루가 멀다고 퍼주기 공약을 무차별 퍼붓고 있다. 한 후보가 공약을 내면 상대 후보는 기다렸다는 듯 그 공약보다 더 많은 혜택의 공약을 내놓는다. 가히 퍼주기 포퓰리즘은 오늘날 정치 담론에서 동네북과도 같은 대상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치영역에서 포퓰리즘이란 단어가 정치적인 비방어(誹謗語)로 당연하고도 자명한 듯 써왔지만, 따지고 보면 포퓰리즘처럼 다양하면서도 애매한 개념도 없다. 역사적으로는 19세기 전반 프랑스 혁명에서 소외된 무산 층과 중간층, 농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 집권할 때 정책 전략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또 19세기 말 미국의 인민당 운동도 포퓰리즘이라 불린다. 남서부 지역의 농민들이 주축이 돼 '만민 평등', '특권 철폐'를 구호로 제3당을 결성한 것이 인민당이지만 시대 상황에 역행하는 것이 되어 결국 역사 무대에서 사라지며 화석화되었다. 근래 이 단어가 정치적 비방어로 쓰이게 된 것은 무책임한 경제 정책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는데, 분배 정책을 앞세워 대중을 매수하려는 질 낮은 인기 영합주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우리 사회 전반에 포퓰리즘 유령이 떠돈다. 오래전 화석화되어 폐기되어야 할 정책이 정치적 생존술로 부활하고 있다. 여ㆍ야당이 불 지핀 퍼주기 정책에 한껏 날개가 자란 유령이 이 나라 정치판을 활갯짓하며 휘젓고 다니고 있다. 현 사회를 떠도는 포퓰리즘의 본질은 촛불 시위로 정권을 잡은 집권 세력이 대의제 민주 정치에서 국민 지지 획득에 실패한 것을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그들이 지금 이용하는 포퓰리즘에는 매수 매표 성격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보수 세력도 대선 승리를 위해 한 몫 더 거들며 퍼주기 판을 키우고 있어 문제다. 그 형태의 특징은 함께 할 수 없는 원칙이나 주의의 뒤섞임, 또는 손잡을 수 없는 세력 간의 야합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시대는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국정운영과 코로나가 맞물려 서민의 생활이 피폐해 있으며, 이에 따른 정권교체의 국민적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여당의 어떤 언설과 공약도 먹히지 않는 상황에 다급해진 여당 후보의 포퓰리즘적 형태는 절묘하리만큼 포퓰리즘을 정책적이 아닌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국정을 더 이상의 정책수단과 정당한 운영을 통해서는 이 난국에 민심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도 뒤질세라 급하긴 마찬가지다. 정권교체만이 시대적 사명이라며 더 많이 퍼주기 공약을 난발하고 있다.

이번 대선 공약을 놓고 보면 누가 집권하든 공약을 지키는 게 나라에 해(害)가 될 상황이기에 국민이 역으로 공약을 지키지 말라고 요구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선거는 국가쇄신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오히려 선거가 나라를 망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이 마구 내지르는 선심 공약 때문이다. 이미 선심 정책으로 나라 곳간은 텅 비어 나랏빚이 연일 기록 갱신을 하는 이때 퍼주기 경쟁이라니 과연 제 주머닛돈이라면 이렇게 막 쓰겠는가.

이 나라 지도자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세상에 휘발유를 뿌리며 공짜 심리에 불을 붙이고 있다. 아무리 공짜도 좋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가. 여ㆍ야당 후보가 도깨비방망이 휘두르듯 막 휘두르지만 가장 중요한 재원 마련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적막강산이다. 아무리 표가 중요하고 정치적 생존이 중요하다지만 국민을 설탕물에 취하게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그 후유증의 독배는 자신들이 마셔야 한다는 걸, 우리는 중남미국가에서 봐왔다.

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에서 날갯짓하고 있음이 우울하고 불길한 예감을 자아낸다. 지도자의 '즉물적' 인기 영합 전술에 놀아난 '제 살 깎아 먹기'의 결과가 가져올 경제적 대가가 그러하고, 계층 통합 과정에서 형성된 독단적 집단주의와 그 뒤를 어른거리는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그러하다. 하지만 그 이상, 상상만으로도 더 전율케 하는 것은 우리의 포퓰리즘 세력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이용하는 민족주의와 또한 약방의 감초처럼 빼놓지 않는 반제국주의 논리를 이 땅에 불러들일지 모르는 재앙이다.

망국의 포퓰리즘이 작동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민족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되었고 대중화되었다. 여권 인사들이 죽창가를 부르며 반일 친일 문제로 편 가르기가 그러했고 정권의 우리 민족끼리의 대북 정책과 이에 편승해 대공 안보 개념을 해체해 버렸다. 민족주의와 표리(表裏)를 이루며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반제국주의 감정도 그 어느 때보다 공공연히 표출되어 있다. 각종 시위는 단골로 반미구호가 주(柱)메뉴로 빠지지 않게 되었다. 과거 국가 소멸 시점에서 대한민국을 구해준 혈맹(血盟)의 우의(友誼)가 지워진 자리에는 어이없게도 가상 주적(主敵)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게 또 있다. 진보 보수를 막론한 포퓰리즘 정책에서 정작 위축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다.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시민의 주권적 지배가 양자 모두의 핵심 준거이다. 권력의 정치적 정당성이 법의 지배에서 나온다고 믿는 자유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그것이 시민에 있다고 본다. 법의 지배가 실제로는 강자의 지배를 은폐하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큰 반면, 통치자와 피통치자로서 시민의 의지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로 정치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도자들이 매표를 위해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사탕발림의 포퓰리즘은 국민 기만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독배를 마시는 것이다. 땀과 노력이 아닌 공짜 심리를 심어주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인가. 세상이 어려울수록 얄팍한 정치적 술수가 아닌 잘못된 공짜 심리를 잠재우게 하는 진정성 있는 정치가 진실로 요구되는 때다. 부디 지도자들은 포퓰리즘으로 인해 발생되는 부작용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각종 부채로 막대한 짐을 져야 하는 미래 세대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망국의 지름길인 포퓰리즘을 더 이상 동네북처럼 두드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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